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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l 22. 2024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교육개혁에 관한 논쟁1라운드

지난 호에서 제시한 최성수, 김종영 교수 논쟁의 발화점이 된 김누리 교수의 글을 소개하기로 한다.      


대한민국 새 100, 새로운 교육으로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한겨레 2020.06.07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100년’을 강조할 때 내심 적잖은 기대를 품었다.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를 기획하고 있구나.’ 그러나 이제 새로운 백 년이 시작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내 기대는 바로 교육개혁이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백 년을 맞는 나라에서 감행할 만한 가장 근사한 사업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 교육개혁은 시대의 명령이다.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사실 이 나라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의 교육은 비교육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교육에 가까웠다. 지난 100년 동안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

  30년 일제 강점기는 황국신민을 기르는 것을, 해방 후 40년 독재 시대는 반공투사 혹은 산업전사를 키우는 것을, 30년 민주 시대조차 ‘인적 자원’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일제의 제국주의 교육, 독재 정권의 국가주의 교육, 민주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점철된 한국 교육 100년은 그대로 반교육의 역사였다.

  지난 백 년의 교육에 일관된 것은 능력주의(meritocracy) 교육이다. 시대마다 지향하는 목표는 달랐지만 추구하는 방식은 같았다. 이제 능력주의 교육은 ‘존엄주의’(dignocracy)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100년의 교육은 ‘수월성’ 교육에서 ‘존엄성’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독일의 교육개혁은 1970년대 초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모토 아래 시작되었다. 그것이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다. 경쟁 없는 교육이 성숙한 시민을 만들었고, 이들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의 독일이다.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요, 정치 문제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정의가 유린되었으며, 학벌계급사회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경쟁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기형화 되고, 우리의 삶이 황폐화되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심한 나라다. 거기엔 역사적, 사회적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신사적인 이유이다. 일제 강점기를 풍미하던 사회적 다위니즘 사상이 해방 후 미국식 시장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경쟁절대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경쟁은 자연의 법칙이고 시장의 원리이자 정의의 유일한 척도라는 이상한 논리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둘째, 불평등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은 세계 최고 강도의 경쟁을 초래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경쟁이 심한 법이다. 셋째는 전통적 지배질서(establishment)가 붕괴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극히 평등지향적인 사회가 생겨났지만, 이 평등의 들판에서 학벌이라는 괴물이 새로운 신분적 대체물이 됨에 따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학벌계급사회가 탄생한 것이다.

  한국은 ‘30-50 클럽’에 속한 7개국(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한국) 중에서 ‘제국주의의 과거’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이것은 이 나라에 묘한 도덕적 기품을 부여한다. 한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영감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라다. 케이(K)-방역만이 아니라,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서 말이다. 만약 우리가 교육혁명을 통해 ‘경쟁 없는 교육’을 실현하고 학벌계급사회를 타파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은 가장 역동적인 나라, 가장 멋진 공동체로 부상할 수 있다. 교육혁명이 이 ‘고단한 나라’를 ‘고상한 나라’로 변화시킬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이 하는 대로 ‘정의로운 교육’을 실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는 4가지를 폐지해야 한다. 첫째, 대학 입시 폐지. 둘째, 대학 서열 폐지. 셋째, 대학 등록금 폐지. 넷째, 특권학교 폐지가 그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상식이자 일상이다.

  대한민국의 새 100년은 이렇게 새로운 교육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 야만적인 경쟁교육을 끝내야 한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가정을 ‘사막’으로, 사회를 ‘정글’로 몰아대선 안 된다.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김누리 교수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교육개혁이 시대의 명령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교육은 지난 시간 동안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국신민을, 반공투사와 산업전사, ‘인적 자원’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 교육은 ‘존엄주의’(dignocracy)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누리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그 모델로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라는 모토 시작된 독일교육을 말한다.  교육의 문제는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자, 정치 문제이며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시키고 정의가 유린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쟁 없는 교육’을 실현하고 학벌계급사회를 타파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이 역동적인 나라이자 멋진 공동체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실천도 제시한다. 대학 입시 폐지. 대학 서열 폐지. 대학 등록금 폐지. 특권학교 폐지다. 당장 야만적인 경쟁교육을 끝내야 하며 사회를 ‘정글’이 아닌 존엄이 보장되는 행복한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며 글을 맺는다. 글은 지면이 정해져 있다 보니 생략된 부분도 많고 비약도 많다.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다. jtbc <차이 나는 클래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김누리 교수의 이 글에 관하여 최성수 교수(지난 호)는 3가지를 근거로 그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말한다. 독일교육에 관한 그릇된 이해를 먼저 지적한다. 독일이 누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언급한다. 한국교육이 반교육이라는 점에도 강력하게 반발한다.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경쟁 교육이 큰 몫을 했고, 교육은 다면적으로 측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소 김누리 교수의 국공립대학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최성수 교수의 반박에 대해 김종영 교수(지난 호)는 김누리는 새로운 무기이며 지금 대한민국에는 김누리와 같은 새 무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최성수 교수가 말한 독일 교육에 관한 지적은 독일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지 못한 탓이라며 반박한다. 교육개혁을 막는 것은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한 교육행정가, 교육 연구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육개혁은 교육을 받는 당사자를 비롯한 일반인을 통해 이루어질 시기라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김누리 교수에 관한 최성수 교수의 반박과 최성수 교수에 관한 김종영 교수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호에서는 이후 펼쳐지는 두 사람의 공방에 대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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