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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Apr 16. 2024

시작과 끝이 모호한 환상의 세계에 빠지다!

테스 건티_<우주의 알>을 읽고..








나이가 많아지면 서로에게 오줌을 싸고 뭐 그러는 거야. 따로따로 넣은 우리가 열 개는 있지 않으면 저놈들은 싸우기 시작해. 그리고 수컷이 다른 수컷을 거세하지. 그런다니까. 고환을 물어뜯어버려. 그러면 피투성이 난장판이 되는 거야. 그래서 저것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잡아 죽여야 해. 안 그러면 난리가 나.


_1989년, 미시간 주 플린트 주민 론다 브리턴..



가제본과 정식출간본을 나란히 두고.. 출판사는 이 소설의 진가를 알아보고 출판/홍보 과정에 공을 들였다.



테스 건티의 데뷔작 <우주의 알>. 배경은 인디애나 주의 몰락한 도시 바카베일. 러스트 벨트라 불리는, 미국 디트로이트와 플린트 시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도시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토끼장'을 빼닮은 어느 빈민가 아파트 라라피니에르. 우리는 이곳을 슬럼가, 닭장이라 비하하여 말할 것이다. 서두부터 18세 소녀 블랜딘 왓킨슨의 영혼은 육체에서 이탈한다. 그녀가 신봉하는 신비주의자들의 믿음 대로 심장의 황홀경, 천사의 화살 공격이 벌어지나 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녀의 온몸을 뒤덮고 있다. 이후 등장할 자동차 공장, 폭스콘의 노동 착취 현장, 솜꼬리 토끼의 행렬, 어머니가 삼키는 옥시코돈 등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저자는 우리를 만화경의 세계로 데려간다. 다채롭고도 암울한 판타스틱한 이미지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야생적인 날 것의 요지경이 펼쳐진다. 뒤죽박죽 얽히고 설긴 캐릭터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만화경으로 바라보는 토끼장의 내부는 혼란하고 기이하기만 하다. 생쥐들이 천장과 복도를 활보하고, 에어컨과 외창이 없는 암울한 실내. 그 안에 서식하는 인물들은 비현실적이면서 비물질적인 상태로, 허공을 떠다니는 미세먼지보다 작은 무無인 것처럼 점멸하다가 사라진다. 동물들을 학대하면서 쾌락을 찾고 그 영상을 SNS에 올리는 10대 소년 잭. 멸종 위기의 나무늘보를 위해 자신의 유골을 기증하겠다는 부고를 직접 작성한 어느 여배우는 죽음과 나란히 셀카를 찍었다고 증언한다. 그녀의 외아들 모지스는 고해성사를 통해 부재하는 어머니의 위선과 거짓된 삶을 고발하려 하지만 고백은 자꾸만 행간 밖으로 뛰쳐나가 진심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눈을 깜박일 때마다 만화경 렌즈에 비치는 토끼장의 전경과 내부가 달라지는 환각에 도취된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랜덤 한 서사가 우리의 식상하고 천편일률적인 해석을 프리즘처럼 굴절시킨다. 가련한 주인공 티퍼니는 40대의 음악 선생 제임스와 관계를 가진 후, 진정한 신을 현현했다는 옛 성녀의 이름을 본떠 '블랜딘'이라 개명한다. 허나 제임스는 신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의 육체와 순수한 영혼까지 탐하는 비열한 쓰레기일 뿐이다. 블랜딘은 여전히 두꺼운 알 껍질을 깨지 못한 채, 갈수록 토끼장 안으로 매몰되고 감금되고 있다. 서로의 고환을 핥고 물어뜯어 거세하는 야생의 철장에 갇혀 방황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쯤 속박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것일까. 그녀는 과연 불뚝이는 심장을 꿰뚫는 황금 화살의 세례로 고통과 존재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無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블랜딘은 악동 패거리에 둘러싸여 죽음에 내몰린 염소를 대신해 칼에 찔리고, 자신의 붉은 피를 바치고서야 초월적인 존재를 현현하게 된다.

쩌억! 오래도록 깨지지 않고 틈이 안 보이던, 질기고 강건한 태초의 알 껍질에 금이 가는 소리. 그 안에서 황홀경에 빠진 심장의 박동이 두근대고, 먼 우주에서 천사가 쏘아 올린 화살이 알의 핵심을 노리며 광속으로 날아온다. 시작과 끝이 모호한 환상으로 가득한 토끼장의 세계가 흔들리고 무너지려 한다. 짧은 엔딩 크레디트가 위로 흐르고 암전 되면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C4 호에 누워 자신의 육체를 내리보는 블랜딘의 영혼을 마주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한 되돌이표처럼 무한 생성되고 증식하는 황홀경에 빠진 만화경의 요지경 세계. 희망적인 후속 편과 기적적인 환생을 약속하는 쿠키 영상이 재생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기꺼이 그 안에 다시 빠져들어 심취할 수 있다.




내 말 들어. 진짜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이 뒤로는 아무것도 없어. 알겠어? 그러니까 3막이 있는 것처럼 살지 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다음 쿠키 영상도 없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_<우주의 알>_327p






기묘한 만화경을 뒤흔들고 내던져도 그 안에 담긴 환상적인 이미지는 무너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갖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우리를 둘러싼 각종 SNS에서 1 ms도 쉬지 않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자아도취에 빠진 과노출, 댄스 & 반려 펫 & 맛도리 이미지와 영상을 토해내는 것처럼..

우주의 알에 둘러싸인 환상은 멈추지 않는 심장처럼, 엔딩 없는 수다를 떨고 있다. 우리는 불규칙하고 엇나가는 박동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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