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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Mar 19. 2024

우리는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

마이 셰발 & 페르 발뢰_<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를 읽고..









첫 페이지부터 살인 현장이 펼쳐진다. 이미 시신은 감식반에 의해 실려나갔고, 하얀 묵필로 표시된 해마 형태로 웅크린 굵은 실루엣 만이 남아있다. 스웨덴의 노련한 형사 '마르틴 베크'는 동료 콜베리와 함께 용의자의 자백을 받는 데 성공한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그는 가족들과 함께 섬에서 휴가를 즐기지만, 그를 찾는 긴급한 전화와 함께 달콤한 휴식은 산통이 깨지고 만다. 




'마르틴 베크'의 두 번째 이야기는 그가 휴가 중에 긴급히 경찰서로 복귀해야 하는 건으로 시작된다. 스웨덴의 발 빠르고 영민한 저널리스트 한 명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실종됐다. 외무부 관료, 실종 기자가 소속된 잡지사, 헝가리 현지 경찰까지 개입하여 복잡히 엉킨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데.. 



마르틴 베크는 혈혈단신 부다페스트로 건너가 실종자의 족적을 쫓는다. 60~70년대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유서 깊은 다리들. 머르기트 섬, 페슈트 구역과 부더 구역 등 주요 시가지의 풍경이 눈에 밟힐 것처럼 생생히 묘사된다. 주의 깊고 신중한 형사와 마주치는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는 세세히 그려진다. 그의 오감을 동원하여 감지하는 현장의 특이점과 분위기는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동료들, 협력자들과 나누는 대화는 시니컬하면서도 사이사이 위트가 흐른다. 공동 저자 마이 셰발, 페르 발뢰가 창조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2탄,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는 경찰 소설의 신영토를 개척할 만한, 완숙한 경지를 선보인다.  



사건의 서사는 초반에는 차분하게 진행되다가, 변곡점에 이르러서는 긴장도를 끌어올리며 독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용의자로 마주친 여성이 마르틴 베크의 숙소를 찾아와 유혹하는 장면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다가 차갑게 식어 얼어붙는다. 대마초를 밀매하는 패거리가 그를 불시에 습격하여 난투를 벌이는 장면은 혈흔이 난무하고 금방이라도 누군가 숨이 끊어질 것처럼 아슬하다. 


피날레까지 30여 페이지를 앞두고, 마르틴 베크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사건을 처음부터 되짚는다. 그는 냉철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행방이 묘연한 기자의 행적을 역으로 되밟으며 용의자를 절벽 끝으로 몰아간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숨 막히는 반전과 고밀도의 서사를 독자에게 선사하며 마지막 페이지와 문장까지 긴박감을 불어넣는다. 


과연 마르틴 베크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건을 마무리 짓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안락한 휴양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실종 수사에 임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를 펼치시라. 



우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북적이는 구시가지와 낡은 선로를 운행하는 삐걱이는 목재 열차, 썩은 달걀 냄새가 진동하는 유황 온천에서 어느 형사의 지친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뿌연 안갯속에서 야광으로 빛나는, 형형한 두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는다. 


그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지칠 줄 모르니 부디 놓치지 말고 뒤를 따르라. 그는 자그마한 실마리도 놓치지 않고 사냥개 마냥 끈질기게 따라붙어, 짙은 그늘 아래 은폐한 범인의 목을 조르고 수갑을 채울 것이다. 


우리는 마르틴 베크,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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