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사 Jan 16. 2024

803호 아줌마

나는 전남편에게 배신을 당했다. 28년간 결혼생활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나의 청춘이 유린당했다는 아픔에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앉아 내가 무엇을 본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전남편은 결혼 전인 30년 전 헤어진 상간녀와 현재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둘은 광주역 광장 구석에서 나누던 사랑과 의국에서 그리고 당직실과 6인병실 빈 침대에서 나눈 사랑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면서 여기에 언급하기 조차도 너무 부적절하고 변태적인 행동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나누었다. 


그들은 30년 전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랄맞고 돈으로 아들을 팔아보려는 시어머니 등살에 돈도 없고 아버지도 없는 그녀와의 사이는 방해받고 마침내 그녀는 미국으로 도망을 가버렸다고 한다. 그 후 내가 나타났고 허전한 마음과 꽤 괜찮은 나의 조건은 그에게 부모에게 도전할 수 있는 좋은 방패로 여겨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그의 모든 악조건과 양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사랑한다는 약점과 고통을 잘 참고 이겨내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카톡의 내용에 보면, 전남편은 내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때문에 도망갈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워낙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견뎌낸 거라는 말에 상간녀는 질투에 불타올랐다. 자기는 견딜 수 없던 고통을 나는 견뎌서 현재의 여유와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약 오른다고 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며, 나에게 빼앗긴 게 너무 화가 나서 미치겠다는 그녀를 전남편은 조금만 기다리라며 달랬다.  상간녀는 자신이 가질 건물과, 아파트와 외제차를 다 나에게 빼앗겼다고 하면서 징징거렸고, 그런 그녀를 전남편은 못 견디게 안쓰럽고 측은해하며 마음 아파했다. 그녀를 위해 이제 모든 것을 해주리라 결심했다며 ‘내 인생에서 유일한 사랑은 경아 너뿐이야’라고 했다.


미국으로 도망갔던 김경아는 돌아와 보니 전남편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괜찮은 조건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종종 연락하고 가끔씩 만나다가, 2011년 전남편의 진료실로 찾아온 그녀의 적극적인 성적 접근으로 전남편을 꼼짝 못 하게 만들어 버렸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주는 상간녀에게 이성을 잃은 전남편은 20대 열정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희열을 맛보게 해주는 경아를 너무 사랑한다고 했다. 이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두고 나와 결혼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에 힘들어하는 그녀를 구제하는 것이라고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상간녀 역시 사랑해주지 않는 전남편보다는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행복이라며 자기들만의 낯간지러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번 불이 붙은 그들은 물불을 가지고 않고 만났다.  

둘의 만남은 더욱 대범해져서 전남편은 상간녀를 우리 집 위층으로 이사 오게 했다. 수시로 만날 수 있고, 아침에 PT를 한다는 핑계로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집에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는 스릴은 너무도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출근하는 엘리베이터에서 아내와 상간녀가 마주치는 장면은 아주 심장을 조이는 자극제가 되어 그에게는 더욱 큰 희열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런 상간녀가 우리 집 위층 803호에 살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