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유달산을 뒤덮은 짙은 녹음은 배경으로 깔린 연회색 구름과 대비되어 푸르름을 더해간다.
산 중턱으로 향하는 해상 케이블카는 정해진 길을 일정한 속도로 떠다닌다.
목포항을 떠난 'Queen Mary' 여객선은 갈매기 무리의 호위를 받으며 점차 속력을 높인다.
얼마간 머무른 목포 항구가 점점 멀어진다. 파도가 넘실대는 청록빛 바다는 점차 면적을 넓히며 작지 않은 도시를 수평선 아래 잠기게 한다. 완만하게 솟은 유달산 정상에 박힌 일등 바위마저 파도 아래로 자취를 감추자, 여객선은 목포라는 도시와 이별을 고하며 '뿌우웅', 길게 뱃고동을 울린다.
"그동안 즐거웠어. 목포야, 안녕."
"다음에 다시 올게. 바이."
솔과 연은 갑판에 올라 철제 난간을 붙잡은 채, 꼿발을 한껏 치켜들고 멀어지는 육지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아빠, 이거 타고 가면 제주도에 도착하는 거야?"
"응, 제주도 북쪽에 항구가 있거든. 거기가 우리 목적지야."
"이 배 타고 얼마나 가야 해?"
"글쎄. 3시간 넘게 걸린다고 하더라."
"꽤 오래 걸리네. 비행기 타면 금방 가는데.."
아이들은 양 날개를 수평으로 펼치고, 갑판에 서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를 유지하며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본다. 가족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갈 때면, 김포 공항에서 국적기를 타고 30분 정도 비행을 하여 제주 공항에 도착하곤 했다. 공항에서 예약해 둔 렌터카를 타고 이번엔 뭐하고 놀까,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로 향했지.
이번 여행은 한여름 제주 해변에서 물놀이를 제대로 즐길 작정으로 구명조끼며 튜브 여럿, 갈아입을 옷가지 등을 챙기는 바람에 짐이 많아져 집에서부터 차를 끌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궁둥이 무거운 비행기가 우리 차를 받아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설령 우리 가족 전용기가 있다고 해도, 차를 싣고 움직일 만한 공간은 나오지 않으리라. 프라이빗한 전용기라.. 다음 생에나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상상만 해도 절로 흐뭇해진다. 언제든 활주로가 놓인 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자유를 얻는다는 건, 소위 래퍼들이 과시조로 으스대는, 플렉스(Flex) 가능한 최상위 궁극의 아이템이 아닐까 싶다. 바다를 항해하는 개인 요트도 있지만 자유로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마치 자신의 몸에 강철 날개가 돋아난 히어로가 된 듯한 근자감을 선사하지 않을까. 글로는 무슨 말이든 못 하랴. 상상에 상상을 더해 마음껏 써내린다.
결국 우리는 집에서 가족 '전용차'를 타고 군산을 거쳐 목포까지 이동한 다음, 3박을 머무르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엔간한 건물 7층 높이의 여객선을 타고 제주도로 향하는 중이다.
"아빠, 우리 자동차도 이 배에 잘 타고 있는 거지?"
연이 눈을 깜박이며 묻는다.
"다른 차들이랑 잘 쉬고 있어. 차들이 꽤 많아서 이따 나갈 때 시간 좀 걸리겠더라."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슈우웅! 하고 말이야."
"연! 비행기는 좁아서 뛰지도 못하고 갑갑한데, 배 타고 가니까 이렇게 바다도 보고 좋잖아?"
"응, 푸른 하늘도 보고 갈매기도 보고, 심심하진 않은 거 같아."
갑자기 솔과 연이 깡총 뛰어오르며 아슬하게 다가오는 갈매기를 잡으려 한다. 날랜 움직임으로 고도를 높이는 은회색 재갈매기가 우리를 지나쳐 선미 좌측으로 기울어지듯 사라진다.
"얘들아, 이 안에 오락실도 있고, 꽤 넓은 식당에 편의점도 있더라. 아빠랑 구경 가보자."
아무리 기다려도 묵묵부답이다.
아이들은 배 안의 편의 시설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새우깡을 주워서는 곁에 머무르는 갈매기들에게 던져주기 바쁘다.
둘째 연은 타이밍을맞추어 갈매기의 앞길에 던지는 것이 영 서투른지, 한 박자 늦게 아니면 빠르게, 허공을 가른 새우깡은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수면으로 곧장 떨어진다.
