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깜짝 돌발, 그림자 Show!

이 모든 것이 여름밤을 스치는 짧은 꿈이로다..

by 라미루이











아마도 7년 전, 오늘과 같은 막바지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여름날이었으리라.

그날은 무더운 한낮에 구름 한 톨 보이지 않더니, 해 질 녘부터 자줏빛 새털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근 일주일 넘게 비 한 방울 뿌리지 않더니 오늘은 야밤에 소낙비라도 잠시 퍼부으려나, 난 혼잣말을 뱉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빠의 헐렁한 바짓가랑이를 양쪽에서 붙들고 선, 어린 솔과 연은 연보라 노을이 물드는 하늘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야, 이쁘다! 신기하다고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날은 아이들 엄마가 1박 2일 일정의 학교 워크숍을 간다고 연 이틀 동안 자리를 비우는 날이었다. 홀로 남은 내가 아이들 저녁도 먹이고 쓱싹쓱싹 양치도 시키고, 마무리로 야옹이 겉핥는 세수도 간단히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다. 날 닮아서인지 아이들 또한 야행성 체질인지라 잠이 늦게 드는 편이다.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몇몇 또래 아이들은 밤 10시가 넘으면 연신 하품이 터지고 축 늘어져서 노곤함에 지친 부모 마음을 그리 편하게 한다는데.. 솔과 연은 11시가 넘어도 쉬이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자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부자리를 반듯이 펴고 전자 모기향을 켜놓았다. 혹시나 벽에 납작 엎드려 있는, 굶주린 모기가 있는지 샅샅이 훑고 나서야 아이들을 불렀다.

- 얘들아, 이제 자야지. 아빠도 코오 하고 잘 준비 마쳤단다.

- 벌써요? 아직 졸리지 않은데.. 오늘 엄마도 집에 없고, 왠지 잠이 안 올 거 같아요.

언니의 말에 동생 연도 맞장구를 친다.

- 맞아요, 맞아. 이렇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고 밝은데 꼭 잠을 자야 하나요, 아빠?

난 집안을 대낮처럼 밝히는 거실과 주방의 LED 등을 소등했다. 아이들은 집안의 유일한 빛이 새어 나오는 안방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 얘들아, 이렇게 불을 끄면 밖과 다름없이 집안도 어두운, 칠흑 같은 밤이란다. 저기를 보렴. 창밖에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의 집들도 대부분 불이 꺼져 있지. 이제 모두들 꿈나라를 찾을 준비를 마친 거야. 이미 잠든 채로 드림랜드에서 뛰놀고 있는 착한 아이들도 여럿이란다.

솔과 연은 드문드문 백색 불이 켜져 있는 건너편 아파트 동을 건너보다가 마지못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부자리 가운데 누운 아빠를 사이에 두고 자매가 한 칸 띄어 누웠다. 그럼 불 끈다. 이제 우리 모두 합죽이 조용 모드로 들어가는 거야! 아이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답했다. 난 리모컨 버튼을 눌러 방 조명을 껐다.



20분쯤 지났으려나..

주위는 컴컴한데 아이들 눈이 말똥말똥하다. 슬슬 잠들었나 싶어 가늘게 실눈을 떴는데 냐옹이 눈깔마냥 초록빛 안광을 발하고 있어 그 눈길을 피할 수가 없더라. 난 질끈 눈을 감았다. 아이들을 빨리 재우려고 양쪽 팔을 뻗어 팔베개를 받쳐 주었는데 갈수록 좀이 쑤시고 욱신대다가, 근육이 뭉쳐 쥐가 나려는 바람에 슬그머니 뺄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폭신한 애들 베개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뭉쳐서 머리맡에 대주었다. 잠이 달아났는지 아이들이 말문을 열었다.

- 아빠도 잠이 안 오는 거야? 그런 거지?

