아빠와 함께 하는 쿠킹 클래스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오후

by 라미루이


2020년 100인의 아빠단 활동을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날이다.

1년간 아이와 함께 다양한 놀이를 하고 간단한 요리를 하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떠나는 등 수행한 미션만 모두 15개.

해당 미션들을 모두 수행하고 카페에 후기를 올린 가족들은 종로 한솔 요리학원에서 진행하는 '아빠와 함께 하는 쿠킹 클래스'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된다.

난 솔과 연과 함께 아빠단 미션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빠 멘토들의 육아 노하우를 전수받고, 아이들과 더욱더 친밀해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미션 완료 후에는 소감과 느낀 점을 공유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간식거리를 받을 수 있는 기프티콘을 선물로 받았다. 더불어 연말에는 총 결산하는 의미에서 케이크와 쿠키를 만드는 오프라인 체험을 할 수 있었으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음은 당연하겠다.


"아빠, 근데 언니는 같이 못 가는 거야?"

연이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언니 솔을 흘깃 바라보며 내게 묻는다.

"응, 언니는 초등학생이라 안 될 거 같아. 100인의 아빠단은 연이 같은 유치원 아이들이 주로 활동하거든."

"그렇구나."

"연, 나 못 가는 대신 내가 먹을 케이크랑 쿠키 맛있게 만들어 와야 해. 알았지?"

솔이 동생에게 명령조로 말한다.

"알았어."

다음 날, 나와 연은 아내가 정성 들여 싸 준 김밥 도시락을 들고 차를 몰아 도심으로 향한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적당한 곳에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가까운 미래에셋 사옥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한솔 요리 학원을 찾아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아빠, 저기 차 대놓고 가면 공짜야?"

"아니, 완전 공짜는 아니고. 저 안에 카페나 식당에서 간단한 메뉴 시켜서 영수증 보여주면 6시간인가 무료라고 하더라."

"100인의 아빠단에서 알려준 거야?"

"응. 단톡방에서 누가 알려줬어."

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은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입을 다무는 법이 없다.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종로 피아노 거리 한복판이다. 아직 문을 닫은 노점상들을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너니 종로3가역 1번 출구가 보이고 바로 앞에 '한솔 요리 학원'이라 세로로 쓰인 간판이 보인다.

"여기다. 들어가자."

학원 입구에는 '아빠를 위한 쿠킹 클래스' 라 쓰인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니 이미 도착한 아빠와 아이들이 앞치마를 걸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데이트 중인 커플과 토요일에 출근한 직장인들이 점령한 거리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종로 거리를 걸어오면서 아빠와 아이라는 조합이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선이 마주친 행인들 중에 엄마와 아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이들과 마주치는 것이 점점 더 귀해지는 시대,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길거리를 걷는 풍경 자체가 희귀해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연이 태어남과 동시에 육아에 전념한 나는 정말 많은 장소를 아이들과 함께 돌아다녔다. 서울 경기권의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놀이) 공원, 유아 숲, 각종 공연장 그리고 나름 잘 관리된 놀이터를 방방곡곡 찾아다녔다. 그러는 와중에 한 가지 의문점이 뇌리를 스치더니 점점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떠날 줄을 몰랐다. 1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많은 아빠들을 회사 동료로서 만나고 명함을 주고받고 얼굴을 익혔는데 전업으로 육아 활동을 하면서 그들을 회사 외적인 장소에서 마주친 적이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함께 찾을 만한 곳이 의외로 그리 다양하지 않다. 속된 말로 바닥이 좁디좁은 곳이 바로 전업 육아의 현장인 것이다. 1년 정도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놀이터와 도서관, 박물관, 유아 숲, 키즈 카페 등을 전전하다 보면 낯이 익은 아빠와 아이들을 어떻게든 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몇몇 마음이 맞는 아빠들과는 통성명도 하게 되고 안부도 묻고 가끔은 고민거리도 털어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곤 했다. 하지만 난 육아에 전념하기 이전에 마주친 수많은 이들과는 그 연이 완전히 끊어졌는지 아니면 동선이 완전히 엇갈렸는지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 설마 나와 마주치고도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거나 모른 척하고 스쳐간 건 아닐까? 괜히 뒤통수가 간질간질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갑으로서 회사 상사로서 크게 원한을 사거나 잘못한 일은 없는 듯하다. 아마도 내가 휴일이 아닌 평일에 그나마 한적한 서울랜드나 롯데월드 같은 곳을 일부러 찾아서일지도 모른다. 제주도 또는 국내외 여행지를 찾더라도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에 찾는 경우가 많았다. 난 돈보다는 시간이 남아도는 상황이니까. 반대의 상황에 처한 그들은 남들 다 쉬는 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멀리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들과 막상 마주쳐도 어색하기만 할 뿐 딱히 나눌 얘기도 없는데 괜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지난 과거에 대한 헛된 미련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는지도 모르지. 번잡한 대로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걸어간 지 수년이 흘렀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지면과 바라보는 풍경이 서로 달라졌으니 운 좋게 연락이 닿아도 길게 이어갈 얘깃거리가 마땅히 없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그들과 우연히 마주쳐도 데면데면하게 형식적으로 안부만 묻고 꺼림칙하고 어색한 여운만 남긴 채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으리라.


"오늘 만들 건 두 가지예요. 스모어 쿠키와 떠먹는 오레오 케이크. 먼저 저희들이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릴 테니 아버님들 잘 보시구요. 이후에 나눠드린 레시피 카드를 보고 아이들과 함께 만들면 됩니다."

믹싱볼에 버터와 황설탕, 계란을 섞어 거품기로 신나게 저어주는 선생님의 손놀림이 재빠르다.