오랜 시간 날다가 지친 갈매기 몇몇은 아예 해수면으로 내려와 밀려오는 파도를 타면서 웅크리고 있다가, 허무하게 아래로 떨어진 새우깡을 노리고 잽싸게 달려들곤 한다.
"저 갈매기들이 바다 새우를 엄청 좋아하거든. 그래서 새우깡을 던져주면 저리 환장하면서 달려드는 거란다."
아이들 옆에서 반쯤 남은 새우깡 봉지를 들고 있던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한다.
"언니야, 역시 새우깡에 새우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나 봐."
"어쩐지 맛있더라니. 이거 봐라. 갈매기한테 던지는 족족 다 받아먹어."
솔과 연은 초록색 에폭시로 마감된 갑판 바닥에 누군가 쏟은 새우깡을 연신 던져주다가, 제법 타이밍을 맞추는지 날아드는 갈매기들이 쏙쏙 잘 받아먹는다.
"아빠, 저 안에 편의점에서 새우깡 사다 주면 안 될까?"
"바닥에 떨어진 새우깡, 우리가 다 던져 줬어요."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너무 많이 먹으면 속병을 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쯤에서 그만하기로 한다.
"얘들아, 이제 그만 들어가자. 새우깡은 다음에 사기로 하고.."
"쳇. 안에 들어가면 심심한데.."
"좀 쉬다가 다시 나오자. 어차피 제주도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어."
아쉬움을 무릅쓰고 아빠를 따라 객실 안으로 향하는 아이들. 수없이 많은 새우깡들이 공중에 바다에 뿌려지고, 이를 진짜 새우라 착각한 갈매기들은 끼룩거리며 입을 벌리고 달려든다.
그들의 배 속으로 들어가는 건 퍽퍽한 밀가루와 전분을 팜유로 버무려 튀긴, 얄팍한 새우 향만 입힌 버석한 과자일 뿐. 무릇 인간들이나 갈매기들이나 눈앞에 놓인 새우깡을 좀체 끊어내지를 못하니, 이쯤 되면 마약처럼 참지 못할 갈증을 끌어내는, 치명적인 중독 성분이 일개 과자 나부랭이에 섞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미심쩍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바다 하면 갈매기, 갈매기 하면 새우깡..
3층 객실의 두꺼운 여닫이 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떤 사내아이가 계단참에 쭈그려 앉아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닥의 뭔가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다. 그 아이 옆에 함께 쪼그리니 그제야 보인다.
(이 놈이 어쩌려고 여기까지 날아왔나.)
바닥에 박제된 것처럼 붙어 있는 그것은 거뭇한 '말매미'처럼 보였다.
아득한 망망대해를 건너 이 배에 착륙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목포항 부근 울창한 가로수에 숨어 있다가 운 좋게? 이 배에 탑승한 것 같았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 아이 또한 계단을 내려가다가 이 매미를 우연히 발견한 듯싶다.
한여름이면 귀청이 떨어지도록 울어대는 말매미 이건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녀석은 꼼짝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대로 두면 무심히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의 발아래 으스러지거나, 짓궂은 아이들의 거침없는 손길에 투명한 날개가 찢길지도 모르는 터.
"아저씨가 어릴 적에 매미 좀 잡아 봤거든."
오른손 검지를 길게 펼쳐 매미의 주둥이 앞에 비스듬히 경사를 세워 둔다.
매미는 자신이 즐겨 오르는 이팝나무에서 뻗은 가지로 착각했는지, 잠시 머뭇대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내 손가락 위로 올라탄다.
"우왓, 아빠! 무섭지도 않아?"
"아빠, 따갑거나 아픈 거 아니야?"
조심스레 일어서는 아빠를 따라서 몸을 일으킨 아이들이 호들갑을 떤다.
사내아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멍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보아하니 매미에 대한 이전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을 성싶은데..
"전혀.. 간지럽기만 한 걸."
가능한 오른팔은 나뭇가지인 척 움직이지 않은 채로, 육중한 출입문을 열고 객실로 향한다.
출입문 상단의 동그란 선창에 비친 그 아이는 한 걸음 따라 오려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살짝 떨군다.
