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덕에 4년간 생할비 한푼 안드리고 부지런히짐이라도 일하고 저금해서 결혼 8년 만에 수도권에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사한 첫 날 우리 세식구는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누웠다. 짐이라고는 안방에 장롱과 주방에 냉장고와 세탁기 뿐이어서 웡한 가실에선 소리가 울렸다 우리 셋은 우리집이 커서 목소리가 울린다면서 좋아라 하며 행복한 첫 날을 보냈다. 희원이가 커서도 그날을 기억하고 너무 좋았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새집으로 이사 온 이후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난 무리를 해서 그런가 해서 하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보니, 임신을 했는데 아이의 심장박동이 없다고 해서 유산을 하게 되었다. 그날 X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 아기를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해에 나는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먼저 유산한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슬프던 중에 민우가 내게 왔다. 희원이를 임신했을 때는 먹고 싶은 딸기를 비싸서 사 먹지도 못했는데, 7년 만에 임신을 하니 X도 이번에는 입덧을 심하게 해도 다 들어주려고 했다.
하루는 희원이 유치원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데, 희원이의 일기를 보여주셨다.
“엄마가 아귀찜을 먹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하나도 못 먹고 왔다. 너무 아까웠다. 내 동생은 변덕이 심한가 보다.”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늦은 노산이라서 조심해야 했고, 출산도 쉽지 않았다.
희원이 때처럼 내가 자연분만으로 6시간쯤 진통을 하고 도저히 안돼서 유도제를 맞고 어렵게 어렵게 민우를 낳았다.
그러데 민우는 태변을 내 안에 놓고 자기가 그걸 먹어서 태어나자부터 고열에 황달이 와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가야 했다. 출산을 하고 깨어난 내 옆에 아기는 없었고 아기를 만날 수 없다고 했다. 3일 후 나는 아기가 없이 퇴원을 했다. 불어 오르는 젖을 짜면서 아기가 돌아오면 먹이려고 냉동실에 얼리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리고
“희원이 어머님이시죠? 희원이 같은 반 대표 **엄만데요. 녹색어머니회도 안 나오시고 점심봉사도 안 나오셔서 전화드렸어요. 다들 짬을 내서 나오시는 건데, 아무리 바쁘셔도 한 번은 나오셔야죠.”
짜증스러운 말투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네. 죄송해요. 근데 제가 지난주에 아기를 낳았거든요. 근데 아기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요. 그래서 신경을 못썼어요. 죄송합니다. 흑흑”
내 대답에 대표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더니 전화를 끊었고 다시 전화를 해서 안 나오셔도 되니 몸조리 잘하시고 아기가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둘째 민우가 보고 싶은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X만 아침저녁으로 병원 중환자실을 오갔다. 그래서 나도 민우가 보고 싶다고 따라갔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그 조그마한 몸에 머리부터 발까지 여기저기에 바늘을 꽂고 있는 노란 민우는 제대로 눈도 못 뜨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만질 수도 없어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만지면서 울기 시작했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수간호사가 나와서 X에게
“다음부턴 산모는 데려오지 마세요. 충격이 더 크실 거예요”
어느날부터 X는 아침저녁으로 병원을 오가면서 간호사에게 내가 짜놓은 초유와 모유를 먹여달라고 했다. 나는 억지로 열심히 미역국을 먹어가면서 모유를 짜면서 제발 우리 아기가 건강하게 돌아오길 빌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둘째의 열이 떨어지고 황달끼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며칠 후 아기가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친정아버지와 함께 아기를 데리러 갔다. 출산을 하고 처음 만져보는 내 아기였다. 너무 미안하고 고맙고 기쁨과 미안함의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그래도 우리 민우는 점점 건강해지고 몸무게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황달 없는 뽀얗고 예쁜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감사했다.
나중에 X가 한 말에 따르면 ‘민우의 주치의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어. 초유 먹이기 전에. 그래서 내가 모유를 먹여보면 어떨까 해서 매일 배달했는데, 그러고 나서 열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어렵게 낳아 키운 아이가 민우다.
난 두 아들들을 다 자연분만으로 낳아서 모유를 먹인 게 자랑스러웠는데, 상간녀는 자신은 제왕절개를 해서 질이 나와는 달라서 섹스의 차원이 다를 거고, 그년은 모유를 먹이지 않아서 가슴도 나보다 더 이쁠 거라며 나는 폄하했다.
그래 그래서 좋겠다~
기쁘고 행복한 시절은 잠깐이었고, 시어머니에게 채무가 있는 친척들이 X가 개업한 것을 알고 쫓아와서 시어머니가 빌려가거나 떼먹은 돈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또다시 그들의 그림자가 우리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있을 때, 민우가 3개월쯤 되었을 때 X는 일요일에 시부모에게 민우를 보여주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그 멀리까지?
그제야 알았다.
시어머니가 또 돈사고를 쳐서 밤에 야반도주를 하고 짐을 큰댁에 맡겨놓고 두 사람이 각각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그 둘은 우리 주변으로 올라와 X에게 기생해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못 가겠다고 했다. 너무 무섭고 겁나서... 그리고 또 어떤 욕을 먹을지 몰라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 X는 애들을 준비시켜서 택시를 타고 갔다가 저녁즈음에 돌아왔다. 그러면서 X는 이제 엄마, 아버지도 많이 기가 꺾여서 옛날 같지 않으니 조만간 같이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그날이 왔다.
아이들을 챙기고 X가 예약한 식당에 먼저 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는 아기를 앉고 일어났고, 옆에 있던 희원이도 따라 일어났다. 그런데 다음 순간 시아버지는 식당이 떠나가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메누리란 년이 부모자식 간의 인연을 끊게 맹길고, 손자도 못 보게 하는게 말이 되나! 이런 죽일 년 같으니라구, 그러게 와 반대하는 결혼을 해가지고....”
난 자포자기했다. 아기를 꼭 끌아 앉고 주저 앉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또 시작이구나!
그런데 옆에 있는 희원이가 너무 놀라서 앉지도 못하고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희원이가 너무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소리 지르는 시아버지와 X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둘은 식당 종업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이게 기가 겪인 모습인가?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 놀란 희원이도 걱정이었다.
“나 저 할아버지 싫어!”
우리의 2차전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나의 2차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