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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Apr 09. 2024

그들 덕에 우리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3권 <발코니에 선 남자>를 읽고..








나는 병든 린덴나무, 젊은 나이에 시들었다네.

마른 나뭇잎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지. 내 머리에 달렸던 것들을..

_<생명과 푸르름을 주오>_구스타프 프뢰딩, 스웨덴 서정 시인_334p







마르틴 베크 세 번째 시리즈. 무대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답게 횡행하는 범죄는 잔혹하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원에서 노약자들을 노린 흉악 범죄가 발생한다. 노인들이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후 소지물을 절도당하고, 무방비 상태의 아동을 노린 성폭행 교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대도시는 두려움에 떨고 경찰 치안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친다. 시민들이 자경단을 꾸려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순찰을 하다가 잠복 형사를 구타하는, 웃지 못할 사건도 터진다. 연쇄적으로 터지는 강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연일 밤을 새우는 형사와 경찰들은 피로에 찌들어 무기력한 모습이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 콜베리, 군발드 라르손, 멜란데르는 별개의 건으로 보이는 강도/강간 사건의 용의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지 오래다. 악인은 다른 악인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고 했던가? 노상강도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검거하여 그를 통해 아동 강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보려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허나 이 사건들의 시작과 끝을 서술한 책을 펼쳐본 우리는 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사건 발생 전, 어느 골함석판 발코니에 서성이는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독자들은 그가 아동 강간 사건의 피의자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다.




유능한 형사들은 헛물만 켜고 있고, 사건의 핵심에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범인을 놓칠 수밖에 없어. 또 다른 아동 피해자가 생길지도 몰라. 스톡홀름의 모든 시민들과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애정하는 독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는 가운데.. 형사들은 드디어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를 움켜쥐고는 범인의 은신처에 접근한다. 최초에 수상한 용의자의 신원을 제보한 어느 부인을 찾는 과정은 지난하기 그지없다. 막강 논리력에 피지컬을 겸비한 베테랑 형사의 종횡무진 활약을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히어로물은 셜록 홈스나 필립 말로 시리즈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이름 모를 말단 경찰이 순찰 도중 들른 빵집에서 주위를 관찰하고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발코니에 선 남자를 쌍안경으로 스토킹 한 부인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삼엄한 봉쇄를 벗어나 으슥한 변두리 지역에서 다음 피해자를 물색하던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 또한 우연함을 가장한 순찰 경찰의 노상 방뇨 덕분이었다. 일종의 횡재 아니면 운명적 연행/체포라고나 할까. 천재적인 히어로 형사의 활약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천인공노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불철주야 반복 업무를 하는, 평범한 경관들의 협력과 포기를 모르는 의지 덕분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현장에서 발로 뛰고 음지를 살피는 들 덕분에 사건을 해결하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이 셰발 & 페르 발뢰가 그리는 경찰들은 그렇게 서로 빚을 지고 신세를 지는 가운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며 대도시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위험 지역을 순찰하고 치안을 책임지는 모든 경찰들 또한 그럴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범죄 누아르 소설 <발코니에 선 남자>를 읽으며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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