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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둘아빠의 좌충우돌 일상다반사 2
04화
아이들은 날것에 끌린다
by
라미루이
May 31. 2021
솔과 연이 외가에 놀러 간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오후 늦게 비가 오신다 했는데 화창한 하늘은 낯빛을 바꿀 기미도 안 보인다. 늦은 점심을 먹고 이것저것 할 일을 떠올리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아이들이 아빠랑 산에 간다고 잘 보던 티비를 끄더니 나갈 채비를 하네."
장모님의 다소 지친 목소리가 폰 너머에서 들린다.
일요일이라 당연히 산을 오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기대에 찬 눈빛이 떠올라 식후 노곤함을 무너뜨린다.
"네, 어머니. 세 시까지 가겠습니다."
"그려, 천천히 오게."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고 가까운 거리의 처가로 향해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얘들아, 근처 솔밭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올 테니 잠깐 기다려. 알았지?"
"빨리 와야 해, 아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하고 있어. 물에 들어가려면 크록스 신는 거 잊지 말고."
"알았어, 아빠."
난 책 더미가 든 코스트코 쇼핑백을 들고 마스크를 걸친 채 현관을 나서다가 한 마디 보탠다.
"외가에서 군것질 많이 했을 테니 양치질하는 거 잊지 말고."
"응, 걱정 말고 다녀와. 너무 늦지 말고."
솔과 연은 나란히 서서 각자의 검지를 가로 세워서는 활짝 드러낸 앞니를 닦는 시늉을 하며 웃는다.
현관 문이 쾅 닫히자 아이들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희미해진다.
<40분 후>
오른손을 위로 뻗어 백미러의 각도를 내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을 흘깃 스쳐보니 표정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도서관에 자동 반납 기계가 오늘따라 버벅거리지 뭐야. 자꾸 다운되고 먹통이 돼서 애를 먹는 바람에.."
아이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내 말을 못 들은 척, 아무 대꾸 없이 서로의 차창 밖을 내다본다.
"아직 해가 쨍하니까 오늘은 너희들 원하는 대로 해가 질 때까지 놀다 오자. 원 없이 물고기도 잡고 오는 거야. 오케이?"
"물에 들어가도 되는 거죠?"
연의 입꼬리가 치솟으며 얼굴의 반을 가린 그늘이 저만치 물러간다.
"그럼 아빠랑 가면 너희들 마음대로 물에 빠져도 되고 허우적대도 뭐라 안 해. 엄마랑 가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
, 안 그래?"
"맞아요. 엄마랑 산에 가면 자꾸 물에서 나오라고 하고, 집에 빨리 가자고 보채요. 더 놀고 싶은데 엄마는 자꾸 얼굴 찡그리고 화 내고 그래요."
아이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맞장구를 친다.
"엄마는 산에 오르는 거 자체를 싫어해. 원래부터 그런 캐릭터야."
연애 시절, 내가 몸담은 회사의 등산 동호회 모임에 함께 참석하여 눈 덮인 태백산의 정상을 찍고 내려오던 아내. 그녀의 큼지막한 선글라스 아래, 다소 억지스러운 미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때 이후로 아내와 산에 오른 적이 없었지. 아마도.
관악산 주차장은 경전철 공사로 인해 공간이 부족하여 가까운 도서관에 차를 주차하고 하산하는 인파를 헤치고 계곡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로 내려선다.
"얼마 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바윗돌 사이로 파고드는 소리가 세차네. 물이 맑기도 하다."
원래 관악산은 예로부터 화기가 강한 산이라 수세가 넘치는 편이 아닌데, 올해도 여기저기서 물난리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아이들은 아빠의 감탄사를 뒤로 하고 잠자리채를 양손에 쥐고는 앞으로 뛰어간다.
"아빠아, 이리 와봐. 저기 저으기."
앞장서 달려가던 솔과 연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계곡 저편을 가리키며 날 애타게 부르는 게 아닌가.
"잠깐만 기다려. 대체 뭐가 있길래.."
바삐 걸음을 옮겨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물가의 수풀 사이에서 뭔가가 떼를 지어 꼬물거리는 것이 보인다.
