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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16. 2024

3인칭 화법

필라테스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디서 본 듯한 여자가 우리 집을 쳐다보고 있었다. 황급히 반대 방향으로 가는데, 누군지 생각이 나진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는 FM인 사람이라서 학교와 집을 오가며 퇴근길에는 장을 보고, 일주일에 이틀은 운동을 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업 준비를 하며 지내는 일정한 삶을 살았다. 친구들은 방학 중에 한번 정도 만나고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저녁에 늦게 들어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전남편은 그런 내가 답답하게 느껴졌을까? 아내의 답답함을 깨는 상간녀와의 짜릿한 만남이 전남편에겐 신선한 삶의 변화로 점점 매료되어 대담해지기 시작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상간녀를 집 위층에 살게 하고 두 아이들의 학원과 운동으로 주말을 바삐 오가는 와이프를 피해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짜릿했을까? 그때도 우리 집 안방 내 침대로 상간녀를 불렀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상간녀는 섹스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집을 사달라거나, 부채를 탕감해 달라고 하고, 매 끼니마다 배달 음식을 시켜달라 하고, 테니스 레슨비와 차 리스비, 자기 아이들의 교육비까지 달라는 뻔뻔함을 보였다.


“경아는 배고파요! 딤섬 시켜주세요”

“경아는 언제 집 사줘요?”

“경아는 내가 누려야 할 걸 모두 뺏아간 지수가 너무 미워요. 매일 독약을 먹여서 죽이고 싶어요”

“경아는 오로지 상훈 씨뿐이에요. 경아는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아이들에게만 하고, 다른 사람에겐 하지 않아요. 남편에게도 안 해요. 경아는 오로지 상훈 씨만을 사랑해요!”

“경아 테니스 레슨비 보내주세요. 테니스를 열심히 쳐야 나중에 상훈 씨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요..”

“경아는 상훈 씨가 너무 보고 싶어요.”

“경아는 우리 처음 만난 날 상훈 씨가 나한테 갑자기 키스하던 생각이 나요. 그땐 내가 뺨을 때렸었는데... 지금 보니까 성욕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봐요”

“지수는 자연분만, 경아는 제왕절개....”

"경아는 명기"

"경아는 와인마시면 더 잘 빨아주는데"

“경아 엉덩이가 예뻐서 상훈 씨가 날 못 떠나는구나!”

경아 안으로 들어와요 !”

“경아는 똑똑하고 똑 부러지는데.... 지수는 ㅋㅋㅋ?”   


이런 말에 전남편은 이렇게 답했다.

“내 인생에 사랑은 경아뿐이야. 지수는 다루기 쉬워. 남자문제도 없고... 그래서 필요한 사람이지만, 경아는 내 인생에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     


상간녀는 모든 대화를 3인칭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퇴행한 아이처럼 자신이 어린아이, 약한 여자, 도움이 필요한 여자라는 생각을 갖게 이야기하고 소소한 모든 것을 전남편에게 요구했다. 그에 대해 전남편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간녀를 위해 노화방지를 위해 태반주사며 비타민 등을 인편으로 미국에 보내줬고, 내가 사서 이뻐 보이는 옷이나 신발, 좋아 보이는 가전제품과 얼굴 마시지기, 핸드폰 줄까지 똑같은 것들을 바로바로 상간녀에게도 보내주면서 자신의 취향이 굉장히 고급스럽고 센스 있다는 허세를 떨었다.      


처음 카톡내용의 함께 읽은 지영과 민경은 이런 상간녀의 3인칭 화법에 기겁을 했다.

“ 야! 이거 뭐냐?”

“ 소름 끼친다. 지가 뭐 5살짜리 꼬마도 아니고...”

“ 니 전남편은 이런 걸 좋아했나 보다. 이걸 애교 있고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나 봐. 넌 너무 씩씩하고 혼자서도 너무 잘하니까.... 지한테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지 부모가 괴롭혀도 아무 말도 안 하고 하니까, 지 치부를 다 아는 너보다는 자기를 우월하게 바라보라보는 상간녀가 더 좋은 거지. 아마 너한테 굉장한 열등감을 느끼는 거 같아!”

“ 난 시부모가 괴롭혀도 한 번도 이 새끼한테 이야기한 적도 없었어. 지 아들이 출근하면 전화해서 ‘시발년아 너 때문에 내 인생을 다 망쳤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 너 내가 꼭 이혼시킬 거야.’라면서 언어적 학대를 해도 그 인간이 불쌍하고 이런 부모를 둔 본인은 얼마나 창피할까 싶어서 참고 살았다고!  난 그렇게 하는 게 우리 가정을 지키는 길이라고 아픈 데도 아프다 말 안 하고 살았다고... 그랬더니 지수는 혼자서도 잘한다며 상간녀를 돌보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이야기하다니.... 난 너무 억울해.”


나의 울부짖음에 대해 지영과 민경은...

“네가 잘못한 거야. 넌 너무 씩씩하고 당당하게 너 혼자 다 해결한 게 실수야. 네가 힘들다는 걸 그놈한테도 알렸어야지. 왜 너 혼자 다 견디고 참았니? 상간녀 봐라... 매번 도와달라고 하고, 자긴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구니까, 그놈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해주는 거 아냐? 그걸 여자답다고 해석하잖아. 넌 이제 그놈에겐 자기가 돌봐야 할 여자가 아니라, 자기 대신 모든 걸 혼자 해결해 주는 동거인인 거야. 그게 잘못한 거야!”


전남편은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부모 때문에 헤어진 가슴 아픈 첫사랑이라는 이유로 상간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신은 30년간 경아를 위해 물심양면 뒷바라지를 했단다. 나를 속이고 만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상간녀와의 미래를 계획하기 시작하면서 집을 사주고 상간녀와 함께 미국에서 함께 노후를 즐기기 위한 준비로 상간녀에게 영주권을 따도록 비용을 대주었다.


“나도 안식년을 가지면 좋겠어. 한 1년 병원은 후배한테 맡기고 미국에 가서 책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글 쎄, 꼭 미국을 가야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쓰면 되잖아~”

“여기 있으면 이거 저거 신경 쓸 것 두 많고, 집중을 할 수 없으니까...”     

라며 운을 띄웠던 것이 상간녀와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전남편은 내게 이렇게 묻곤 했다.


“의사 사모님 소리를 듣고 사니까 좋지?”

의아한 나는 이렇게 응대했었다.

“난 사모님이라는 말보다는 교수님이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사는데...”

전남편은 그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휙 돌아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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