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과 무한한 물길이 반을 가른 곳, 고운 모래와 모나지 않은 자갈이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곳.
끝이 없는 투명한 물결이 흰 발목과 무릎을 적시는 그곳으로 가자.어서 달려가자, 얘들아!
솔과 연은 올여름도 어김없이 푸른 바다를 원했다. 아이들은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왔음에도 지척의 바다를 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어찌 보면 타당한 주장을 펼쳤다. 난 너희들이 그토록 원한다면 저렇게 성난 표정으로 세찬 비를 뿌리는 하늘도 맑게 개지 않겠냐고 더 기다려보자고 답했다.
동해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다음날 오전에야 겨우 그쳤다. 숙소의 창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햇살이 비치자 난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이제 가볼까, 어디로? 당연히 바다지, 어디겠어? 들뜬 표정의 아이들은 물안경과 바람 빠진 튜브를 주섬주섬 챙겨서 내 뒤를 따랐다. 목적지는 한섬 해변. 동해시에서 이름난 해수욕장이란다.
도착하니 해변을 따라 영동선 기찻길이 나란히 달린다. 해수욕을 하다 보면 때때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화물 기차가 시선을 끈다. 해변 입구의 편의점을 사이에 두고 양 갈래로 길이 나뉜다. 절벽 위로 올라 고불개 해변으로 향하는 구불한 해안길과 한섬 해변으로 향하는 직선의 나무다리가 보인다. 우리는 평탄한 덱 길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넜다.
처음에는 멋 모르고 그늘 한 점 없는 모래사장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팽팽하게 부푼 튜브를 껴안고는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가까이서 본 바다는 마냥 깨끗하고 푸르지는 않았다. 거무튀튀하고 붉은 해초들이 뒤엉켜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 떠다녔다. 유난히 고온다습한 올여름이었기에, 높은 해수 온도가 지속되어 과다 번식한 해조류인 듯싶었다. 이른바 적조 현상이라 하겠다. 솔과 연은 이질적인 색을 띠는 그것들을 피해 원래의 색깔을 지닌 바다를 찾아 이리저리 헤엄을 쳤다. 코로나 유행 이전부터 집 근처 가까운 체육 센터에서 수영을 배웠기에 얕은 바다는 그동안 갈고닦은 수영 실력을 뽐내기에 충분한 놀이터였다. 자매는 번갈아 잠수를 했다가 떠오르며 누가 더 오래, 수면 아래 머물렀는지 가벼운 논쟁을 벌였다. 자유형에서 평영, 만타 가오리처럼 날개를 펼치는 접영으로 자유자재로 영법을 바꾸다가, 지치면 바다를 등지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유로이 바다를 떠돌며 헤엄치는, 한 쌍의 어린 돌고래 무리 같았다. 아내와 난 돗자리 위에 앉은 채,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난 얼마 전, 복막을 찢는 수술을 받은지라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 선은 멀찌감치 앉아, 세상모르게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흡족해하는 듯했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자 뜨거운 열기가 모래밭 아래서 올라왔다. 부랴부랴 차로 돌아가, 트렁크에서 꺼내온 우산들을 돗자리 주변에 꽂아 볕을 가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신나게 물질을 하던 아이들은 자리를 뜨기 싫어했지만, 선과 난 이미 짐을 챙겨 절벽을 향해 걸음을 옮긴 후였다. 잠시 후 솔과 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리 뒤를 따랐다.
8월 한낮의 강렬한 볕이 내리쬐도 바다에 푹 빠진 아이들
새로 옮긴 자리는 해안 도로 올라가는 절벽 아래 그늘진 곳이었다. 아이들은 튜브 대신 내가 빌려온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한섬 바다는 조끼 여분이 있다면 무료로 대여 가능하다. 파도는 세찬 편이었고 군데군데 비죽한 암초가 솟았다. 솔과 연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들이치는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꺄아악, 끼야호! 하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난 그들이 괜찮은지 확인하고는 손을 높이 흔들었다. 물결 따라 일렁이는 아이들도 손을 들어 그에 화답했다. 시선을 돌리자 해안선 끝에 어느 아빠가 보였다. 그는 4살 무렵으로 보이는 딸아이에게 화사한 패턴의 조끼를 입히고, 도넛 튜브를 씌우고는 조심스레 바다로 다가가고 있다. 자신의 앙증맞은 발가락 사이로 파도의 흰 거품이 스며들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아이. 아마도 바다를 처음 접하는 게 분명하리라. 아이는 몇 걸음 못 가서 발목 아래로 바닷물이 잠기자 놀라서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아빠야,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 온몸이 돌처럼 굳어서는 바락바락, 악을 쓰고 울음을 터뜨린다. 당황한 아빠는 하는 수없이 아이를 덥석 껴안고는 바다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뭍으로 도망치듯 피했다.
