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기일이 잡혔다는 변호사의 연락을 받았다.
변호사는 내게 당부를 했다.
“보통 준비기일에 당사자가 가진 않고 변호인만 가지만, 처음이니 함께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갈게요!”
“그러면 다른 준비는 저희가 할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판사나 상대 변호사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옷장을 뒤져 몇 벌 없는 정장을 꺼냈다. 20년도 넘어서 작았던 검은색 치마정장은 몸무게가 10kg가 빠지니 너무 잘 맞았다. 평소에 정장을 즐기지 않아서 싸구려 구두도 하나 사 신고 법원으로 향했다.
양재역에서 내려보니 가정법원 방향이 있었다. 그 주변을 종종 지나면서 한 번도 가정법원 이정표를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선명하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정법원 방향으로 나가보니 건물은 너무도 평범한 사무실 같았고 큰 인체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전경을 사진으로 남겨서 프사에 올렸다.
‘나 이런 곳에도 와봤다’
법원 안으로 들어간 나는 너무 놀라서 잠시 멈췄다. 법원 안에는 이혼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앉을자리조차 없었다.
여러 개의 법정이 있었고 각 법정은 10~20분 간격으로 법정 입장을 하는데, 마치 종합병원에서 간호사가 환자 이름을 부르듯이 ‘아무개 씨, 아무개 씨 대리인 입장하세요.’라고 호명을 했다.
구석에 서서 변호사를 기다리는데 변호사가 내 앞으로 지나가면서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내가 따라가서 인사를 했다. 최승연 변호사와 김지은 변호사가 함께 왔는데, 두 분 다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에 다소 당황한 듯했다. 난 나름대로 기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꾸미고 갔기에 평소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우리의 시간이 다가오자 앞쪽으로 남자 한 사람이 다가와 앉았다.
최승연 변호사가 ‘상대 변호사이니 이제 말씀 조심하셔야 해요.’라고 작은 소리가 귀띔을 해주었다.
드라마에서 본 것 달리 ㅔㅔㅔㅔ법정은 그리 크지 않았고 판사도 한 사람뿐이었다. 우리가 왼쪽 테이블에 앉고 상대 변호사가 오른쪽에 혼자 앉았다. 판사는 변호사와 내 이름을 호명하며 확인하고 나서 상대 변호사에게 ‘피고들은 안 온 거죠?’라고 물었던 것 같다.
그 이후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너무 긴장하고 떨려서 아무 기억이 없다. 변호사들끼리 무어라 약간의 다른 의견으로 언쟁이 있었고, 판사가 중지하며 조정기일을 이야기해 주고 나왔던 것 같다.
난 그저 상대 변호사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내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쁜 새끼를 도와주는 나쁜 놈!’
법정을 나와 법원 앞에서 변호사와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변호사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오늘 당당한 모습으로 잘하셨어요!”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당당하게 법정에 나왔고, 피고 둘은 나타나지 않았다. 변호사도 그렇고 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준비서면에서처럼 둘 사이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면 나타나야 하는데 나타나지도 못할 거면서 왜 그리 다 거짓말만 했는지....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와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위법했는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 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