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의 커피사랑
그날이 왔다. 모든 며느리들을 떨게 하는 그날!
다행히 나의 시댁은 가깝다. 덕분에 치열한 기차표 예약이나 교통체증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으니 지방에 있는 시댁은 명절, 생신 때만 간다면 우리는 자주 들려야 한다는 사실.
이제 며느리 10년 차. 연차만 쌓였을 뿐 아직도 어렵고 할 수 있는 음식은 소꿉놀이 수준인 걸 보면 과연 며느리의 내공이 쌓이기는 하는지 참 의문이다.
결혼 전부터 도시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냥 우리 집과 가까이 살면 편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40분 거리인 남자와 결혼했고, 지금은 친정은 10분 시댁은 40분 거리이다.
우리 부모님 보다도 더 신세대이신 시댁 부모님. SNS는 물론 아직까지 본인의 일을 갖고 계신 어머님까지. 과연 요즘 시대에서도 앞서가는 어른 들이시다.
시댁에 가면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커피논쟁!
아버님은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있을 실 정도로 커피를 사랑하신다. 그에 반해 카페인이 맞지 않으시다 보니 하루 커피 한잔이면 충분하신 어머님.
문제는 커피도 커피지만 카페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아버님을 비롯한 기타 등등 (우리 가족을 포함한 여동생 부부)과 커피를 집에서 마시면 되지 나가서 비싼 돈 주고 사 먹는 걸 꺼려하시는 어머님. 두 의견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 며느리 10년 차이지만 섣불리 말 꺼내기 어려운 나는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열심히 아버님을 응원해 본다.
사실 명절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먹고 치우고의 반복이다 보니 카페라는 공간에서 콧바람 쐬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나. 하지만 명절이라 이것저것 음식 만드는 것을 돕다 보니 이미 저녁 무렵. 미션 실패다!
카페 대신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제법 시원한 바람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어머님은 커피가 싫다고 하셨지만,
자식들의 커피사랑을 아시고 집안에 원두들이 가득하다.
아버님께서 정성 가득 사랑 가득 내려주시는 드립커피에 싹 가시는 피로!
연하게 진하게, 핫으로 아이스로 자식들의 취향까지 맞춰 커피를 내려주신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카페는 이곳이었다! 카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더 완벽한 카페를 만났다는 사실.
좋은 부모님이 계신 것에 감사하며, 모두를 만족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카페도 좋고 집도 좋다. 평범한 날 중 명절이 주는 특별함 속에 가족들과 커피를 나누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시간. 그것이면 충분하다.
혼자 마시는 커피에는 자유가 있다면 함께 하는 커피 속에는 서로를 향한 기다림과 반가움등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예민해 지는 신경들을 커피한잔으로 누르고 넉넉한 마음으로 좋은 것들, 나눌 이야기가 가득한 명절이 되길 바란다.
많은 것이 녹아있는 '며느리의 커피'
사랑으로 짙게 내린 커피 한잔으로 모두 해피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