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코로나 확진자 수가 세 자릿수를 돌파해 천 명에 이르렀다는 속보를 접했기 때문이리라.
작년만 해도 첫눈이 내렸을 때 근처 공원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눈싸움을 하고, 자그마한 눈덩이를 굴려 가며 큼지막한 눈사람을 만들었더랬다.
"꺄악! 아빠 미워."
나무 아래 서 있던 아이들이 황급히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른다.
내가 두텁게 눈이 쌓인 나무 둥치를 세게 흔들어 졸지에 눈 폭격을 당한 것이다.
오늘은 마음 편히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아내도 고개를 흔들며 다음에 나가라고 아이들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더라도 100% 안심이 되지 않는 그런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대신에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대부분 녹았으니 다음에 눈이 충분히 쌓였을 때 나가서 놀자고 적당히 둘러댄다. 적지않이 실망하는 아이들의 표정.
오후에 아이들이 엄마를 따라 외가에 놀러 간 사이 관악산에 오른다.
초입부터 연하늘 덴탈 마스크를 쓴 눈사람이 벤치 위에 앉아 앙상한 나뭇가지 손을 흔든다.
역시나 눈사람도 현 세태를 반영해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눈사람도 코로나의 전염력은 두려운 것이다.
계곡으로 향하는 목재 데크의 경사진 내리막이 미끄러워 발걸음을 신중히 한다.
잎이 다 떨어진 장미 나무 위로 눈꽃이 살짝 내려앉았다.
눈 쌓인 얼음 아래를 굽이굽이 흘러온 계곡물이 맑아 보여 손을 씻고, 흐트러진 눈썹을 매만져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눈사람 작품과 마주쳤다.
이번엔 비스듬히 서있는 아빠 눈사람 옆에 뭉쳐 놓은 구름 아이가 인상적이다.
어딘가 모르게 시무룩한 일자 입술이 아이들과 마음껏 놀지 못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접한 눈사람은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산에 올라 공들여 만든 티가 팍팍 풍기는 작품이다. 뿔 달린 도깨비 눈사람이 무서워 보이지만 입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씨익 웃고 있다. 안타깝게 한쪽 뿔이 부러졌지만 제각각으로 뻗은 눈썹과 동그란 눈, 코와 어울려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틀림없이 마음이 넉넉한 아빠가 귀한 시간을 들여 세세한 부분을 매만지고 다듬어 완성한 것이리라.
옆에 덩치가 작은 아이는 아빠와 함께 여기까지 올라온 아이들이 직접 눈덩이를 굴려 쌓아 올린 듯하다.
낙엽으로 덮은 터럭과 비어져 나온 일자 눈썹, 단단히 삐친 듯한 굳게 박힌 입술이 옆에 자리한 도깨비와는 딴 판이다.
바로 옆에 그들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듯 이쁘장한 돌멩이와 씨앗들, 이름을 알 수 없는 풀 몇 자락을 갖다 놓았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관악산의 겨울 풍경과 눈사람들을 사진으로 보여주니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빠, 다음에는 우리도 데려가야 돼. 쟤네들이 만든 눈사람보다 훨씬 더 크게, 멋있게 만들 수 있다고.."
"그래, 다음에 눈이 오면 나가자. 아빠가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치이, 그래두.."
아이들의 불뚱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으려 호언장담은 했건만,
올 겨울에 아이들이 이전처럼 눈밭에서 뒹굴며 마음껏 눈을 만져볼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