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등교하는 날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

by 라미루이




드디어 연이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날이 다가왔다.

아이는 들뜬 걸음으로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거실을 서성인다.

"아빠, 이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직 멀었거든. 11시부터니까 1시간 넘게 남았네."

"우리만 빨리 가면 안 되나?"

"일찍 가 봤자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멀뚱멀뚱 기다려야 하거든."

연은 기다리기가 지루한 듯 새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사뿐사뿐 걸어보고는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4학년이 된 언니 솔은 오늘 등교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개학식과 첫 수업을 시작한다.

태블릿에 설치된 줌을 통해 개학식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의 소개가 이어지는데 오류가 발생했는지 들리는 목소리가 나뉘어 차음벽에 반사되는 것처럼 시간차를 두고 연이어 들리는 게 아닌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음에도 아이들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같아 보다 못한 내가 음소거를 해제하고 '타임'을 외친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목소리가 에코 비슷하게 2개로 나뉘어 겹치는 바람에 전달이 제대로 안 됩니다. 확인해 보시겠어요?"

그제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자코 있던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선생님, 잘 안 들려요."

"목소리가 겹쳐서 이해하기 힘들어요."


"어머, 잘 들리는 줄 알았는데. 기계가 여럿이라 그럴 수 있어요. 잠시만요."

선생님이 잠시 수업을 멈추고 마이크 등 방송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얘들아, 내 목소리 잘 들리니? 수업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는데 문제가 있는데도 왜 아무 말도 안 하니?"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다. 그냥 그러려니, 언젠가 (내가 아닌) 누군가 나서서 해결하겠지 하고 선생님에게 아무 얘기도 못하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30년 전의 우리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여전히 이 나라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손을 들고 질문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하고 싶은 속엣말을 감추는 소극적인 자세를 물려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 방식이 일부 온라인 디지털 형태로 바뀌고 있음에도 학생과 교사 간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단방향 학습이 오히려 공고해지는 건 아닌지 차분히 되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아빠, 11시 다 된 거 같아요."

"그, 그렇네. 어서 가자."

창체(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을 듣는 언니를 집에 두고 연의 손을 잡고는 집을 나선다.

교문 앞에는 근처 영어,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에서 진을 치고 사탕, 초콜릿 같은 군것질 거리와 연필 같은 학용품을 홍보 전단지와 함께 나눠주고 있다.

교문 주위에 모인 엄마, 아빠들을 헤치고 운동장으로 들어가니 주변이 휑하다.

코로나로 인해 실내 강당이 아닌 운동장에서 간소한 입학식을 진행한다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단순히 바이러스 때문은 아니었다. 올해 1학년은 단지 '3개' 반이었다. 연이의 반은 총 17명뿐. 선생님 뒤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아이들의 줄이 몽땅하니 유난히 짧아 보인다.

언니인 솔이 입학할 때만 해도 4개 반이었다. 3년 사이에 교실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갈수록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줄어만 가는 것이 이렇게 체감이 될 줄이야.

시간을 거슬러 30년 전 그러니까 일제의 잔재가 묻은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자.

입학식을 하는 날, 비좁은 운동장은 신입생 그리고 온 가족이 빽빽이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뜩이나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한 공간에 흙먼지가 휘날리는 가운데 맨 앞에 선 어느 선생님이 확성기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기억이 난다.

"거기 학부형님들은 저어기 뒤로 물러나 주시고요. 신입생들은 앞에 서 있는 친구들 뒤통수만 노려 보고 선생님 따라서, 앞으로 나란히!"

구령대에 오른 선생님이 두 팔을 나란히 수직으로 들어 시범을 보이자 아이들은 책가방을 맨 채 양 손을 엉거주춤 들어 올렸다. 서로의 간격이 차례차례 멀어지며 희뿌연 모래 먼지가 사방에 흩날렸다.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는 담임 선생님 앞으로 끝을 모르고 길어지는 아이들의 일렬종대. 자그마치 100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을 적당히 절반으로 끊어서는 이열 종대로 뚝 꺾어 오전/오후반으로 나누었다지. 오후반은 집에서 점심을 먹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느지막하게 등교하는 한없이 늘어지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지. 베이비붐 세대의 과포화 상태는 3학년이 되어서야 주변에 새로운 학교가 지어지고 나서야 단일반으로 운영되며 겨우 해결될 수 있었다.




같은 반이 된 친구들 중에 병설 유치원 때부터 낯이 익은 반가운 얼굴이 몇몇 보여 엄마들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연이 키가 많이 컸네요."

"아이들이 몰라보게 훌쩍 자랐네요.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연의 절친 중 가장 가깝게 지냈던 E는 목포로 이사를 갔고 작년에 유치원 같은 반이었던 I는 아쉽게도 옆반으로 배정됐다. 그 외에도 다른 지역으로 떠나 간 친구들이 꽤 있다. 마음 아픈 헤어짐 뒤에는 새 인연이 기다리는 법. 학기 초엔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아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할 것이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으리라.

단지 아빠라서가 아니라 멀리서 지켜본 연은,

워낙에 붙임성 있고 야무지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성격이라 학교 생활에 문제없으리라 생각한다.

다소 어색하게 서있는 연을 앞에 두고 사진을 몇 장 찍어주니 어떤 선생님이 다가와 학부모들은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라 한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약간은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엉거주춤 물러서는 엄마, 아빠들의 발걸음이 선뜻 떨어지지 않는다.

연의 담임 선생님은 체온계를 들고 신입생들의 체온을 모두 측정한 뒤 학교 건물을 향해 아이들을 인솔해 걸어간다. 선생님의 뒤를 따라 아이들은 마스크를 올려 쓰고 하나둘씩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연을 포함해 그들 중에 단 한 명도,

그들을 애타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를 뒤돌아보며 발걸음을 멈추고 주저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다행이다.


빨간 가방을 걸친 키가 큰 아이가 바로 연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체온 체크 중이네요.



keyword
이전 02화3월 첫날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