"허허, 오리 가족들이 나들이 나왔네. 그려.'
무심히 내려오던 등산객들이 너도 나도 걸음을 멈추고는 그들을 바라본다.
가로 늘어선 사람들 눈치를 보다 앞장서서 물가로 내려서는 엄마 오리를 필두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오리들이 한 손에 잡힐만한 털 뭉치를 뒤똥거리며 일렬로 뒤따르는 흔치 않은 구경거리가 났다.
솔과 연은 저만치서 엄마 오리를 졸졸 따르는 아기 오리들을 휘동그런 눈으로 바라보다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이야, 자그마치 일곱 마리네. 엄마 등골 빠지겠어."
눈치 없이 아이들의 셈에 끼어드는 아저씨 덕분에 솔과 연은 손가락을 접고는 잠시 망설이다 바짓단을 무릎 위까지 바짝 올려붙이고는 물가로 뛰어든다.
"얘들아, 물고기 잡으러 가야지. 오리 쫓기는 계획에 없던 건데.."
내가 솔과 연을 향해 소리치며 만류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아이들은 귀여운 갈색 털 뭉치를 기필코 잡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오리 가족 무리를 뒤쫓기 시작한다.
첨벙 대며 무르팍 위까지 찰랑이는 물살을 헤치고 가장 마지막에 뒤처진 아기 오리의 꽁무니에 다가가자 그들은 속력을 내어 건너편 깊은 물가로 헤엄쳐서는 그늘진 곳에 몸을 숨긴다.
발을 동동대며 멀리 도망친 무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가 한껏 깊어진 수심에 놀라 다시 물러나기를 수차례.
모처럼 둥지에서 나와 평화로운 나들이를 방해받은 엄마 오리는 잔뜩 성난 얼굴로 허공에 잠자리채를 휘두르는 아이들 쪽을 바라본다.
"애들아, 그만 나오지? 오리들은 잡는 거 아니다. 엄마 오리가 쳐다보는 거 안 보이니?"
홀딱 젖은 바짓단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양새로 곁으로 다가온 아이들이 삐죽거린다.
"아빠, 집에 아기 오리 한 마리 데리고 가서 욕조에 물 받아 놓고 키우면 안 돼?"
"안 되거든, 절대 안 돼. 일단 엄마가 기겁할 거야."
"피이. 우리가 잘 키우다가 일주일 지난 후에 다시 여기에 놓아주면 안 될까?"
난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눈을 바라본다.
"엄마 오리가 무척 슬퍼할 거야. 지금도 너희들 성난 표정으로 바라보잖아."
정말이다. 자신의 아기들을 그늘진 곳에 숨긴 엄마 오리는 그 자리에 멈춰서는 우리 쪽을 험악한 낯으로 노려보고 있다.
솔과 연은 오리 생포 작전에 미련이 남은 듯, 재차 계곡물에 뛰어들려고 발꿈치가 떨어질 듯 말 듯 움찔거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얘들아, 그러지 말고 오리 가족들이랑 친하게 지내보는 게 어때?"
오리 생포 작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곧이어 난 백팩에서 반쯤 굳은 식빵이 담긴 봉지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건네준다.
"오리도 이걸 먹을까?"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아이들은 식빵 부스러기를 동그랗게 뭉쳐서는 힘껏 던진다.
솔이 하나를 던지고, 연은 힘껏 팔을 휘저어 얼마간 떨어진 물 위에 하얀 덩어리를 떨군다.
먹이 냄새를 맡은 근처의 물고기들이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모여들어 식빵 덩어리를 물고는 조금씩 떼어간다.
금세 크기가 작아지다가 삽시간에 모여든 물고기 떼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빵 쪼가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엄마 오리의 눈길이 애가 탄다.
"좀 더 멀리 던져 보자. 오리가 먹기 쉽도록 말이야."
보다 못한 내가 식빵 덩어리를 높이 던져 엄마 오리 바로 앞에 떨어지게 한다.
"꽥, 꽤액."
엄마 오리는 쏜살같이 다가오더니 먹이를 물지도 않고 뒤에 멀거니 숨은 아기 오리들 몇몇을 부르는 게 아닌가.