- 언니야, 1부터 10까지 하얀 양 머리도 세고, 눈도 꼬옥 감았는데 잠이 안 온다.

난 묵묵부답, 꼼짝없이 잠든 척을 했지만 속이 타드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역시 아이들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해. 아내는 가운뎃 자리에 누워서 아이들에게 자장자장, 자장가 메들리도 조곤히 불러주었다. 섬섬옥수 뻗은 손가락으로 자매 머리칼도 결대로 쓰다듬어 주다가, 그래도 잠이 안 든다 싶으면 숨겨둔 필살기를 꺼내곤 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백옥 같은, 말캉하고 풍만한 두 쪽 가슴을 꺼내어 애들에게 물리는 것이었다. 자매는 애깃 적 자신이 앙 물다가 기를 쓰고 삼키고 꼴딱꼴딱 빨아대던, 바닥이 마를 틈도 없이 발끝으로 줄줄 흘러내리던 어미의 우윳빛 샘을 떠올렸는지.. 두 눈을 감고는 얼굴을 깊이 파묻곤 했다. 우애 상하지 않게 한 가슴씩 차지하여 이제는 바닥까지 퍼올려도 젖물 한 방울 떨어질까 말까 한, 성마른 샘물에 풍덩 뛰어들어 함께 잠수를 하고 물장구를 치고, 개헤엄을 치다가 그대로 수면 위로 떠올라서는.. 저 밤하늘에 뜬 둥근 달을 바라보며 잠드는 것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젖가슴을 꼬옥 감싸 쥐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곤히 잠든 아이들을 조심스레 자리에 뉘어 주고는.. 몸을 일으켜 옷섬을 여미고는 거실로 조용히 나가곤 했다. 그렇게 잠든 자매는 중도에 깨지 않고, 흉악스러운 꿈도 멀리하고는 긴 잠에 빠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아빠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내줄 것이, 쥐여줄 것이 좀체 없었다. 덥수룩한 사내가 맨 가슴을 내보인다 한들, 무성한 잔털 숲이 자라난 휑그렁한 꼭지 밖에 보일 것이 없는 것이다. 장난기 넘치는 아이들은 시큼한 땀내에 전, 구부렁한 아빠의 겨드랑 털을 만지작거리다가 길게 잡아당겼다가, 배배 꼬으며 지들끼리 코를 막고 킥킥대다가 어허, 부릅뜬 눈으로 호통을 치는 내 눈치를 보며 잠에 든 척 어설픈 연기를 할 뿐이었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자기 전에 그림책을 읽어 주는 것도 그때뿐이었다. 처음에는 짧은 문장을 낭독하는 내 굵고 허스키한 저음 보이스에 홀렸는지, 이내 잠에 곯아떨어지곤 하더니.. 이후에 만성이 되었는지 딴청을 부리고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장난을 치다가, 책을 다 읽고 해진 뒤표지를 덮을 때쯤이면 입을 모아 다시 읽어 주세요, 이번엔 <무지개 물고기와 신기한 친구들> 읽어 주세요! 하면서 밤을 새울 작정으로 매달리기 일쑤였다.


이럼 완전 나가린데.. 난 잠을 못 이루고 부스럭대는 아이들의 몸짓을 느끼며 고심하다가 폰을 켰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 아내여, 아이들이 통 잠을 잘 생각이 없는데.. 이를 어쩐다?

- ...

몇 분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 응, 잘 자! 하는 대책 없는 짤막한 답이라도 원했건만 영영 침묵에 빠지다니..

난 선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아이들이 지 엄마 목소리 듣겠다고, 통화하겠다고 벌떡 일어나 난리를 칠까 봐 마음을 접었다. 인스타에 웹 브라우저를 들락날락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나라도 자자, 이런 작정으로 폰을 떨궜는데 난데없이.. 주위가 환해졌다. 심해를 밝히는 발광체가 솟아오른 것처럼..

- 아빠, 벌써 아침 해가 뜬 거야?

