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스 미디어, 고태라 작가_<마라의 요람>을 읽고..
옥덩이가 옥이라 하니 쥐방울도 옥이라 하며 기어오른다. 옥구슬이 구슬이라 하니 고기 눈깔도 구슬이라며 까불어댄다.. 도롱뇽이 용을 조롱하니 진짜 용은 낯간지럽다._<전우치전>에서_<마라의 요람> 270~271p
비릿한 바다 내음이 작렬하는 다도해의 이역, 죽해도에 다다른 떠돌이 민속학자 '민도치'.
남북으로 기다란 섬, 죽해도는 각각 산신과 용왕을 모시는 나릿골과 우름곶 주민들의 오랜 반목과 대립, 이를 중재하고자 하는 정체불명 사교집단 단현사의 도량으로 섬 전체가 원시에 가까운 풍속신앙체처럼.. 괴이하고 불경한 기운을 내뿜는 섬이다.
영민한 고양이 상을 지닌 민도치는 섬 도처에서 풍기는 귀기와 사위스러움을 접하고, 심상치 않은 횡액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니나 다를까. 피해자의 절개된 복부의 장기가 모조리 사라진 참극이 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민도치는 낯 두꺼운 붙임성과 청산유수 같은 입담, 조예 깊은 토속종교 경험을 바탕으로 경찰, 도민들과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연쇄살인 사건이 터지는 가운데 섬에 도사린 악의 심연과 그 안에 웅크린 '마라의 요람'을 직면한 그는 난관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결심하는데..
고태라 작가는 데뷔작 <설곡야담>으로 2023년 <미스터리> 봄호 신인상을 수상한 장르 문학의 신성이다.
그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에 영감을 받아 <마라의 요람>을 구상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 아니면 거장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일까. 신인답지 않은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과 서서히 수위를 높이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빛을 발한다. 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삼각 세력 간의 아귀다툼과 본심을 감추는 여러 인물들을 조율하면서, 복선과 트릭을 적절히 배치하여 대망의 엔딩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은 기성 작가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한다. 피비린내 가득하고 토악질이 치미는 죽해도의 음기를 누르기 위해 틈틈이 난입하는 위트 넘치는 돌발 대사는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쌓아 올린 겹겹의 서사가 돌신제가 벌어지는, 모든 주민들이 운집한 단현사 경내에 다다르는 순간.. 사건의 실마리를 움켜쥔 도치는 뒤엉킨 매듭을 풀기 위해 섬에 도사린 비밀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마라의 요람이 잉태한 범인을 찾아내고 섬의 비밀과 얽힌 범행 동기를 파헤칠 수 있을까?
한국의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를 꿈꾸는, 나아가 고유의 토속 장르 소설이라는 신영토를 개척하고자 하는 고태라 작가의 열망은 이제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가 '민도치'라는 독보적이면서 유일무이한 민속학자 탐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연이은 작품을 선보이기를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