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 나 이빨 빠졌어!

하나둘 빠지는 젖니들을 바라보며..

by 라미루이






- 아빠, 나 이빨 빠졌어!


둘째 연이 살짝 열린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아이 손바닥 위에는 작은 상앗빛 이빨이 놓여 있다. 잇뿌리 부분에 벌건 피와 살점이 묻은 채로.. 며칠 전부터 왼쪽 윗니가 흔들흔들하다고, 손으로 자꾸 건드리고 잡아 빼려 하길래.. 연아, 가만히 놔두라고 자연스레 빠지게 두라고 주의를 줬는데..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치과에 어거지로 끌려가기는 싫었는지 살살 혀 끝으로 밀고 손끝으로 궁굴리면서 자가 발치를 끝내 버렸다.


어이구야, 아아~ 해봐라. 아이가 입을 벌리니 문제의 잇몸 자리에 구멍이 뻥 뚫려 피우물이 고여 있다. 빠진 유치 뒤로 밀려난 하얀 영구치가 고개를 뭉툭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다행이야, 질기게 버티고 늦게 빠졌으면 아빠처럼 얼기설기 비죽한 덧니 나올 뻔했네. 난 수납장에서 깨끗한 거즈를 꺼내 도톰하게 사각 접어 연에게 건네주었다.

- 이거.. 빠진 자리에 밀어 넣고 앙 물고 있어. 전에 치과에서 해 준거 기억하지?

고개를 끄덕인 아이는 휑한 윗니 사이에 거즈를 끼우고 앙 입을 다물었다.

- 피 배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물고 있어야 한다.

- 네.

거실 한켠의 암체어로 다가가 털썩 누워 버리는 아이. 상체가 팔걸이 옆으로 꺾이고, 이제야 통증이 느껴지는지 입꼬리가 일그러진다. 잠시 후 휴우,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감는다.


방금 빠진 따끈따끈한 젖니. 그래도 수월하게 무탈하게 빠진 듯합니다.



식탁 위에는 빠진 이빨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누가 버릴 세라 난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는 서랍장의 비밀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진주알처럼 굴러 다니는 솔과 연의 젖니들. 가끔씩 흔들어 보면 다그륵, 드득.. 제법 여럿이 굴러 다닌다. 낱낱 살피면 모양이나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 안에 아이들의 배시시 한 웃음, 숱한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 뒤섞여 흘러내린 눈물들이 결정화되어 숨어있다. 물론 허기를 면하고 성장통을 겪기 위한 저작咀嚼 행위의 원초적 의미도 일부 포함이리라.

몇몇 아랫니는 솔과 연이 젤리나 초콜릿 같은 달고 끈적한 군것질을 즐긴 탓에 거뭇거뭇 삭은 흔적이 역력하다. 충치가 심해 신경 치료를 받고 은빛 크라운을 씌운 유치도 보인다.

뿌리가 뿔가시 돋친 것처럼 갈래 뻗은 송곳니가 보인다. 당혹스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저 망할 것 빠지는데 아이가 얼마나 아파하고 잠 못 이루었는지.. 온갖 고통을 겪은 끝에 연이 뱉어낸 검붉은 핏물에 잠긴 그 이빨. 흉악한 그놈을 노루발 망치로 짓이겨 박살 내려다가 간신히 참고 원형 그대로 간직했다. 길게 휘어진 회백색 가시 골짝 사이 우묵한 공간에 눌어붙은 아이의 잇몸 살점배기가 진득하다. 아이의 여린 몸과 떨어지기 싫어 얼마나 깊이 뿌리를 박았는지, 새로이 올라오는 영구치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어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며칠이나마 뽑히지 않고 살아남고자 하는 독살 맞은 기세는 정말이지. 종종 그 뾰족하고 날 선 송곳니를 만져보고 요모조모 살피면 그 노력 아니 치욕이 가상할 지경이다.


반면에 동글동글한 어금니도 눈에 띈다. 그 친구는 어린 연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했는지 자신의 잇뿌리를 순순히 녹여 가며 몸집을 작게 만들었다. 아이는 어느 오후 양치질을 하다가 물을 뱉는 중 세면대에 또롱, 청아한 소리를 내며 구르는 유치를 발견했다. 지극히 평화로운 자리바꿈이자 명예로운 은퇴식이었다. 통증은 전혀 없었고, 피는 한 방울도 비치지 않았다. 살짝 고개를 내민 구치臼齒는 어긋난 방향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잇몸의 빈자리는 굳건하게 솟은 상아석 기둥으로 채워졌다. 아이가 방긋 웃을 때마다 햇살이 비치는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전경이 얼핏 떠올랐다.


솔과 연의 배냇적 몸에서 돋아나고 빠진 유치가 뭐길래 이리 간직하고 있을까. 내겐 하나하나 소중하고 의미가 깊다. 맹수의 그것처럼 독기가 어려 날이 서든, 부드럽게 마모되어 공글리든 혹은 끈질긴 충치균에 부식되어 삭은 파편이더라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어찌했든 아이의 아깃적부터 유아기까지 자그마한 입 안, 연약한 잇몸에 단단히 뿌리내려.. 맨몸으로 부딪히며 매 끼니와 군음식을 씹어 잘라 물고 뜯어, 때로는 맷돌과 절구질로 잘게 찧고 빻아 뱃속으로 삼키게 한 장본인이니까. 돌아보면 바로 엊그제 같은.. 조막만 한 배냇 이불에 감싸일 정도로 꽁냥꽁냥하던 아이들을 저토록 몰라보게 머리 크고 팔다리 길쭉하게, 성장의 시간을 몇 배속으로 앞당긴 힘의 원천이니까 말이다.


나날이 팽창하는 아이의 잇몸에서 하나둘 탈락하는 각양각색의 젖니를 바라보자면, 그 안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사연과 함께 속절없이 흘러가는 어린아이의 순간순간이 응집된 결정체임을..


엄마 아빠라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각양각색의 빠진 젖니들. 빛나는 알 진주처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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