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더블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by 라미루이









세간에 이런 말이 있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특히 큰 딸은 더욱더 아빠를 빼닮는다지.


2011년 9월 19일, 첫 아이 '솔'이 태어났을 때 짙은 쌍꺼풀에 앞뒤가 훤히 트인 눈매를 보고 '이 아이는 내 피가 고스란히 전해진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졌더랬다.


해가 갈수록, 아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무섭게 자랄 때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잊고 싶었던,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오점들까지 빼닮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외모를 살펴보자면 선명한 쌍꺼풀과 긴 눈썹, 큼지막한 이목구비 그리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슬림한 몸매는 여자로서 강점일 수 있다. 나중에 자라서 아빠를 닮았다는 것이 자랑 거리가 될 수도 있으리라.


잘 썩지 않는 치아를 물려받은 것도 은근히 내세울 만하다. 물론 쫀득하게 달라붙는 젤리를 즐겨 먹고, 양치질을 게을리한다면 아랫니에 충치는 피할 수 없겠지. 하지만 어려서부터 난 끼니보다 군것질을 즐겨했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화끈한 충치에 처음 걸렸을 정도로 건치 하나는 타고났다.(그 충치 때문에 정말 고생했다. 지금도 그 크라운 씌운 이가 내게 경고를 한다. 타고났다 방심하지 말고 치아 관리 잘하라고..)

오죽하면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의사가 비춰보면 대충 나오는 얘기가 "충치 쉽게 걸릴 치아가 아닌데요. 덧니가 걸리긴 하지만 교정하면 더 안 좋을 수 있으니 그냥 이대로 사세요. 복 받으신 겁니다."였다.

치아가 약한 다른 아이들은 양치질을 한두 번만 건너뛰어도 잇몸 주위가 누렇게 변하고 충치균이 쉽게 파고 들어간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이들은 발치에만 신경 쓸 뿐, 충치 치료에 크게 돈을 들인 적이 손에 꼽을 만하니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을까.


또 어디가 닮았을까.

얼마 전엔 솔이 집 안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문턱에 애끼 발가락을 찧어 주저앉았다.(일주일 전에 내가 그렇게 발가락을 다쳐 눈물을 쏙 뺐다.) 가만 살펴보니 발가락과 발톱의 생김새마저도 내 걸 쏙 빼닮은 거다.

바깥쪽으로 살짝 휘어진 발가락에 유난히 작고 얇아 잘 부서지는 앙증맞은 발톱이 박혀 있는 걸 보고 난 실소를 금치 못했다.


태어난 아이와 자신의 닮은 구석을 찾고 또 찾다가 '발가락'이 닮았음을 깨닫고 안도하는 김동인 작가의 소설 속 M과 하다 하다 못해 '발가락'마저 닮아버린, 내리 흐르는 피의 무서움을 깨달은 내 처지가 묘하게 대비되는 건 무슨 연유인지..


외모를 살펴봤으니 이제 이런저런 버릇을 돌아본다.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어릴 때부터 내가 반복해 온 버릇들이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피가 맺히도록, 가장자리에 고름이 달리도록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라던지, 바짝 마른 입술의 거스러미를 물어뜯어 기어이 덧나게 한다던지 하는 버릇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무의식 중에 그런 행동을 하나 싶어 아내에게 물어봤는데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아빠가 몸소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런 버릇을 타고난 것처럼 따라 하는 그 천연덕스런 행동이 날 한숨짓게 한다. 하지 말라고 호되게 야단을 쳐도 소용없다. 티비를 보다가, 혼자서 공상 삼매경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아이의 손이 입가로 올라가곤 한다. 어릴 적 내 모습을 빼다 박은 모습이다.(아, 아버지가 그런 날 보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지.. 이제야 사무치게 와 닿는다.)


이것만이 아니다. 솔이 세 살 적이었나. 아내가 아이의 목욕을 마치고는 내게 툭 던지듯 말하는 거다.

"나 저렇게 뻣뻣한 아이는 처음 봐." 그나마 솔은 어려서부터 발레를 배우고, 점차 커가면서 (다행히) 엄마를 닮아가서 그런지 나보다는 뻣뻣함의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유연성 그리고 운동 신경이 현저히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엄마를 닮은 둘째와 나란히 솔을 앉혀 놓고, 다리를 일자로 벌려 스트레칭을 하면 각도가 확실히 좁은 게 눈에 보인다. 방과 후 수업이나 운동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걸 보면 혼자 동작을 못 따라 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팔다리가 뻗는 게 보여 모른척하는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다. 두 발 자전거를 아직 배우지 않았지만 날 닮았다면 고생 좀 할 것이다.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넘어지는 생고생을 해야 몸에 익을 테니 말이다. 몸을 쓰는 분야에서 뭔가를 이루려면 남들보다 두세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날 빼박으로 닮은 솔에게 남기고픈 말이니 어찌할까나.


