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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l 31. 2024

비판적으로 써 보자

교육 개혁 논쟁 2라운드

교육개혁에 관한 김누리 교수의 주장에 최성수 교수는 세 가지 근거를 들어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의 비판을 바라보는 김종영 교수는 김누리라는 새 무기를 인정하지 못하는 엘리트적 사고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엘리트의식이 한국의 교육개혁의 발목을 잡아왔다고 말이다. 이어지는 이들의 두 번째 논쟁을 소개해본다.



교육개혁’ 논쟁 2라운드개혁은 구호가 아니다     

최성수(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0. 07. 22.

     

  필자의 지난 글에 김종영 교수가 반론(‘김누리 교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을 제기했다. 몇 가지 오해와 관점 차이가 있지만 김종영 교수의 반론은 생산적 논의를 위한 몇 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교육개혁 논의가 한걸음 진전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재반론을 개진한다.

  먼저 필자가 한국적 관점에서 독일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는 김종영 교수의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독일의 강한 직업교육 지향성은 학력에 따른 노동시장 불평등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하지만 대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세대 간 계급 재생산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는 수많은 독일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보고하는 사실로, 김종영 교수가 편협한 통계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한국식 이해일뿐이라고 지적한 것은 생뚱맞다. 핵심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완벽히 우등하거나 열등한 시스템은 없으며, 독일 교육 역시 장점만큼이나 그 장점을 지탱하기 위해 사람들이 감수하는 단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독일 교육을 본받으려 할 때, 장점에 동반되는 단점을 논하지 않고 이상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독일 교육의 전체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국식 오해가 아닐까?

  둘째, 맥락을 소거한 반쪽짜리 통계적 접근에 대한 김종영 교수의 우려에 격하게 동의한다. 마찬가지로 선명성과 이념적 지향만 앞세워 현실 근거와 맥락, 조건에 눈을 감고 있는 접근 역시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통계적이든, 질적이든 간에 엄밀한 근거와 깊은 이해, 논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서 근거 기반 정책결정 패러다임이 사회정책 설계의 핵심 원칙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근거 기반 정책결정의 토양이 미성숙한 상황이다. 교육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들로부터 얻어야 할 것은 김종영 교수가 강조한 “실존적 자각”이 아니라 국가 행정자료 등 양질의 데이터 구축을 바탕으로 통계적, 과학적 근거들을 산출하고, 이에 입각해 사회·교육정책들을 논의, 설계하는 접근 방식이다.

  셋째, 대학개혁이 엘리트 대학 출신의 엘리트 집단 때문에 좌초되고 있다는 김종영 교수의 주장이다. 정말 작금의 문제가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악의적 영향력을 제어하기만 하면 해결될 단순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현실은 다르다. 특정 적폐 집단 탓으로 환원될 수 없는 구조적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누리, 김종영 교수가 주장하는 독일식(혹은 유럽식) 국공립대학네트워크가 한국에서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낮은 대학진학률과 함께 유지되어 온 독일식 직능 중심 노동시장 체제가 없기 때문이고, 높은 세금을 바탕으로 비싼 대학교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북유럽식 복지국가 체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구조적 조건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더딘 변화를 사람들이 김누리 교수처럼 자각하고 깨우치지 않기 때문이라 하는 것은 독일, 유럽 교육시스템을 둘러싼 구조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적 조건들의 근본적 변화 없이 대학개혁은 불가능한가? 김누리, 김종영 교수의 비전에 따르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필자의 주장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글에서 제기했던, 좀 더 현실적인 국공립대학네트워크 비전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한국 대학시스템과 구조가 유사하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 확대와 소득 연계 학자금대출(졸업 후 장기간에 걸쳐 소액을 일정 소득 이상을 거둘 때만 상환하는 제도) 도입을 통해 대학 공공성 제고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험 또한 좀 더 현실적인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다.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교육개혁은 너무나 중요해서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나 괴테의 수사가 아니라 진지하게 열린 마음으로 서로 경청하고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과 논쟁을 하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정책개혁은 깨우침과 자각, 선명한 구호와 이상적 비전의 영역이 아니라 자료와 근거의 축적, 깊은 이해와 해석을 동반하는 과학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개혁’ 논쟁 2라운드연구를 위한 연구그만하자     

김종영(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0.08.05.     

