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도 목말 태워줄 거죠?

아이들을 태운 적토마는 달리고 또 달린다.

by 라미루이










네댓 살 무렵의 아이들은 걸음이 서툰 데다 힘에 부친다.

무턱대고 앞장서 걷다가 자꾸 한쪽으로 균형이 쏠려서는 어이쿠야,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다.

겨우 일으켜 세워 바지춤 아래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고 손을 잡아줄까 건네면, 기어코 싫다고 내 손을 뿌리치고는 앞으로 뛰쳐나간다. 그러다가 만취한 주객처럼 이리 쿵 저리 쿵, 비틀대다가 5 미터를 채 못 가서 철퍼덕, 자빠지고 넘어지기를 여러 번.. 그래도 솔과 연은 두세 살 애기처럼 목 터져라,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이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닌답시고 '관악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눈치를 보는지, 난데없이 울면 창피하다는 걸 아는 건지.. 그렁한 눈망울로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날 애타게 바라본다. 앙 주먹 쥔 두 손을 길게 내밀고는 오토바이 시동을 부르릉, 거는 것처럼 손목을 안쪽으로 꺾어 회전을 그리며 당기는 포즈를 취하며 날 부른다. 진즉 주저앉아 퍼질 줄 알았다, 이 녀석들. 그리도 쏜살같이 오버 페이스로 내달리고 거듭 넘어지고 그러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고, 쯧쯧. 아이들이 다시 일어나 걷기는 힘들겠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 트렁크에서 간이 유모차를 꺼내서 가져오는 건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현 상황을 받아들인 난 저 앞에 퍼질러 앉은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 우리 아가 오래 걸어서 힘들구나. 이를 어쩐다. 아빠가 어떻게 도와줄까?

- 아빠, 아빠.. 그거 해줘, 그거. 목에 말 태워줘, 말!

솔이 선수를 쳤지만 연도 지지 않는다.

- 나도 나도.. 아빠, 나도 그거 할래!

솔은 두 손목을 동글동글 비틀면서 소리쳤다. 곁눈질로 흘겨본 연도 그대로 따라 한다. 오가는 행인들이 아유, 자매가 너무 귀여워, 한창 이쁠 때다!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아이고야, 그런 말씀 마셔요. 말씀은 정말 고맙습니다만.. 하루 종일 천방지축 날뛰는 애들 호위무사 노릇하고 졸졸 에스코트하느라 두 다리 달달 떨리고 눈앞이 어지러운 현기증 도진 데다 진땀 삐질 흘리는 엄마, 아빠 타는 속도 모르는 그런 말씀 하지들 마셔요! 발끈하는 속내와 다르게, 방긋 웃는 표정으로 솔과 연에게 다가간다.

이 순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명백 간단하다. 아빠.. 날씨가 너무너무 더워요. 우리들은 다리가 쑤시고 진이 빠져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요. 저기 차 세운 곳까지 편히 데려다주세요. 이를 어쩌지요, 우린 아빠만 믿을래요, 네?

일단 동생 연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럼 동생 먼저다. 둘은 동시에 못 태우는 거 알지? 솔은 다음에 태워 줄게. 언니는 잠시 시무룩해졌지만 아무 군소리 없이 양보하기로 했다. 기특한 녀석.. 그래도 언니 노릇한다고 투정도 안 부리고, 이제 다 컸네. 흐뭇한 마음에 솔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난 연의 양 겨드랑이에 깊이 손을 넣어서는 으흡, 호흡을 참고는 번쩍 들어 올렸다. 역도 인상 부문 신기록에 도전하는 거구의 역사力士가 휘청한 역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처럼, 난 아이를 단번에 올려서는 목덜미에 앉혔다. 올라탄 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얼추 균형을 잡고는, 가슴팍으로 내려온 아이의 두 발목을 붙잡으면.. 아빠 모가지를 말안장 삼아 달리기, 이른바 '목말' 태우기 자세 완성이다!

(어휴, 어째 갈수록 힘에 부치네. 저번 주에 비해 더 무거워진 듯한 느낌이.. 켁!)

난 가쁜 숨을 내쉬다가 내 목을 휘둘러 감은 연의 두 다리가 바짝 조이는 바람에 컥컥, 사레가 들릴 뻔했다.

- 뭐 해, 아빠? 앞으로 달려야지. 빨리빨리!

아이는 아빠를 재촉하기 위해 고삐를 조였다가 내리치고, 긴 채찍을 카랑 휘둘렀다.

- 그래 그래, 아빠 숨 좀 돌리고.. 헥헥.

