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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맞춰지는 퍼즐

by 이웃사


조정기일에도 나는 참석했다.


조정위원 2명에게 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을 달라고 했고 변호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바로 상대 변호사가 들어갔다.

조정위원들이 상대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중 1명이 뛰어나왔다.


“지금 그 건물은 대출이 많아서 아내 분이 가져가도 유지하기 힘들 거라는데요.”

“네. 알아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거예요. 급매로 팔아버릴 거니까..”


다시 들어간 조정위원이 양쪽 변호사와 나에게 오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재판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설명하고 판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판사가 조정실로 내려와 자초지종을 듣고는 양육권은 두 아들이 성년이니 문제가 없고, 재산분할이 다툼의 여지가 있으니 정식 재판으로 넘어가겠다고 하였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2011년 상간녀와 본격적인 불륜을 시작하면서 느닷없이 ‘나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를 못하고 내 눈치 보며 사는 게 괴롭다’고 날 비난했던 카톡, 나와 보지 않았던 영화들과 나와 가지 않았던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여름날 길 건너에서 나를 미행하던 상간녀.

러브젤과 24시간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수많은 날들.

언젠가는 스테이크가 한 덩어리가 택배가 온 적이 있었다. 남편이 자기가 먹으려고 주문했다기에 애들 것은 안 샀냐고 하니, 자기만 먹을 거란다. 어이가 없어서 전화를 끊고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3덩어리 더 주문했고 곧 택배가 올 거라면서 본인이 일요일에 스테이크를 구워주겠다는 것이다.


‘정말 이게 웬열?’


내가 종종 스테이크를 구워주었더니 맛있었던지 전날 마리네이드를 해서 두라고 나에게 시키고, 아스파라거스와 버섯을 사 오라고 주문을 했다.


일요일 아침 정말 전남편은 결혼 이후 처음으로 주방에 들어가서 스테이크를 구웠고 큰 아들에게 자기가 스테이크 굽는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했다. 옆에서 내가 “그건 왜 찍는데?”라고 물었더니 “친구들에게 보내주려고”그런다는 것이다.


진실은 그 영상을 상간녀에게 보내주고 나 이런 사람이야라며 허세를 떨었던 거다. 평생 주방에 처음 들어가 놓고는 자긴 늘 이런 자상한 사람이라며 나중에 한국 들어오면 자기가 스테이크를 맛있게 구워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동안은 커피를 로스팅해 보겠다며 기계와 원두를 사서 조금씩 볶기 시작했다.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지만, 면전에 그럴 수 없어서 “직접 볶으니까, 아주 맛있네”라고 답해주었다.

그 후 몇 날 며칠을 퇴근하고 오면 커피를 볶아댔다. 몇 주 동안 그러더니 간호사들에게도 맛을 보여줘야 한다며 두 봉지를 싸가지고 출근을 했다. 알고 보니 상간녀에게 인편으로 커피를 보내면서 자기가 최고의 원두로 직접 로스팅한 커피니까 먹어보고 맛있으면 더 볶아주겠다고 했다.


그 많은 일들이 카톡의 내용과 함께 하나씩 퍼즐처럼 조각이 맞춰지면서 상간녀에게 자기가 엄청 대단한 사람인 양 허세를 부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들은 머릿속에서 서서히 연결고리가 이어지며 기억들이 계속 솟아올랐고, 그 모든 사실을 나는 너무 순수하게 아니 멍청하게 그리고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다.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주변 지인에게 많은 염려와 걱정을 듣는다. 혹시 이게 문제가 되어서 너의 신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 글을 쓴다. 이미 다른 일로 명예훼손은 당한 상태이며 법이 내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의 경험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이 있다. 난 내가 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위법했는지 몰랐고, 피해자인 나는 입 닥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데 가해자들은 아직도 불륜을 즐기고 아들들을 속이고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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