"쳐줄 때 적어도 100번 이상. 정말 손목이 뻐근하다 팔이 빠진다 생각하고 저어주시면 됩니다. 아버님들."

몇몇 아빠들이 헛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만든 쿠키 반죽과 오레오 케이크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자, 이제 각자 조리 테이블에서 베이킹 진행하시면 됩니다. 막히거나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 손 들어주시면 돼요. 아버님들 파이팅입니다!"

마스크를 쓴 채 아이들과 함께 믹싱볼에 쿠키 반죽을 치대고 거품기로 저어주는 아빠들. 미처 녹지 않은 버터가 퍽퍽한지 거품기를 몇 바퀴 돌리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다. 아까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100번 가까이 치대야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반죽 형태가 나올 듯하다.

"아빠, 나도 한번 해볼래. 계속하면 아빠도 힘들 거 아냐."

"그래."

10분 넘게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젓다가 힘이 들자 연에게 거품기를 넘긴다. 아이는 제법 힘을 주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믹싱볼 바닥을 저어대고 하얀 반죽은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힘이 너무 세게 들어갔는지 그만, 반죽 파편이 튀어 아이 왼쪽 눈썹가에 묻는다.

"아빠가 떼어줄게."

조심스레 아이 눈가의 하얀 반죽 덩이를 떼어 주자 날랜 눈매 주위로 살짝 웃음이 번진다.

반죽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호두 분태와 초콜릿을 넣어 주고, 먹기 좋은 크기로 덩이덩이 떼어 납작하게 눌러 준다. 가운데 움푹 들어간 자리에 얼린 마쉬멜로우를 고명으로 얹어주고 오븐에 10분 정도 구워내면 완성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새알 초콜릿과 조각낸 오레오 쿠키 등으로 장식해주면 끝!


스모어 쿠키를 만들어 봅니다. 나름 피와 땀이 섞여야 달콤한 초코 쿠키가 완성됩니다.


이 와중에 맞은편 테이블에 자리한 가족은 유튜브 영상을 찍는다고 카메라를 향해 대사도 날리고 포즈도 취하는 등 분주하다. 난 지금 진행하는 베이킹에 몰두하고 연을 챙기기에도 바쁘기에 유튜브를 한다는 건 감히 엄두도 못 낸다. 저 가족은 아이 엄마가 촬영과 편집을 책임진다지만 역시나 지독한 열정과 에너지 없이는 영상 하나 올리기도 힘든 일이다.


다른 가족이 방송을 하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에 온전히 집중하면 될 일. 다시 한번 기합을 넣고 메인이벤트라 할 수 있는 오레오 케이크를 만들어 본다.

1. 믹싱볼에 미리 만들어둔 마스카포네 치즈에 설탕, 레몬즙을 넣고 분리한 오레오 크림을 덜어 주걱으로 부드럽게 풀어준다.

2. 생크림에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신나게 쳐준다. 제법 진득해지면 1번과 섞어 준다.

이 케이크는 오븐에 구워줄 필요가 없다. 은박 용기에 담아 남은 쿠키 조각과 초코 크런치, 젤리 등을 이쁘게 뿌려 주면 완성이다.



오레오 치즈 케이크도 뚝딱 완성!



베이킹은 끝이 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바로 사용한 조리 도구를 깨끗이 정리하고 주변을 청소하는 것. 아빠들은 아이들과 힘을 합쳐 지저분한 그릇을 설거지하고 조리대를 정성 들여 여러 번 닦아 준다.

뒷정리가 마무리되고 가족들은 한데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다. 코로나로 답답하고 힘든 중에 어렵게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쿠키와 케이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달콤한 스모어 초코 쿠키와 오레오 치즈 케이크를 맛보며 2020년 10월 어느 토요일 오후, 종로의 어느 요리 학원을 떠올릴 것이다.

손에 익숙지 않은 거품기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휘젓는 아빠의 옆모습

베이킹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유튜브를 하는 어느 아빠를 보며 대단하다 부러워하는 아빠의 표정

오븐에서 막 나온 부푼 쿠키와 진득한 마시멜로우에서 풍기는 따끈하고 달큰한 내음

쿠키와 케이크가 담긴 커다란 선물 상자를 들고 낯선 종로 거리를 걸어 집에 돌아올 때의 뿌듯함과 왠지 모를 창피함이 뒤섞인 감정까지.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언니가 부러움 반, 질투 반이 섞인 목소리로 외친다.

"연, 뭐 만들었어. 재미있었어? 먼저 먹은 건 아니겠지?"

"아니거든. 만든 그대로 가져왔거든."

"다음엔 나도 갈 거야. 어떻게든 아빠랑 같이 갈 거라고."

"알았다. 솔아. 다음엔 너도 데려갈게."

아이들의 옥신각신 재잘거림은 식탁에 두툼하고 투박한 쿠키와 초코 크런치가 두텁게 뿌려진 치즈 케이크를 풀어놓자 일순간 조용해진다.

"으음, 맛있다."

"마트에서 파는 초코 쿠키보다 훨씬 맛있어."

"이 안에 마시멜로도 들어있어. 한 입 깨물어 보라궁."

"이게 뭐야. 너희들 좋아하는 거 한 가득이네."

고 있던 아내도 안방에서 나와 케잌을 한 입 맛보고는 모카 포트에 커피를 담아 불에 올린다.

아이들의 표정에 달콤함이 깃들고 서늘하던 집안의 온도는 적어도 1도 이상 올라간 듯하다.


집에 돌아와 즐거운 간식 시간. 막 내린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하니 더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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