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바다와 갯벌을 바라보는 냥이 카페는 낡은 기차간 하나를 방풍벽 삼아 낮게 웅크리고 있다.
솔과 연이 원하는 대로 종일권 티켓을 끊어 개찰구를 밀어 입장한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아내는 근처 카페에 피신하여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출발할 당시 서울 인근에는 쌀쌀맞은 비가 내렸지만, 여기는 날씨가 화창하다. 하늘도 푸르고 바람도 세차게 불지 않는다. 허리를 낮추고 삐걱대는 나무 여닫이문을 밀고 들어가면 인조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이 나타난다. 곳곳을 활보하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 방문자들은 담요를 깔고 바닥에 앉아 다가온 냥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다. 다행히 이전에 찾았을 때처럼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비지는 않는다.
우리는 따가운 가을 햇빛을 피해 그늘진 곳을 찾아 담요를 펼쳤다. 아이들이 닭가슴살 봉지를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고양이들이 달려든다. 성질이 급한 몇몇 냥이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 무릎 위로 올라서기도 하고 훌쩍 점프하여 냥펀치를 날리기도 한다. 솔과 연은 기겁했지만 냥이 간식과 플라스틱 스푼을 떨구지는 않았다. 도심과 동떨어져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정확히 말하면 '고양이역 보호소'이다.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불구가 된 아이들이 눈에 띈다. 한쪽 발목이 꺾이고 척추가 골절되어 어긋나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냥이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절뚝거리는 그들이 안쓰럽다. 동작이 느려서 항상 남들보다 뒤처지기에 간식을 줄 때면 먼저 찾아가서 입에 넣어줘야 한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탓에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물이 흐르다 눈곱이 겹겹이 낀 아이들이 태반이다. 등을 쓰다듬어도 비틀린 뼈마디의 앙상하고 딱딱한 감촉만이 남아 살갑게 보듬어주지도 못했다. 힘없이 수그린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는 추르 간식을 입안에 가득 넣어주었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지만 이전 주인들에게 학대를 받았거나, 버림받아 이곳으로 들어오는 냥이들도 많다. 가녀린 몸 곳곳이 멍투성이에 흉터 자국인 아이들. 무자비한 폭력으로 앞니 여럿이 빠지고 부서진 아이도 있다. 심지어 긴 꼬리가 잘린 아이도 있다. 집에서 멀리 버려져 산중을 헤매다가 올무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잃거나, 목덜미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도 여럿이다. 그들 대부분은 인간들을 두려워하고 멀리 거리를 둔다. 간식을 주고 살살 쓰다듬으려 해도 허리를 낮추어 자리를 피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냥펀치를 휘두르고 이빨을 드러내는 아이도 있다. 그들이 입은 트라우마가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어쩌면 영영 인간들의 곁에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큰 소리로 웃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냥이들은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며 구석으로 숨어든다. 다채로운 색깔의 영롱한 눈동자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기고, 두려움에 잠식되어 인간들을 경계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무책임한 데다 잔혹하기까지 한 인간들의 성미와 난폭함에 질린 냥이들은 서쪽 바다와 인접한 영흥도 구석에서 겨우 안식처를 찾았다. 많은 냥이들은 악몽과도 같았을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등을 보이는 집사들을 노려 냉큼 한쪽 어깨에 올라타더니 의기양양하게 아래를 낮보는 용기백배 터프 냥이도 있었고, 거리낌 없이 곁에 다가와 스킨십을 꺼리지 않는 애교만점 부비냥이도 부지기수다.
내 품으로 기어든 아이. 온몸이 마르고 상처투성이여서 잠시나마 푹 쉬고 가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이곳의 사장님은 평생토록 고양이들에게 헌신하기를 결심하고 영흥도에 자리 잡았다. 치명적인 장애를 입거나, 주인에게 상처받아 심신이 지친 수많은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찾는 분들은 입장료가 다소 비싼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고양이역 카페 & 보호소의 80여 마리 고양이들을 세심히 보살피기 위한 기부 목적이라 생각하면 납득이 갈 것이다. 비밀스러운 냥이들의 아지트가 여기저기 입소문을 타고 방송에도 나오면서 몇몇 무책임한 자들이 근처에 고양이들을 유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올해 8월에도 케이지에 갇힌 여러 고양이들을 이웃집에 버리고 가는 바람에, 40도 불볕더위에 아이들이 하마터면 떼죽음 당할 뻔했다. 온몸이 땀에 전 채, 비좁은 케이지 안에 뒤엉켜 헐떡이는 아이들은 바로 앞에 다가온 죽음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고양이역 카페 인스타에 올라온 그 영상을 보고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무책임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고양이 유기범을 수배하고, 격앙된 어조로 비난하는 카페장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해당 영상을 찾아보기 바란다.
최근에는 갈색 털을 휘날리는 멍뭉이도 이곳에 들어왔다. 견종은 확실치 않고, 이름은 '몽찌'라 한다. 고양이 일색인 곳에 강아지가 처음 발을 들인 것이다. 고양이들의 텃세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고 트러블 없이 지내고 있어 놀랍다. 삑삑, 누르면 소리 나는 장난감에 흥미를 보이고, 활달하고 달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이들을 잘 따른다. 냥이들과 달리 사람들의 품에 안기는 것을 즐기고, 겨드랑에 두 손을 넣어 조심스레 들어 올리면 더 격하게 포옹해 달라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이 너무나 귀엽다. 이 아이도 어디서 상처를 입었는지 오른쪽 눈을 뜨지를 못한다. 천성이 밝은 녀석이지만 '간식 금지' 깔때기를 목에 두르고 있어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고, 숨은 사연이 만만치 않을 듯한 강아지다.
하나뿐인 멍뭉이, 몽찌. 불쌍하게도 간식 금지 깔때기를 두르고 있다.
저 장난감 뼈다귀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데.. 아이들이 가지고 도망가면 털이 휘날려라 뒤쫓기 시작한다. 정말 지치지도 않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활달한 녀석이다.
오후 5시 40분이 되면, 사장님이자 집사가 박수를 치며 그들을 이끈다. 나른한 오후가 들썩이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양지바른 잔디밭과 간이 의자, 기차간에 숨어 잠을 청하던 아이들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집으로 향한다. 나름의 서열 대로 줄을 서서 나무 계단을 타고 열어 놓은 미닫이 창문 사이로 하나둘, 들어가는 그들의 퇴근 행렬은 고양이역 카페 & 보호소의 명물이자 상징과도 같다. 서열을 거슬러 누군가 먼저 문지방에 발을 들이밀면 맹렬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떻게든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으려 어딘가에 숨어 눈치를 보는 녀석들도 있다. 집사에게 덜미를 잡혀 끌려 들어가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야외에서 잠드는 녀석들은 특별히 예외를 두기도 한다. 멍뭉이 몽찌는 미적대는 냥이들을 꼬리 치며 뒤쫓아 숙소 입구로 몰기도 했다. 녀석은 주인을 도와 양치기 역할을 자처했다.
고양이역 카페 & 보호소의 유명한 냥이 퇴근/퇴장 세리머니..
솔과 연은 아쉬운 감정이 역력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흥도 앞바다는 밀물 때가 되었는지 성마른 갯벌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카페 정문에 그려진, 리본을 두른 초록 외계 고양이에게 다음에 보자!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