- 아빠가 한동안 고생하겠어. 수영 모자에 튜브 보니 다 새로 준비한 거 같은데 말이야.
- 그러게, 우리 아이들도 물이라면 기겁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 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만 놀아.
선은 선글라스로 시선을 가리고는 무심히 말했다.
- 특히 연은 물 근처도 못 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어릴 때 설악 워터파크였나? 아마 거기 맞을 거야. 수심 1미터도 안 되는 유아 물놀이장에 같이 들어갔는데, 내 손목에 팔꿈치를 얼마나 세게 붙들었는지 벌겋게 자국이 남았더라고.. 그마저도 애 낯빛이 사색으로 질려서는 벌벌 떨고, 겁에 질려서 울지도 않길래 오래 놀지도 못했지만 말이야.
두꺼운 타월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벌벌 떠는 어린 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은 기가 막히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 저길 보라고. 지금은 언니보다 물을 더 좋아할걸. 지금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 제일 아쉬워하고 가지 말자, 한사코 매달릴 애가 바로 연이야.
언니보다 한 걸음은 더, 수평선에 바짝 다가서는 아이다. 볼 때마다 항상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난 양팔을 들어 안쪽으로 저으면서 해변으로 가까이 오라 수신호를 보냈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발길질을 해 다가왔지만, 이내 밀려나는 파도에 몸을 실었다. 난 아이들 주위에 떠다니는 부표와 헤엄을 치는 다른 이들을 지켜보며 너른 바다에 아이들을 맡기기로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들은 지친 표정으로 바다를 빠져나왔다.
- 아빠, 아무래도 여기 오기 전에 바다가 훨씬 좋은 거 같아.
- 거기가 파도가 잔잔하긴 한데 볕이 너무 뜨겁더라. 엄마, 아빠 얼굴이랑 어깨 벌겋게 탄 거 봐라. 그래서 피해 온 거야.
- 그렇긴 한데.. 여기가 시원한 대신에 바다 들어가면 바닥이 비죽비죽해서 발바닥이 따갑고 아프더라고.
세상 어디든 일장일단이 있는가 보다.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곳은 없다는 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저기는 피부가 데일만큼 화끈한 태양이 내리쬐는 대신 바닷속은 모난 구석이 없고 고른 편이다. 뒤늦게 불볕더위를 등지고 피한 여기는 서늘한 대신 바다는 거친 데다 비죽한 암초가 바닥에 깔려 있다니.. 돗자리에 주저앉은 자매의 여린 발바닥은 불그스레하고 점점이 까져 핏물이 맺혀 있더라. 바다 밑 세찬 물살에 깎인, 날 선 돌부리에 맨살이 찍힌 탓이리라. 안쓰러운 엄마, 아빠의 표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표정이 밝았고 다시 바다에 몸을 맡기려 했다. 난 그들을 가로막았고 고개를 저었다.
짙푸른 바다 반대편으로 해가 지려한다. 조만간 짙은 어둠이 닥칠 것이다. 한낮을 뜨겁게 달구었던 열기는 언제쯤 식을는지 알 수가 없다. 처음 자리 잡았던 모래밭은 그 열기를 식힐 틈도 없이 떠오르는 아침 볕에 비명을 지르리라. 우리는 돗자리를 차곡차곡 개고 짐을 챙겨 해변을 빠져나왔다. 차에 몸을 싣고는 오르막길을 따라 고불개 해변 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오래지 않아 한섬 바다의 숨은 진풍경을 접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