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네 집으로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커피를 사서 차에서 마시면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니 기분이 새로웠다.
내 눈이 새로워진 듯, 주변이 생소하고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서 내가 이렇게 지내도 되는가?
어서 무언가를 해서 이 복수를 해야 하는데 라는 조바심이 사라지고 그저 멍하게 창 밖 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영이의 차는 멍한 나를 싣고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타고 신나게 달려서 부여에 도착했다.
정림사지 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입구까지 걷는 동안 비는 마구 쏟아부었고,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도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가 입은 옷은 다 젖어 버렸다.
비를 싫어하는 지영이와 나는 그 꼴을 보면서 웃어버렸다. 이런 날씨도 싫은데 이렇게 젖어가면서 여기까지 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 것 같았다.
박물관이 그리 크지 않아서 둘러보고 나왔는데도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궁남지에 가서 연꽃구경도 하고 가자 했던 계획이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니 다 귀찮아진 우리는 숙소인 천안으로 향했다.
“부여는 우리와 인연이 아닌 걸로~~”
웃음으로 마무리를 하고 돌아섰다.
천안 신라스테이는 트윈룸으로 7층 끝에 있는 모서리방이라서 전면과 왼쪽면이 통창으로 이뤄어져 밝고 환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커튼을 열자 비 오는 하늘이 방 안 가득해졌다.
방에 들어오면서 사온 젤리와 막걸리를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신나게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몇 해 전 교수들과 막걸리 전문 식당에서 생막걸리를 먹어 본 후 예전과는 다르게 머리가 아프지도 않고 맛도 괜찮은 데다가 알코올 알레르기인 내가 마시고 토하거나 설사를 하지 않아 내게 맞는 술이라 싶어 전남편과 장을 보면서 생막걸리를 사겠다고 했더니 전남편이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무슨 알코올 중독자도 아니고, 막걸리를 왜 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내려놓고 부끄러움에 얼굴을 숙이고 카트를 끌고 가는 전남편의 뒤를 따라갔었다.
이젠 내게 맞는 것들을 하고 싶다.
막걸리를 먹으며 지영이 기억하는 나의 대학모습을 이야기했다.
“넌 늘 부지런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었어. 연애도 많이 하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지...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늘 사고 뒤처리에 지친 엄마의 잔소리, 의존적인 언니, 이기적인 여동생으로 난 혼자 독립해야 했어.
가족에게 도움을 청해서 지원을 제대로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로 바쁘고 늘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해야 했으니까...”
그런 내가 결혼도 내가 결정하고 시부모의 학대를 참으며 부지런히 살았는데 전남편의 외도를 안 이후, 나의 삶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카톡 대화에 이상훈은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그 남자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들의 관계가 시작된 2011년에 사라져 버린 사람이었다.
전남편은 그저 자기가 어린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따뜻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날 묶어둔 것뿐이었다.
그렇게 불우한 소년이 이룬 이상적인 가정을 보라며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유지한 쇼룸 같은 것이었다.
매일매일 불안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자신의 집이 싫어서 안정감 있고 평안한 가정을 꾸렸지만, 어린 시절 학대 아동이 사디스트가 되어야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듯이 불안하고 스릴 넘치는 관계를 만들어서 그렇게도 증오하던 부모가 했던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아이들은 그가 만든 트루먼쇼의 배역이기 때문에 곧 쇼가 끝나면 가차 없이 사라질 것이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무대를 도망치듯이 나도 그가 꾸민 무대를 도망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지금이 제일 힘들 거야.. 결정하고 재판시작하면 기다리는 게 힘들고, 곧 끝날 거야.
너무 애끓이고 너를 힘들게 하지 마. 그러고 나면 넌 자유가 되고 대학 때 너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어.
연애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
“과연 내가 다시 이제 누굴 믿을 수 있을까? 이젠 아무도 못 믿을까 봐 겁나. 내 28년의 결혼생활은 모두 쇼였던 거잖아. 유린당한 내 시간이 너무 억울해”
“그 시간은 돌려받지 못하겠지.. 그래도 남은 네 시간은 네 것으로 살아야지... 이혼하면 많은 걸 잃지만, 자유를 얻게 될 거야..”
그래… 나에겐 자유가 없었다.
늘 전남편과 두 아들을 위해 장을 보고 내가 배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식사를 준비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도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했고 그렇게 해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전남편은 집안 일을 도와준 적도 없고 함께 장을 보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 있고 아이들이 맛있다 하면 기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기쁨은 아니었던 거다.
지난주 상담 갔을 때 나의 삶이야기를 듣고 나서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나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사세요.”
“그래도 될까요?”
“자꾸 그런 의심하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요...”
내가 가족을 위해 한 일과 전남편을 위해 참고 불평하지 않았던 모든 일에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던 것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온 후, 처음 이틀 정도 전화를 하던 전남편은 이제 연락도 없고 찾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고 현관 비번을 바꿔버림으로써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 넌 이제 필요 없으니 돌아오지 마!
‘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
평소대로 난 후회 없이 살고 싶었다.
그 어떤 결정을 하든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해결하고 내가 그에 따른 고통과 아픔을 감내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마음이 아픈 것은 본인들의 의사가 아닌 부모의 의사에 따라 마음 아프고 상처받을 두 아들 때문이다.
지영이는
’ 둘 다 성인인데 뭐가 걱정이냐? 게다가 둘 다 처음엔 좀 슬퍼하겠지만 네 인생에는 별관심 없을 거야.‘
라는데 그것도 서운할 일이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욕조에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니 나른해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나른함이다.
전남편의 외도를 확인한 날 이후 온몸엔 긴장과 두려움으로 어깨는 올라가고 걸음은 종종걸음을 걸으며 불안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목을 욕조 끝에 눕히고 눈을 감으니 꿈을 꾸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 번씩 현실에 집중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가 한 번씩 백일몽처럼 멍한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
변호사는 이번주까지 소장초안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소장 초안과 금융자산 가압류에 대해 묻는 이메일을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는데, 소장 초안은 다음 주 초에 검토할 수 있을 거고, 금융자산 가압류는 총액의 40~100%의 공탁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조사를 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 왔다.
전남편이 내가 집을 나가자마자 미국영주권을 신청하겠다고 아들에게 한 이야기는 미국에 집을 사서 상간녀옆에서 살겠다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남편이 NIW로 미국영주권을 신청해도 두 아들들은 함께 영주권을 받지 못한다. 성년이기 때문에 본인 혼자만 미국을 가겠다는 건데 왜 큰아들에게 영주권 받겠다는 이야기를 했을까?
아들에게 너도 받고 싶으면 자격증을 받으라고 했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미국경기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이건 해봤자 소용없지만, 난 너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야비한 놀림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렇게 야비한 인간과 내가 28년을 살았을까? 하루아침에 아내를 버리고 공식적으로 아들들을 버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한 이런 야비한 인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