여기까진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나 자신을 닮은 딸의 모습이다. 그밖에도 잠귀가 밝아 밤에 깊은 잠을 못 이룬다던지, 혼자 딴생각하느라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다던지 하는 것도 영락없는 나이기에 구구절절 말해봤자 피차 괴로울 테니 여기서 끊으려 한다.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디테일하게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


반면에 바쁘게 사느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게다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깊이 숨겨진 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솔이 창체(창의적 체험학습) 온라인 수업 중, 종이접기를 따라 하는데 도저히 못 하겠다고 앓는 소리를 내고 울상인 거다. 오각형, 육각형 비슷한 모양으로 종이를 접는데 내가 보기엔 그리 어려운 단계가 아닌데도 한숨만 푹푹 내뱉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도와주었다. 접은 과정을 거꾸로 펼쳐가며 시연을 보여주자 그제야 "아, 그런 거구나" 하며 표정이 밝아진다. 하지만 다음 색종이를 몇 번 접더니 지 맘대로 안되자 엉망으로 구겨버리고는 성질을 못 이겨 자리를 뜨고 만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팽개쳐진 색종이들만 안쓰럽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지금까지 종이학을 제대로 접어 본 적이 없다. 남들은 색과 크기를 달리 한 종이학 천 마리를 접어 유리병에 담아 첫사랑에게 선물한 추억이 있다는데 난 한 마리를 온전히 접어본 적이 없다니.. 어릴 때 또래 아이들은 개구리를 그럴듯하게 접어서는 꽁무니를 손가락으로 튕겨 누가누가 멀리 뜀박질을 하나 놀기도 하였건만, 난 종이를 접어 비행기나 배 그리고 딱지만 신나게 접어 놀았을 뿐이다.

단순한 종이 접기는 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복잡한 종이 접기의 세계에 입문하기엔 영 서투른 손재주를 타고난 것이리라. 예전 문방구에서 색종이를 사면 맨 뒷장에 인쇄된 학이며, 접시꽃, 메뚜기 등 복잡한 접기 설명도를 보고 따라 할 엄두도 못 내고 기가 질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종이로 건담도 만들고, 정교한 건물도 만드는 재능러도 있는 반면에 나와 솔처럼 종이학을 접기에도 버거운 타입이 공존하는 것이다.

물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배울 의욕만큼은 충만하다. 아빠를 닮아 종이 접기를 못한다고 의기소침한 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이 나이 되도록 종이학 한 마리 못 접어서야 말이 되느냐고 혀를 끌끌 차는 마음속 한숨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솔과 함께 종이 접기를 차근차근 연습하고 싶다.


솔을 좌절에 빠뜨린 문제의 종이접기 수업 결과물


10년 동안 솔과 둘째 연을 지켜보며 드는 마음은 아이들이 정말 잘 웃고, 장난기가 넘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원래 그런 거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학교나 놀이터에서 뭇 아이들을 지켜보면 해가 지날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도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찌들어가고 인간관계의 고달픔을 깨닫고 힘들어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코로나 시대엔 어른들보다 더 우울해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밖에서 뛰놀지 못하고 제한된 공간에 고립되는 상황에 장기간 처한다는 건 최악의 경험일 테니까..

그럼에도 솔과 연은 집에 콕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놀 방법을 찾아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신나게 수다를 떨어댄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이유(모르고 언니의 얼굴을 사인펜으로 쓱 그었다던지 하는..)로 서로 투닥거리고 다투기 일쑤지만..

이건 정말 내가 예상치 못했던, 미처 깨닫지 못한 특별한 면이다. 지금의 날 닮았다면 부정적이고, 시니컬하고 업다운의 진폭이 극심한 성정을 갖춰야 하건만, 내가 멘탈이 무너져 혼내고 야단을 치고 지랄 폭주 오두방정을 떨어도 뒤돌아서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웃고 떠들고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한없이 긍정적이고 명랑한 아이들의 성격이 엄마를 닮았을 수도 있지만, 곁에서 지켜본 아내의 성격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그녀는 침착, 차분하고, 잘 웃지만 한번 삐치고 감정이 상하면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난기가 흘러넘치는 말괄량이 삐삐 유형의 캐릭터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쓰는 지금도 거실에서 야옹이 흉내를 내며 기어 다니고, 깔깔대는 아이들의 저 명랑 유쾌한 성격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나도 어릴 적에는, 뭣도 모를 적에는, 부모님의 살벌한 다툼과 부담을 더해 가는 학업과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던 친구 관계에 마음을 다치기 전까지는 이 아이들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웃음을 잃지 않고,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내는 명랑한 장난꾸러기였을 거라고 자위해 본다. 지금의 어둡고, 우울하고, 시니컬한 가면 아래에는 억압되고 주눅이 든 진짜 얼굴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진짜배기 리얼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실마리는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먼 곳만 휘휘 살피는 날 향해 "여길 좀 봐줘요!" 하고 손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천 번 만 번 맞는 말이다.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는 건,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이보다 더한 복이 있을까. 100세 인생이라 하지만 멀쩡한 정신으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면서 사는 기간은 65세 남짓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활력을 유지하는 40대에 어린 시절의 숨겨진 다채로운 면면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과 내내 부딪히며 지내는 이 시간만큼은 정말 크나큰 기회이자 복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각자 나름의 팔자를 따라 인생은 흘러간다지만 때때로 지난날을 보상하는 선물도 주어지는 듯하다. 내 어린 시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모성애를 뒤늦게나마 아내를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었고, 잇따라 태어난 솔과 연을 통해 내 안에 깊이 드리워진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늘도 난 각자의 역할에 심취하여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어린 시절 친구를 대하듯 마음을 열어 고민거리를 들어준다. 때로는 동네 놀이터에서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아이들과 괴물 놀이를 하며 30년을 훌쩍 거슬러 과거로 되돌아가는 귀한 경험을 누리기도 한다.


마흔 중반의 남자가 어린 시절의 또 다른 자신을 고스란히 재연하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쨍한 거울에 비친 맨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언뜻 회한에 빠지고 지난 날의 괴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진짜 얼굴을 가린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겠다는, 강력한 삶의 동기를 부여함에는 틀림이 없다.


그네를 타는 아이들. 어떤 상황에서든 잘 웃고,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건 코로나 시대를 버틸 수 있는 특별한 강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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