  

  더 생각을 해야 한다. 왜 한국은 ‘교육지옥’이고 독일은 아닌가? 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질문이다. 질문에 따라 연구 수행과 답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최성수 교수의 반론에서 독일 교육과 한국 교육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왜 선진국들 중 한국 학생들과 부모들만 교육지옥에서 사느냐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의 한·중·미·일 4개국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 중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말한 학생이 80.8%나 되었다. 반면 중국 학생은 41.0%, 미국 학생은 40.4%, 일본 학생은 13.8%였다. 김 교수는 또한 한국 학생들이 과제를 할 때 협력하지 않는 가장 이기적인 학생들이라는 것을 통계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민’이 아니라 ‘전사’를 기른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교육이 정말 지옥이라는 것이다. 독일 출신의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씨는 “당신의 고등학교 생활은 전쟁터, 시장, 광장 중 어느 것이었느냐”는 질문에 “파티”라고 대답했다.

  최성수 교수의 말대로 대학개혁은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할까? 역사상 최고의 대학개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캘리포니아 대학 마스터플랜은 대학 입학생의 증가, 대학의 기능분화에 대한 구성원 간의 합의,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결합된 정치적 타협책이었다. 68 혁명 이후 파리 대학의 개혁과 독일 대학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곧 최 교수가 주장하는 근거기반 정책결정 패러다임은 ‘교육정책의 사회적 구성’을 파악하지 못한 왜곡된 과학주의다. 정책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과학적 요소들에 의한 공동구성의 결과물이다.

  최 교수는 교육개혁을 하려면 “자료와 근거의 축적”이 있어야 하며 이는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마만큼의 데이터를 모아야 한국 교육이 개혁될까? 과학기술학에서는 ‘데이터의 비결정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데이터를 무한정 모은다고 하더라도 알고 싶은 현상에 대한 관점과 이론이 없다면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과학은 현실, 이론, 데이터의 상호안정화(interactive stabilization)이지 데이터의 무한수집이 아니다. 최 교수는 교육지옥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데이터가 제공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평균’을 본다. 정녕 ‘말이 되는’ 과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물신주의라는 ‘사상누각’에서 내려와 학교라는 ‘교육지옥’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가 연구를 덜 해서 한국 교육문제가 풀리지 않는가? 한국 교육에 대한 자료와 근거는 흘러넘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료와 근거의 축적이 아니라 ‘왜 한국만 교육지옥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쓸모 있고 창의적인 연구들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길 원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 연구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물음에 응답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과학자의 자세다.

  사회과학자는 단지 연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암덩어리인 한국 교육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김누리 교수 등에게서 발견했다. 이것은 ‘구호’나 ‘수사’가 아니라 ‘아픈 외침’이다. 이러한 외침의 목적은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불행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아프다, 고로 나도 아프다.’ 이것이 다른 연구자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왜 김누리 교수의 주장이 한국 교육의 희망으로 간주되는가? 국민들은 알고 있고 우리 연구자들만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더 생각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논쟁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최성수 교수의 마지막 문단이다. "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나 괴테의 수사가 아니라 진지하게 열린 마음으로 서로 경청하고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과 논쟁을 하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정책개혁은 깨우침과 자각, 선명한 구호와 이상적 비전의 영역이 아니라 자료와 근거의 축적, 깊은 이해와 해석을 동반하는 과학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종영 교수가 던진 불편한 비판을 마지막 문단에서 짚고 넘어간다. 신뢰할 만한 자료와 분석으로 교육 분야에 대한 통찰과 이해로 한국 교육의 개혁을 언급하는 사람으로서의 신념이 보인다.


  두 번째 논쟁에서 김 교수는 데이터로 근거를 제시한다. 구호와 수사로만이 아니라는 거다.  아이들이 아프다 고로 나도 아프다고 말하는 김누리와 같은 태도가 바로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취해야 하는 태도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비판적 쓰기는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주를 이룬다. 그 반박에는 합리적이고 추론이 가능한 논거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어떤 태도로 접근하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최성수는 이성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반면 김종영은 치유하고자 하는 자의 심정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말로 상대를 설득하겠는가? 신뢰할 만한 힙라적 논거로 설득하겠는가? 공감과 호소로 말하겠는가?  어떤 것이든 좋다. 내 방식대로 쓰는 게 맞다. 읽는 자가 판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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