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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l 15. 2024

비판적 읽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김누리의 교육개펵에 관한  논쟁

비판적으로 읽고 비판적인 생각하기를 위해서 2020년 한겨레에서 있었던 논쟁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논쟁의 출발점이 된 김누리 교수 글을 소개하는 것이 순서라고 보일 수 있겠으니 두 글을 읽고 김누리 교수의 글을 추론해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 논쟁 이후 2번째 라운드가 이어진다.  



김누리 교수 칼럼에 부쳐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     


최성수(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0.06.22     


  김누리 교수의 교육에 대한 강연이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한겨레>에도 ‘대한민국 새 100년, 새로운 교육으로’라는 제목의 칼럼(6월 8일 치 27면)이 실렸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극심한 경쟁이 본질인 한국 교육은 “반교육”적이다. 비판교육을 특징으로 하고 경쟁적 입시가 없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독일 교육이 반교육 극복을 위한 모델이며, 한국 대학교육을 서열 없는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로 재편하는 것이 대안이다. 이 글은 김누리 교수의 이런 주장이 가진 문제점 중 몇 가지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먼저 독일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독일은 직업교육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 이미 학업계열과 직업계열로 분화가 이루어진다. 계열 결정 이후 변경은 극히 어려우며 직업계열로 진학할 경우 전일제 학업은 중학교에서 사실상 끝나고 이후 과정은 직장에서 실습교육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학 진학도 전문·기술대학만 가능하며 일반 대학교는 지원 자체가 제한된다. 고교 졸업만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간다는 것은 어릴 때 학업계열로 진입한 3분의 1 정도의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일찌감치 이뤄지는 계열 결정이 가족 배경에 따라 경쟁과 배제가 이루어지는 장이란 점이다. 강고한 계열화 교육 때문에 독일에서 세대 간 계급 지위 재생산 정도가 심하다는 점은 학계에서 단골로 다뤄지는 주제다. 무경쟁 교육과 입시는 다수의 학생을 대학 입시에서 배제하면서 귀결되는 독일 시스템의 특징일 뿐이다.

  한국 교육이 근본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반교육”이라는 진단 역시 문제다. 교육의 역할은 다면적이며 평가 역시 다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을 통해 인지적 성장을 견인하며, 진로 준비와 사회적 소양 함양을 통해 어엿한 직업인 및 민주적 시민을 키워내야 한다. 이는 모두 중요한 가치들이지만 종종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독일보다 기회 공정성과 학업 발달에서 앞서 있다. 진로 준비성에서는 취약하다. 시민성 측면에서는 독일의 비판교육에 비해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역동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혁신을 균형 있게 달성하면서 선진국으로 안착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이것은 반교육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것이라기보다 한국 교육이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나름 역할을 효과적으로 해오며 이뤄낸 성과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끝으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 구축은 대학교육의 근본적 재편이 아니라 국공립대학들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한국의 국공립대학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해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해도 대다수 대학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립대들을 포괄하고자 할 때 소요될 입법적,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이를 감당하려면 그만큼 강력한 사회적 합의의 동력이 필요한데 현재 한국 사회에 그런 합의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런 네트워크를 구축해 냈다 해도 불평등이 타파된다는 보장은 없다. 가족·노동시장에서 불평등 완화 없이 교육 평준화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변화의 한계는 명확하다.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의미 있게 논의해 볼 만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 이동에 가장 높게 기여하는 것이 국공립대들이다. 저소득층이 많이 입학하면서도 졸업 뒤 고소득 진입률이 낮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공립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때 세대 간 이동성이 활성화될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저렴하고 지방에 거점을 두면서도 이른바 명문대학들에 버금가는 경쟁력 있는 기관을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통해 실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는 가능성과 효과가 불확실한 급진적 비전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유의미하게 향상할 실질적 방안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독일 및 다른 나라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은 바람직하다. 다만 현실과 조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생산적 논의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음 또한 명심해야 한다.  