- 뭐야, 너무 눈이 부셔, 아빠!

나도 모르게 폰 플래시 기능을 On! 시킨 듯했다. 서둘러 손전등 기능을 끄려 폰을 만지작대다가 방의 천장이 백백으로 밝아진 것이 눈에 띄었다. 어느 소극장 무대 위를 넓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직각의 폰과 구부린 손가락들이 과장되고 확대된 그림자로 투영된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달아난 지 오래고 억지로 재운다고 기를 쓰고 애를 써봤자 헛고생일 뿐이었다. 헛힘을 부린 나만 지쳐 떨어질 것이고 괜히 아이들에게 뜬금없는 짜증을 부릴 가능성이 높으리라. 무더운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아빠와 자매는 잠 못 이루고 꿈질꿈질, 뒤척이기만 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마음 비우고 실컷 놀아 버리자! 아이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놀다 보면 어찌어찌 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면의 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있나. 뼛속까지 하얀 밤을 활활, 모조리 불태우는 수밖에..

난 최후의 원 라운드를 앞두고 코너로 물러나 가쁜 숨을 고르는, 온몸에 상처 입은 복서의 심정으로.. 플래시가 켜진 폰을 바닥에 눕혔다.

- 얘들아, 아빠랑 간단한 놀이하는 거 어때? 아빠도 엄마가 없으니까 도통 잠이 안 오네.

- 아빠도 잠 안 와? 근데 무슨 놀이하려고?

- 언니야, 난 눈을 억지로 감고 있었더니, 눈꺼풀이 딱 달라붙었는지 잘 안 떠져. 눈부시니까 천천히 실눈 떠야겠어.

솔과 연은 눈을 뜨더니 폰과 한껏 밝아진 천장 그리고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그대로 누운 채로 천장을 보렴. 너희들은 편히 보기만 하면 돼. 자, 그럼 시작할까?

난 검지와 중지를 거꾸로 누운 V자로 세워 천천히 걷는 흉내를 냈다. 철거 직전의 낡은 소극장 무대에 등장하다가 철퍼덕, 다짜고짜 자빠지는 초짜 배우의 그림자가 방의 천장에 비쳤다.

- 안냐세요, 여러분! 그나저나 오늘은 들어찬 관객들이 어린이들 2명뿐이네. 이렇게 파리를 날리니 우리 극장이 깡통을 차고 쫄딱 망하는 거야. 암튼 우리는 세상이 두 쪽 나서 무너져도, 극장이 홀라당 망해 부러도 공연을 계속할 거라는 사실! 자, 저기 세상 편하게 드러누운 아이들, 박수 좀 시원하게 쳐봐요잉!

오프닝을 맡은 그림자 배우의 주문에 솔과 연이 짝짜꿍, 신나게 박수를 쳤다.

- 자, 오늘 무대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떼로 등장할 거예요. 처음으로 스타트를 끊을 동물은 바로바로..




난 한 손으로 주먹을 쥔 채, 남은 손으로 V자를 펼쳐 머리 위에 올렸다. 늑대를 피해 숨은 소굴에서 머리를 내밀고 눈치를 보다가 깡총깡총, 천장 무대를 내달리는 검은 토끼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 어디서 마음씨 고약하고 잔인한 늑대가 나타난 걸까? 토끼는 긴장한 채로 주위를 둘러봤어.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조명을 받은 작은 눈동자들이 점점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 에이, 아무도 없잖아. 다시 고개 정상을 향해 달려볼까나.

두 귀를 펄럭이는 산토끼는 깡충깡충 보폭을 넓혔다. 헤엑헤엑,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뱉느라 토끼의 한쪽 귀가 이렇게, 반으로 접혀 버렸네. 내 검지가 반으로 꺾이자 무대 위 토끼는 귀 하나만 비죽 솟았다.

큭큭 대는 아이들의 실소가 터진다.

