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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May 21. 2024

그녀는 누구보다 밝고 예민한 시선을 지녔다

조승리 작가 에세이_<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에세이 부문 대상을 받은 시각장애인 조승리 작가의 첫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이 뇌리에 확 꽂힌다. 





책날개 글에서 고백하기를, 저자의 엄마가 86년 아시안 게임을 시청하다가 자신의 이름을 '승리'라 지었다고 한다. 이름처럼 삶이 승승장구하고 꽃길만 걸었으면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가난에 찌들었고, 열다섯부터 시력을 잃어 '전맹'이라 부르는 중증 시각장애인의 험난한 삶에 발을 들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지랄 맞은' 일련의 이벤트로 점철되어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어려서 건강을 잃은 자신을 아끼던 외조부와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경제력을 상실한 채 자신에게 기대려고만 하고,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연인도 떠나는 등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방에서 몰려드는 어둠이 그녀를 옥죈다. 그 안에 갇혀 날마다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어떻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일상에서 스치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살핀다. 마사지사로서 생계를 이어가며 고객으로 연을 맺는 이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다양한 삶 이면의 명암을 기록한다. 한편으로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장애인이라는 틀을 깨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감행한다.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대만으로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격한 춤사위인 탱고를 배우기 위해 댄스 학원 여러 곳을 수소문하기도 한다. 






저자는 우여곡절이 많은 현재의 삶을 살면서 틈틈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을 건져내 글로 재구성한다.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이들.. 그들 중에 쌀쌀맞으면서 직설적인 엄마가 앞으로 나선다. 혹독한 가난으로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보육원에 유기하려던 엄마가 자신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갈등과 고투가 있었겠는가. 설상가상 그 딸이 어려서 시력을 상실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 엄마는 억장이 와르르 무너졌으리라. 온갖 지랄 맞음이 쌓이고 퇴적되어 그들의 삶을 향한 의지는 여지없이 꺾여야겠지만..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때로는 집이 떠나가라 욕지거리를 뱉고 상대를 긁으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또한 그 순간을 즐겼다. 필요하다면 모녀간에 마주 앉아 맞담배를 자욱이 피우면서, 담담한 눈빛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변치 않는 마음을 확인했다. 어쩌면 저자의 삶을 지켜내려는 투쟁심과 굳은 자존감, 보이지 않는 면을 포착하는 감각적인 시선 그리고 거침없는 입담은 엄마로부터 내리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일생의 반려자였던 어머니를 영영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 또한 한없는 슬픔에 잠겼으리라. 허나 그녀는 알고 있다. 지랄 맞음이 가득한,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더라도 자신의 곁을 맴도는 빛을 찾을 수만 있다면, 삶은 요절복통 축제라는 것을.. 비장애인들이 보지 못하는 불가사의하고 총총한 반딧불이 무리를.. 그녀는 찾아내어 두 손에 담고 눈빛에 영원히 간직하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마음 깊이 열린 그 눈을 일컬어, 번득이는 혜안이라 칭송할지도 모르리라. 그녀는 누구보다 밝고 예민한, 제3의 시선을 지녔음에 분명하다.





"책을 읽고 슬펐고 뜨거웠으며, 아리고 기운이 났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한다. 그녀의 훤칠한 글 앞에서 내가 바짝 쫄았다는 사실까지도.."_ 이병률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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