그 사이 달려드는 물고기들을 몸을 세워 날갯짓을 하여 물리치는 그녀.
눈치를 보던 털 뭉치들은 하나 둘 다가오더니 엄마가 지키고 선 먹이를 향해 앙증맞은 동그란 부리를 내밀어 삼킨다.
"아빠, 오리들이 엄청 잘 먹어."
어느새 잠자리채를 바닥에 내던진 아이들이 그들에게 신나게 식빵 쪼가리를 던져주기 시작한다.
"오리들 가까이에 던져야 한다. 이렇게.."
몇 번이나 먹이를 받아먹은 오리들은 경계심이 느슨해졌는지 가까이 다가와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엄마 오리는 자신의 아기들이 먹이를 마음 놓고 먹도록 살짝 뒤로 물러서서는 바라보기만 한다.
품에서 낳은 자식들의 배를 먼저 채우게 하려는 엄마의 마음은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보다는,
날것이 가득한 자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저 금수들이 간절하다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이것들이 배가 고팠나 보구나. 쯧쯧."
혀를 끌끌 차는 어떤 등산객이 배낭에서 건빵이 가득 들어있는 지퍼백을 꺼내더니 몇 조각으로 쪼개어 그들에게 던져 주자 엄마 오리도 그제야 먹이를 하나 둘 부리에 담는다.
솔과 연은 빵가루만 남은 봉지를 탈탈 털어 물고기 밥으로 주고는 허겁지겁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조그맣고 동그란 생명체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얘들아, 무럭무럭 잘 커서 나중에 보자."
"엄마 오리도 아그들 일곱 잘 키워서 둥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알긋지?"
기특하게 바라보던 등산객들은 이런저런 덕담을 한 마디씩 하고는 자리를 뜬다.
"우리도 이제 가야지? 해 지기 전에 저 위로 올라가서 물고기도 잡고 그래야지?"
난 백팩을 열어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만든 간이 통발을 꺼내 보여주며 아이들을 유혹한다.
"응, 오리들아 안녕. 다음에 보자."
솔은 잠자리채를 어깨에 걸터 메고는 고개를 돌려 저 위로 향한다.
"다음에 보면 한 마리만 잡아보고 싶당. 너무 귀여워."
길게 물 꼬리를 남기며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오리들을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쫓는 연은 입맛을 연신 다시며 잠자리채를 휘어잡는다.
포기를 모르는 둘째의 저 집요함은 엄마를 닮은 걸까? 한 번 마음먹은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아내의 과감한 추진력이 언뜻 떠오른다. 갑자기 서늘해지는 목덜미가 쎄하다.
"아빠아, 가자. 연아, 어서 와."
멀리서 한 손을 번쩍 들어 재촉을 하는 솔.
한 조각 미련이 남은 아이의 따스한 손을 잡고는 가볍게 끌어 발걸음을 옮긴다.
마지못해 발을 떼는 아이의 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내 손을 놓고 언니를 부르며 뛰어가는 아이의 장딴지가 물에 젖어 번들거린다.
난 아이들을 뒤따르며 사소한 다짐을 한다.
다음에 올 때는 건빵이며 식빵을 넉넉하게 담아서 산을 찾아야겠다는 그런 다짐 말이다.
몰라 보게 훌쩍 자란 오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글을 끄적이다 오리 가족들과 마주치면 매번 아빠 오리는 자리를 비우고 엄마만 주위를 지키는지 궁금했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네들도 바깥에서 불철주야 먹이를 구하느라 아이들 곁에 오래 머무르기가 힘든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다라 입
안이 씁쓸해졌다.)
오리들은 언제나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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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둘아빠의 좌충우돌 일상다반사 2
02
3월 첫날의 일상
03
첫 등교하는 날
04
아이들은 날것에 끌린다
05
냥이 풍선 & 빨간 안경 대환장 꼴라보 응급액션 Go!
06
뽀로로야, 그동안 고마웠어!
딸둘아빠의 좌충우돌 일상다반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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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려 하는 딸둘아빠입니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글감을 건지려 촉을 세웁니다. 상상을 버무려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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