그림자 토끼는 자신의 소굴로 숨어들고 대신 느릿느릿 한 달팽이가 굼뜨게 등장한다. 삐죽한 안테나처럼 뻗은 두 더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자신의 딱딱한 겉껍질 속에 머리를 숨겼다가 내밀었다 하면서.. 끈적한 몸짓으로 천장 무대를 휘젓다가 난 이제 멍 때리러 집에 가야지! 대사를 남기고는 구석으로 퇴장했다.

그렇게 열대야를 잠재우는 한 여름밤의 아빠 멋대로 마음대로 기획, 연출하는 열 손가락 그림자극 무대가 막바지로 치달았다. 월월! 짖어대는 멍멍이 닥스훈트와 지 발바닥을 핥아대는 냐옹냐옹, 먼치킨이 등장해서 한바탕 뒹굴고 뛰놀다가 자신이 다리가 더 길다고, 누가 더 잘록한 숏다리인지 어디 재보자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무대 아래 누운 지들이 우아하게 날개를 펼친 백조 그림자를 만들어 보겠다고, 폰 위로 손가락을 들이미는 바람에.. 급기야 공연이 중단되는 돌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엔딩을 앞두고 그동안 등장했던 모든 동물 친구들이 너도나도 꽥꽥 삐악삐악 멍멍, 어흥 야옹야옹!~ 무대 위로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비좁은 천장 무대가 그림자로 꽉 채워질 무렵.. 갑자기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무대 조명에 문제가 생긴 듯 했다.

- 꺄악, 뭐야 뭐야? 갑자기 무서워. 무섭다고!

- 나 소리 지를 거 같아. 아빠, 귀신 나올 거 같아.

난 꺼진 폰을 만지작대다가 허탈한 목소리로 마지막 멘트를 읊조렸다.

- 얘들아, 무대 막을 내려야 할 거 같아. 밤샘 공연이 이렇게 끝이 날 줄이야. 아빠도 무척이나 아쉽네.

- 아빠, 폰 배터리 다 된 거지, 맞지? 엄청 재미있었는데 나도 아쉽다.

- 아유, 무서워. 여우 할매 귀신 나오면 어뜩하지. 어떡해!

자매는 그제야 어둠이 무섭다고 아빠 품으로 서로 파고들었다. 난 옳다고나 싶어 얇은 이불을 덮고는 이제 코오, 자자! 폰도 꺼지고 그림자 공연도 성황리에 잘 마치고.. 덕분에 아빠도 무지 피곤하단다. 이제는 정말 잘 시간이란다.

아이들은 잠시 뒤척이고 새근대다가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커튼이 휘날리는 창문 너머로 번쩍하는 빛이 내리친다. 멀리서 우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바깥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차 커졌다.

난 오르내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번득이는 벼락이 내리칠 때마다 창문 틈으로 빛이 새어들었다. 검붉은 장막을 두른 천장 무대를 잠시 밝히는, 빛의 잔상이 남을 때마다 언뜻언뜻 형체가 모호한 그림자들이 구석에서 어른대곤 했다. 그들은 손을 흔들다가는 기다란 귀를 펄렁대기도 하고,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기도 했다. 어느 녀석은 무대 위로 얼마간 걸어 나갔다가 황급히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여름밤을 식히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동안, 우리를 내려다보는 저 위 무대에서는 재탕 삼탕의 앙코르 공연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무슨 꿈을 그리 꾸는지.. 솔과 연은 방그레 웃기도 하고 박수를 치다가, 무언가를 포옥 껴안는 시늉도 하면서 온 방안을 누운 채로 휘젓고 다녔다. 난 선잠이 들었다가 얼핏 깨었다가를 반복하다가, 급작스러운 폭우가 멈추고서야 겨우 깊은 잠에 들었다.







* Sigur Rós – Klettur (Official Audio)>>

https://youtu.be/OrBncFu_G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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