김누리 교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김종영(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0.07.13     


“낡은 무기들은 썩는다. 새로운 무기들을 만들어라, 그리고 똑바로 쏘아라.”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의 이 말은 김누리 교수가 왜 한국 교육의 희망으로 떠올랐는지 은유적으로 대답하는 데 적합하다. 김 교수는 대학통합네트워크, 대학 무상교육, 고교평준화, 그리고 대입자격고사화, 이 네 가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교육계에 새로운 무기가 나타나 한국 교육 문제를 똑바로 쏜 것이다.

  그 때문인지 김 교수를 비판하는 소리가 들린다. 독일 지성사의 슈퍼스타 괴테는 자신의 적의 수가 한 ‘군단’이나 된다고 말하고 자신의 적들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무지한 자, 질투하는 자, 성공하지 못한 자, 그리고 합당한 이유가 있는 자. 김누리 교수는 대학이 평준화되었지만 형평성의 토대 위에서 탁월성을 추구하는 독일 대학체제를 모델로 한국 대학체제를 전면개혁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최성수 교수는 최근 <한겨레> ‘왜냐면’ 투고(‘독일 교육에 대한 오해’)에서 독일은 학생들의 실업계와 인문계의 계열 분리가 일찍 되는데 이것이 가정의 배경과 계급에 따라 정해진다고 독일 교육을 비판한다. 또한 실업계 학생들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기술대학으로 진학하기 때문에 기회가 균등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독일에서 실업계 고교를 ‘레알슐레’라고 부르는데 한국식으로 실업고라고 번역하면 곤란하다. 레알슐레 졸업자들은 은행, 사무직, 우체국 등 다양한 화이트칼라 직종으로도 진출한다. 독일에서는 대학을 안 나왔을지언정 한국식의 ‘고졸 출신’이라는 개념이 없다. 직무훈련과 평생교육을 통해서 그 직업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워나간다. 직업교육의 최종 결실인 마이스터(장인)가 박사 못지않은 위상과 대우를 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일의 기술대학도 한국식으로 전문대학이라고 번역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의 공과대학에 가깝다. 그러니깐 최성수 교수는 독일의 학교문화, 직업문화, 계층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독일 교육을 평가하고 김누리 교수를 비판한 것이다.

  한국의 대학개혁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을 통계로 연구하는 교수집단이나 연구자들의 교육체계에 대한 편협한 이해 때문이다. 이들은 ‘전문가’라는 타이틀과 각종 통계를 들이대면서 한국 교육체제가 엄청난 불평등 체제임을 연구를 통해 스스로 밝혔지만 그것을 풀기 위한 해법으로 대학개혁을 하자고 하면 대부분 반대한다. 왜 그러한가? 통계적 방법이 교육 문제를 이해하는 데 부분적으로는 합당하지만 전체 교육체제를 이해하는 데 무감하거나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존 교육연구자들과 김누리 교수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하지만 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 나는 교육사회학과 지식사회학의 전문가로 한국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영향력 있는 교육전문가, 교육관료, 교육정치인들을 대부분 만나보았다. 이들을 만나 한국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학을 상향평준화하자고 하면 대부분 반대한다. 왜 그럴까? 이들 대부분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공한 사람들로서 한국의 엘리트 대학 독점체제를 당연시한다. 곧 마지막 순간에 이들의 ‘엘리트적 무의식’이 한국 대학개혁을 막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김누리 교수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이다. 다만 김 교수가 독일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면서 너무나 불행하고 반교육적인 한국 교육체제를 넘어 ‘다른 교육체제가 가능하다’는 ‘실존적 자각’을 경험했다는 것이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은 한국이 선진국임을 비로소 깨달았고 집단적 자신감을 얻었다. 국민들에겐 교육 문제가 너무나 절실하지만 교육당국과 교육엘리트들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 김누리라는 새로운 무기가 나타나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고 국민들은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체제와 교육정책은 썩었다. 교육당국과 교육엘리트들만 모른 척한다. 한국 교육을 똑바로 세울 기회를 마련하자. 국민이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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