복도 옆 쓰레기통에 올려져 있는 투명 플라스틱 커피 용기가 눈에 띈다. 뚜껑을 딸깍 여닫을 수 있는, 내 손가락을 간질이는 녀석의 임시 안식처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가까운 화장실에서 용기를 깨끗이 씻어, 내 살갗을 다리에 돋은 갈퀴로 물고 늘어지는 매미를 살살 달래어 그 안에 풀어준다.
"너무 귀찮게 하면 안 된다. 여기 머무르다가 제주도 도착하면 적당한 곳에 놓아줄 거니까."
"네, 아빠."
솔과 연은 자신의 손가락 길이와 맞먹는 매미를 테이블 위에 풀어준다. 아이들의 손가락에 올라탄 말매미는 조막만 한 손톱 끝에 다다라 버둥대며 갈 길을 잃는다.
"아빠, 이 매미도 바다를 건너고 싶은 게 아닐까?"
"맞아, 언니. 이 녀석도 제주도에 가 보고 싶은 거야."
매미는 소리 내어 울지를 않을 뿐, 아이들의 손가락 위를 활보하며 여기저기를 탐험한다. 호기심이 왕성한 놈일세 그려. 남도 끝단 목포에 갇혀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에는 퍽이나 갑갑했던 모양이구나. 혈혈단신으로 짙게 드리운 가로수 그늘을 떠나, 깊이 모를 아득한 심해를 건너는 철선에 몸을 싣다니.
이 미물은 죽음을 무릅쓴, 일생일대의 마지막 항해를 하는 셈이다.
편안한 삶에 머물지 않고 온몸을 내던진 이 매미와의 마주침은 부질없이 스쳐가는, 가벼운 인연이 아닌 듯싶었다.
"이 매미, 다치게 하면 안 된다. 알았니?"
혹시나 싶어 재차 아이들에게 일갈한다.
"우리가 '맴돌이'라 이름 붙였어요. 맴맴 거리진 않지만.."
"나무 위에서 홀로 지내면 목청이 터질 거다. 아마도.."
그 매미 아니 맴돌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눈에 담고 카메라에도 담는다. 훗날 이 매미의 움직임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아이들과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던, 그날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진귀한 기록으로 남으리라.
어느새 매미와 스스럼없이 가까워진 아이들은 세 시간이 넘는 긴 항해 동안, 별다른 불평불만 없이 그 곤충과 교감하며 제주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제법 친해진 '맴돌이'
"아빠, 맴돌이. 우리가 키우면 안 될까요?"
"우리가 잘 기를게요. 네에?"
제주항에 도착해 퀸 메리 호에서 짐차를 몰고 나와 운전하는 내게,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매미는 집에서 기를 수가 없거든."
"정말 안 되는 거예요?"
세상에는 아이들이 부탁해도 들어줄 수 없는 일이 꽤 많은 법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얘들아..
난 명쾌한 대답 대신 백미러에서 시선을 돌려, 차창을 통해 코발트 빛으로 물든 제주 바다를 무심히 바라본다.
10년 넘게 땅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나무 위로 올라와 짧은 생을 마감하는 매미의 일생.
맴돌이는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에 몸을 날렸다가, 기적적으로 우리 가족과 마주치는 인연을 이루었다. 가벼이 여길 수 없이 맺어진 그 인연의 매듭은 그리 멀지 않은 여정의 초입에서 스르르 풀어졌다.
국립제주박물관 안쪽 깊이 들어가면 어린이 올레 체험관이 나타난다.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타고 내려가면 청록색으로 칠한 나무 그네(누군가 들보에 'BTS'를 새겨 놓았다)가 흔들대는데, 그쪽으로 다가가자 맴돌이가 양 날개와 얇은 배막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매앰, 맴, 웨애앵.."
애가 끊어지는 그의 울음을 필두로
온 사위가 잠시 숨을 죽였다가,
머나먼 남도 끝에서 망망한 바다를 건너온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자신의 동족을 반기다 못해,
나무 그늘에 숨은 참매미며 유지매미, 깽깽 매미 등
큰 할망 섬 토배기온갖 매미들
꽉 틀어 막힌 울 할매 귀청일랑
이 틈에 속 시원히 후비어라 맴맴
파내린 만장굴아득히 떨구어라 따랑
얄팍한 뱃가죽 터져라 두드리리 도로롱,
시끌버끌 낭랑한 합창이
온 숲을 울리고 또
울려대는 것이다.
아이들은 맴돌이가 유난히 시끄러이 울어대는 어느 나무 아래서, 플라스틱 컵의 뚜껑을 열어 그를 가만히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