난 발끝에 힘을 주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아빠의 어깨 위에 올라타 저 아래를 낮보는 생경한 느낌에 두 손을 위로 들어 만세를 부르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반면에 언니는 어두운 표정으로 터벅터벅, 아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연은 땀에 전 내 정수리를 손으로 뒤적이다가 헤집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삐죽하게 잡아당기는 게 아닌가? 아, 아악! 그러면 아빠 아프다, 아파! 아빠의 과장된 리액션에 아이는 큭큭, 웃고는 오늘은 특별히 봐주지, 하고 꽈악 잡았던 머리칼을 슬그머니 놓는다. 엄마, 아빠들 머리숱이 하루가 다르게, 슴풍슴풍 빠지는 이유가 있다니까는.. 안 그렇습니까? 우리 곁을 파워 워킹으로 바삐 스치는, 윗머리가 휑한 어느 50대 아저씨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아빠는 너희들의 영원한 말이란다! 목말도 엄연히 너희들을 태우고 달릴 수 있는 말이니까 말이다.



100 미터 남짓 그렇게 나아갔을까? 느릿느릿 걸어오던 솔이 한계에 다다랐다. 난 연의 한쪽 발목을 툭툭, 손으로 치고는 이제는 언니 차례야, 알았지? 하고 상공을 향해 외쳤다. 아이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걷기는 싫었는지.. 내 머리에 딱 붙어서는 버팅기고 매달려 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까 아빠랑 약속했지. 언니한테 양보해야 다음에 또 목말 탈 수 있는 거야, 알았지? 몇 번을 설득하고 나서야 아이는 내 손목을 붙잡고 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연은 아빠 목에 올라타 있는 동안 기력을 회복했는지 표정이 제법 밝았다.

- 이번엔 네 차례다!

난 두 손을 내미는 솔의 상체를 와락 붙잡아서는 목덜미의 안락한 안장 위로 올라타게 했다. 와아, 가벼운 탄성이 터지고 아이는 내 머리칼을 붙잡았다가 아차, 싶었는지 양 귓불을 잡아당긴다.

아아~ 거기가 잡아당기면 더 아프거든. 아빠의 비명에 아이는 내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가 뺨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안절부절못하면서 부여잡을 고삐가 없어 헤맨다. 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냥 아빠 머리카락 가볍게 잡고 있어. 대신 뭉텅 빠지게 당기면 안 돼! 하고 마지못해 허락했다. 솔은 얌전히 아빠의 정수리 위에 손바닥을 턱하니 올렸다. 군 생활을 하면서 삐끗한 왼쪽 엉치 부위가 시큰하고 발걸음이 점점 끌리지만 이 정도면 버틸 만했다. 난 나오는 대로 휘파람을 부르며 짙은 그늘을 골라 껑충한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나란히 걷다가 점차 뒤처지는 연의 서투른 발걸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걷다가를 반복하면서..



아이는 아빠의 목 위에 올라타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댄다. 뽀로로의 고래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꼬마버스타요의 주제가를 메들리로 흥얼거리기도 한다. 강렬히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기 위해 조막만 한 손 그늘을 만들고는 아빠의 얼굴을 가려 주기도 했다. 아빠가 모난 둔턱을 밟았는지 어이쿠, 휘청거릴 때면 아이는 꺄악! 소리를 지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천하를 호령하던, 하루에 천 리를 질주하는 적토마도 제 아이들을 거느릴 때면 가끔은 지칠 때가 있는지라.. 터덜터덜 걸음이 처지고 느려질 때면 아이는 고개를 숙여 아빠 귀에 대고 속삭이곤 한다.

- 아빠, 힘들지? 이따 집에 가면 내가 말이야. 아빠 돌처럼 딱딱한 어깨랑 날개, 다 주물러 줄 거야. 그때까지는 달릴 수 있지, 아빠?

그럼, 이 아빠가 뭔들 못하겠니? 너희들이 즐겁다면야, 그리 원한다면야.. 목말 태운 채로 저 지구 끝까지 달려갈 수 있단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히이힝, 거친 숨소리를 내뱉고는 박차를 가해 앞으로 내달렸다. 자꾸만 제 자리에 주저앉으려는, 뒤따라오는 어린 연의 허리께를 한 팔에 붙잡아 옆구리에 껴안고는, 동시에 솔의 한쪽 발목을 붙잡아 단단히 지탱하고는 두 발치에 먼지가 일도록 내달렸다. 이제야 산을 오르는 누군가가 걸음을 멈추고는 요즘 아빠들이 참으로 고생한다고, 두 아이를 각각 옆에 끼고 목덜미에 두르고 달리는 그 진풍경이.. 너무 장하다고 응원하고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난 가까스로 미소를 짓고는 저 멀리 주차된 차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아빠, 너무너무 신나요! 다음에 또 목말 태워 줘요!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아빠에게 매달린 채.. 자매의 끄하하, 웃음 터지는 소리가 아득한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 꼬마버스 타요 오프닝 송 모음>>

https://youtu.be/TlrFngNz8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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