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날의 일상

by 라미루이

둘째 연이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내일이면 새로운 교실로 등교해 첫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유치원 입학식 날 엄마, 아빠와 헤어져 낯선 환경에 처한다는 사실에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않던 아이의 얼굴이 언뜻 떠오른다.

미리 장만한 빨간 저학년용 백팩에 준비 서류와 이런저런 준비물을 담고 양 어깨에 메고 일어선 품세가 여간 들뜨고 설레는 기색이 아니다.

가방은 사전에 고심하여 간추린 몇몇 후보들 중에 아이가 직접 고른 거라 실물을 보고 난 후에도 별 거부감 없이 만족한 듯하다. 카카오 프렌즈의 인기 캐릭터인 어피치가 수줍은 표정으로 그려져 있어 적어도 3년 동안은 질리지 않고 메고 다닐 것이다. 다만 신발과 실내화를 담는 보조 가방이 별도 구매라 해당 제품 페이지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아도 모두 매진이라 너무너무 아쉽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깔맞춤으로 나온 그 보조 가방을 같이 샀어야 컬렉션이 완성되는 건데 한 달 넘게 온/오프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뒤져봐도 Sold-out 행진이라니..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에 잠복해 볼까 고민도 했지만 연이 괜찮다고 하여 다이소 매장을 저번 주에 방문하여 아이의 마음에 쏙 드는 보조 가방을 골랐다.

같은 레드 컬러 계통에 카카오 프렌즈와 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의 콜라보가 은근히 어울려서 다행이다.

이로써 내일 둘째 연의 초등학교 입학식 준비는 끝!


핑크색 '어피치'와 가방의 유광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 아이는 아끼는 다람쥐 인형 '라미'도 함께 등교하면 안되냐고 끈질기게 시위 중..


카카오 프렌즈와 세서미 스트리트와의 콜라보



모름지기 사람의 인상의 5할 이상은 눈매가 결정한다는데 인형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이들이 갑자기 내 방으로 달려와 "라미 좀 보세요. 으하하" 하고 한바탕 시끌벅적하다.

책상에서 책을 읽다가 다람쥐 인형 라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빵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깔 스티커 하나만 붙였을 뿐인데 예전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인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장난꾸러기 악동 이미지만 남아 버렸다. 그냥 기억 속으로 흘려보내는 건 아깝다 싶어 사진 몇 장을 남겼는데, 지금도 다시 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온다.


라미야, 미안하다. 귀여운 인상 다 망쳐놔서..



삼일절 휴일임에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여서인지 관악산 등산로의 인적이 뜸하다.

우산을 쓰고 산책로에 들어서니 좌우로 중구난방 정신없이 들이치는 빗발을 막을 길이 없어 양팔과 바지춤은 이미 흥건하다. 항상 오가는 길을 따라 계곡에 다다르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하기 그지없어 답답하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그저께 오를 때만 해도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가물어 계류가 탁하고 흐름이 영 시원치가 않았는데, 어젯밤 내내 퍼부은 비 덕분에 아래로 아래로 휘몰아치는 기세가 거침이 없어 우레와 같다.

건강한 사람의 몸도 저 물길의 장쾌한 흐름과 같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돌아가는 이치는 크게 다르지 않고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할 테니까.

충분한 수분이 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에 다다라 심장과 장간腸肝을 순환해 신장에서 걸러지기까지, 일체의 막힘 없이 쾌청하게 돌고 돌아야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무병장수할 수 있으리라.

겨우내 쌓인 낙엽 더미와 불순물을 이끌고 저 아래로 굽이굽이 내려가는 계곡물을 온 몸으로 닮고자 한동안 바라본다.


집에 돌아가는 중에 비닐 우의를 걸친 노부부와 마주친다.

훤칠한 키의 할아버지는 비스듬히 앞서가는데 할머니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인다.

할머니는 불의의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갖은 고생 끝에 그리 허리가 굽은 것인지 오른쪽으로 45도 가까이 상체가 기울어져 걷는 게 아닌가.

그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급격히 우측으로 기우는 균형을 잡기 위해 등산 스틱을 제3의 지지대로 바닥을 딛으며 할아버지를 종종 따라가고 있다.

"무지 머네. 이 산도 우습게 볼 산이 아니야."

"그릉게. 되네. 되어."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단 낫지."

"암, 가만히 누워 있으면 더 아프당게. 팔다리를 바삐 움직여야 삭신이 안 쑤신 법이제."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험한 날씨에도 노부부는 단단히 채비를 하여 아침 일찍부터 산에 올랐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당차게도 만만치 않은 높이까지 발걸음을 디뎠으리라.

허리가 불편하신 할머니와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며 묵묵히 동행하는 할아버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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