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ki. 아이슬란드 어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아이들 책을 빌리기 위해 서울시 '어린이 도서관'에 들를 때면, 맞은편에 눈에 띄는 공간이 있었다. 몸을 웅크린 낮은 건물. 하얀 외벽에 단정한 볼드체로 쓰인 'FOLKI'라는 이름. 경쾌하면서도 이국적인 이름이 품은 의미 덕분인지, 그 주변은 항상 힙하게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사진 포즈를 취하는 이들, 생생한 나뭇결이 일렁이는 출입문과 직사각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항시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서촌의 명소로 이름난 카페였다. 난 서촌보다는 어린이 도서관 정문 앞 카페라고 부르고 싶다. 5년 넘게 도서관을 오가면서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때면, 아이들과 선을 먼저 들여보내고 난 홀로 차 운전석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주차장 만차가 풀리길 하염없이 기다리며 멍을 때리던 곳이 바로 'Folki' 앞이었다.
이 카페가 예전엔 전통 한옥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나무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난 곁눈질로 그 안을 훔쳐보곤 했다. 다소 어두운 실내와 벽에 걸린 가죽 가방이 어렴풋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난 언젠가는 저 카페에 들러 사진도 여럿 찍고, 분위기도 누리며 커피도 마시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쉬이 시간이 나질 않았다. 보통 일요일 오후에 들리는 어린이 도서관의 주차장은 빈자리가 좀체 나지를 않았다. 운 좋게 공석을 차지한다 해도 여행용 가방 2개를 가득 채우도록 아이들 책을 빌리고, 다른 도서관으로 바삐 이동하다 보면 Folki 카페는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에서 멀리 사라지기 일쑤였다.
오늘은 그 카페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거 같았다. 솔과 연은 학교 수업 중이었고, 금요일 오전이라 주차장은 여유로웠으니까. 차 트렁크에 육중한 무게의 캐리어를 실었는데, 선이 조수석에 타기를 머뭇거린다.
- 시간도 남는데.. 우리 카페 들러서 커피나 마시고 갈까?
- 좋지. 오늘은 애들이 방과 후 수업하는 날이라 서두르지 않아도 돼. 길도 안 막히고 말이야.
잠시 후 우리는 도서관 정문을 지나 길을 건넜다. 카페의 여닫이문은 어서들 오라고, 한참 늦게 왔어도 환영하다는 듯, 활짝 열려 있었다. 우리는 그 안으로 발을 들였다. 평일 오전이라서인지 실내는 붐비지 않았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다. 소박하면서 미니멀한 공간이라 표현하고 싶다. 옛 한옥의 구조를 유지한 탓에 몇 걸음만 옮기면 대청마루에서 작은방과 사랑방을 오갈 수 있다. 모두를 처음 맞이하는 마루 공간은 아담하지만 천장이 투명창으로 훤히 뚫려있어 개방감이 상당하다. 조명이 밝지 않은데도 자연광이 쏟아져 작은 활자의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다. 몇몇 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낮은 편이라 오래 앉아 있기는 불편하다. 솔직히 착좌감이 별로다. 그래서인지 벽과 맞닿은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커플들이 보인다.
아직 주간 날씨는 무더운 편이라 차가운 밀크티를 주문하고 실내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거친 돌로 만든 세면대를 기준으로 좌우로 갈라지면 숨은 방이 나타난다. 각 방마다 특색이 있다. 좌측 룸은 거친 펠트로 짠 패턴 양탄자가 벽에 걸려 있는가 하면, 반대편 룸은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진 현대적인 그림이 액자에 걸려 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구옥을 지탱하는 서까래와 들보, 기둥이 노출되어 있고, 어딘가 미지의 공간으로 통할 듯한 낡은 문고리도 벽면에 돌출되어 있다. 한 마디로 트렌디하면서도 아늑하고 정겨운, 올드 & 뉴가 뒤섞인 공간이다 싶었다.
자리로 돌아와 주문한 아이스 밀크티를 마신다. 선이 주문한 말차 라테도 한 모금 맛을 본다. 평범한 맛이지만 올드 한 LP 오디오에서 울리는 재즈 선율과 그윽한 실내 분위기 탓인지 더 달콤하고 청량한 듯하다. 선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부근의 직장인들이 들이닥치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몇 젊은 여인들은 카운터 안에서 분주히 일하는 어느 사내를 흘깃거리고 눈웃음을 친다. 다소 무뚝뚝한 그는 배우 박보검의 마스크와 두상을 얼핏 닮았다. 멋모르는 여자 여럿 울릴 듯한, 차갑고도 매끈한 얼굴이다. 대체 당신은 전생에 무슨 공덕을 그리 쌓았길래.. 초가을 타는 여심 홀리는 복을 타고났을까? 난 부러운 마음을 남기고 'Folki' 카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