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멘토_<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를 읽고..
1968년 2월 남극,
일본 남극 관측대 쇼와 기지 근처에서
가라후토견 한 마리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이 일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_ 책 서두에서..
1911년 겨울,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이 그린란드 썰매 견을 끌고 남극점을 정복할 거라 하자, 경쟁자 영국의 해군 대령 로버트 스콧은 이 결정을 비웃었다. 스콧은 스노모빌과 조랑말을 주력으로 남극점으로 향했지만, 남극의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이들은 고장이 나거나 동사했다. 결국 충직하고 노련한 개들과 함께한 아문센은 무사히 귀국했지만, 스콧은 남극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인류는 아문센과 스콧이 남긴 교훈 대로 극지방 탐험을 위해 썰매 견들을 훈련시키고 원정대에 포함시켰다. 전후 일본 또한 남극 탐험을 위해 추위에 강한 '가라후토 견' 여럿을 1차 탐험대의 이동 수단으로 삼았다. 1958년, 미지의 동토 남극은 극한의 한파가 몰아쳤고, 빙토 곳곳에 크레바스와 크랙이 입을 벌린 위험 가득한 험지였다. 노령의 썰매 견 몇 마리가 기력이 다해 숨을 거두었고, 어떤 개는 짝짓기에 소외되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진하여 무리를 떠나 어딘가로 사라졌다. 가라후토 명견들은 얼음 땅 1600km를 내달릴 만큼 강인했고, 주인에게 의리를 지켰다. 개는 자신을 부리는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그들을 버리고 학대하며, 겪는 고통을 모른 체한다.
1차 월동대는 엄혹한 추위에 밀려 철수하고, 쇼와 기지는 유령 기지로 변한다. 대원들을 태운 헬기가 눈바람을 일으키며 이륙할 때마다, 남겨진 개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발버둥 치고 울부짖는다. 빙판을 달리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자신들을 함께 데려가라고, 여기에 묶인 채로 버려두지 말라고, 자신들을 잊지 말라고.. 개들의 몸부림과 비명은 빙판에 검은 점이 되어 이내 흩어진다. 혹한의 땅에 버려진 열다섯 마리의 개들. 그들은 목줄이 한껏 조여져 기둥에 묶인 채로 버려졌다. 그 후로 일 년이란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무르익지 않은 50년대였지만, 일본 각지에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가까이서 개들을 돌보았던 '기타무라 다이이치'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3차 월동대원에 포함되어 다시 쇼와 기지를 밟게 된다.
놀랍게도 그는 살아남은 성견 두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생존한 개들의 이름은 타로와 지로. 개들은 처음에는 경계하고 이빨을 드러냈지만,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인간을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들었다. 자신들을 이 땅에 버리고 간, 동료들을 참혹한 아사의 지경으로 몰고 간 철천지원수임에도 환영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불시에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어도 시원치 않을 원한이 마음 어딘가에 맺혀 있을 텐데도.. 개들은 인간에게 부드러운 혀를 내밀어 핥고 꼬리를 흔들었다. 기타무라 다이이치는 그간의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면서 눈 아래 파묻혀 동사한 개들의 사체를 거두어 수장한다. 그는 양심적인 인간이었고, 개들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따스한 정과 무리를 지키는 보호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일찍이 깨달았다. 빙하 아래 얼어붙은 사체를 수장하면서, 그는 눈썰매를 끌던 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각자의 추억을 되새긴다. 사무친 한에 물아래 가라앉지 못하고, 한참을 맴돌다가 천천히 잠수하는 개의 사체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들이 눈물겹다.
이후는 노년의 기타무라 다이이치가 저자와 함께 살아남은 제3의 개의 행적을 쫓는 과정이 그려진다. 상대적으로 어리고 경험이 일천한 타로와 지로가 살아남기까지의 과정을 추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들이 생존을 위한 먹이를 어떻게 구했을까. 혹시 제3의 개가 그들의 생존에 기여하지는 않았을까? 미수(88세)에 이른 기타무라가 행방불명된 개들을 떠올리면서, 마침내 제3의 개라 유력시되는 이름을 불렀을 때.. 남극을 떠도는 수많은 견공들의 원혼은 일제히 하울링을 터뜨리고 꼬리털을 부풀렸으리라.
머나먼 극지에서 불귀의 신세가 된, 자신들의 이름을 기억도 못 하는 인간들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그럼에도 한때 곁에 머물렀던 인간들의 향취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