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클라인_<레디 플레이어 투>를 읽고..
2015년 국내 출간된 <레디 플레이어 원>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저자 '어니스트 클라인'은 메타버스 & 가상현실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메시아로 거듭났다. 원작의 진가를 알아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2018년 동명의 영화를 개봉했다. '오아시스'라는 가상 세계에 숨겨진 세 개의 열쇠를 찾는 모험을 그린 영화는 원작을 스크린 상에 훌륭히 재현했다. 전 세계의 대중문화 오타쿠와 메타 버스 신봉자들은 원작에 이어 영화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대중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N 차 관람이 늘어나고 도서 판매량이 늘어날 즈음, 나 또한 서울 어느 극장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을 감상했다. 빈민가의 10대 소년이 가상현실에 우연히 뛰어들어 퀘스트를 완수하며 성장한다는 스토리는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극적인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막판 거대한 건담과 메카 고질라와의 한 판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영화 감상 후 접한 원작은 500페이지가 넘는 텍스트를 통해 가상세계를 세밀히 구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우정과 사랑,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저자는 평생토록 덕질을 통해 갈고닦은, 책과 영화/음악 등에 대한 고급 & 전문 지식을 사이사이 배치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독자들은 그가 숨겨 놓은 복선과 힌트를 해독하고 풀이하며, 주인공과 함께 미션을 완수하고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쾌감을 누릴 수 있다.
몇 년이 흐른 후, 저자는 자신이 창조한 오아시스라는 세계가 과거의 유산에 묻혀 망각되기를 원치 않았다. 무한 덕질을 통해 습득하고 켜켜이 누적된, 오마주를 바쳐야 마땅한 무궁무진한 대중문화판이 그를 키보드 앞에 다시 앉혔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오엔아이'라는 헤드기어를 통해 인간의 뇌와 정신까지 컨트롤하는, 기존의 오아시스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고 진일보시키는 변혁을 꿈꾸었다. 정점에 오른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오아시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만, 디지털 아바타 빌런의 출현과 함께 그의 아성은 삽시에 무너진다.
세이렌의 영혼을 깨우고 최강의 가상 빌런을 격파하기 위해 일곱 개의 조각을 찾아야 하는, 흥미진진한 퀘스트가 펼쳐진다. 흘러간 대중문화에 경배하고, 미래 세계를 촘촘히 건설하는.. 어니스트 클라인의 특기이자 장기는 신작 <레디 플레이어 투>를 통해 보다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일련의 퀘스트를 통해 세가에서 출시된, 시대를 앞선 여성 닌자 아케이드 게임과 80년 대 코미디 영화를 대표하는 '존 휴스' 감독을 소환한다.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팝 장르를 확장하고, 파격적인 캐릭터와 다양한 성 역할을 시도한 '프린스'에 오마주를 바친다.
마지막 퀘스트는 판타지의 영원한 대부, J.R.R 톨킨이 창조한 '실마릴리온'의 세계에서 궁극의 대적 '모르고스'의 왕관을 훔쳐야 한다. 저자는 마르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오아시스'를 탐험하는 이들의 좌충우돌, 혼란스러운 여정을 매끄럽게 촘촘히 구현했다. 텍스트로 차곡차곡 빚어지고 쌓아 올려진, 가상 우주에 떠다니는 온갖 피조물들은 손에 잡힐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실감 나고 생생하다. 어디 그뿐이랴! 저자는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할 가상 세계에 대한 위험 요소를 포착하고,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을 예견하여 소설의 주요 서사로 다루는 데 성공했다.
리얼 월드와 가상 세계의 대립, 인공 지능/아바타의 체제 이탈과 반란, 마인드 백업과 이를 통한 디지털 환생과 멀티 유니버스 탐험까지.. 민감하면서도 복잡한 가상의 주제를 평생을 건 덕질과 탐구 정신으로 정면 돌파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근 어니스트 클라인은 레디버스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메타버스 플랫폼 'The ReadyVerse'를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 "미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다."라고 말하는 그는 진정한 덕후는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