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첫 출간된 이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20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더글라스 케네디_<빅 픽처>. 2024년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간되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당시에 이 책을 펼쳐 읽지는 않았다. 치열한 사회생활에 지쳐 허덕일 때였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신뢰하지 않는 독서 취향인데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 책이 살아남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소설은 14년이 흐른 후에도 독자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친 시간의 풍파에 밀려 수북이 쌓인 책 무덤에 묻히지 않고 신간 목록에 우뚝 선 <빅 픽처>. 난 말끔히 리커버 된 책 표지를 열어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공들여 창조한 이 소설은 변호사 '벤자민'이 갈수록 발목을 붙잡고 꼬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 스릴러 범죄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벤자민은 일찍이 사진작가를 꿈꾸지만 아버지의 강권에 굴복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작가를 꿈꾸는 아내와 결혼하여 어린 자식들을 돌보며, 남부럽지 않은 중상류층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아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그와 충돌하며 불만을 표출한다. 결국 이웃 어느 사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벤자민은 그를 추적해 덜미를 잡지만,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상간남을 살해하고 만다. 벤자민은 깊은 고뇌 끝에 완전 범죄를 꾀하며 치밀한 알리바이를 통해 2회 차 인생을 작당하는데.. 과연 그의 신분 세탁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 행세를 한다는 서사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스릴러물 <재능 있는 리플리>와 르네 클레망 감독이 연출하고 알랭 들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에서 접한, 익숙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또는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꿈과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로망을 자극하며 기존의 스릴러물과 차별화를 꾀했다. 저자는 벤자민(벤)과 주변 인물과의 밀고 당기는 갈등 구조와 이를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플롯을 치밀히 전개하며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묘사와 사진 예술에 대한 감평은 디테일이 살아있고, 관련된 인물들의 대화는 생생하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결국 <빅 픽처>는 밀리언 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만약 벤이 와인병을 들어 게리 서머스의 머리를 가격하지 않았다면, 맥없이 주저앉아 현실에 안주했다면 이후 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었으리라. 또는 살인을 저지른 후 무기력하게 자수하거나 허술하게 행동했다면, 그는 잔혹한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채로 감옥에 갇혔으리라. 그는 자신을 옥죄는 굴레와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생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그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임기응변에 천운마저 그를 감싼 탓에 제2의 인생은 성공하나 싶지만, 운명은 그를 호락호락 놔주지를 않는다. <빅 픽처>, 이 소설은 비좁은 삶의 화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는 한 남자의 험난하고 기나긴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그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며 도중에 마주치는 이들은 협력자도 있지만, 악의에 찬 송곳니를 드러내는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벤이 어떻든 역경을 돌파하고 사진작가로서 재능을 꽃피우면서, 그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은 그를 동경하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단숨에 독파하고 역자 후기까지 읽고 나서 궁금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조력자이자 애인 앤과 함께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았을까? 과연 이후 도래하는 프라이버시가 전무하고, 사방팔방 관계가 뻗어가는 SNS 시대에 그는 신분을 감출 수 있었을까? 어찌했든 그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자신의 인장이 새겨진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한 폭의 인생 그림을 덧 그리기 위해 구상, 스케치와 세부 묘사를 하는 전 과정을 누리고 싶다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펼치시라.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맛볼 수 있는 최대치의 대리 만족과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