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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17. 2024

벚꽃 핀 2011년 봄

집을 나온 지 9일이 되었다. 밤새 전남편과 상간녀가 나누는 불륜현장을 쫓아다니는 악몽을 꾸었다,  


전남편은 2011년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의 상간녀를 보고 설렘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와 벚꽃이 활짝 핀 거리를 걸으며 친정어머니가 치매인 것 같다는 이야기, 오빠가 사업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 전남편과 소원해서 외롭다는 이야기 등을 하며 산책을 했다고 한다.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는 그녀와 조용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자신의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진료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녀와 마주 앉으니 20대의 설렘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고, 아내와 있을 때의 느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심장의 떨림이 온몸을 뒤흔드는 것 같아서 치마를 들어 올리며 다가오는 그녀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전남편이 연애시절 좋아하던 티팬티를 입고 온 그녀를 안고 둘은 정신없이 키스를 했고, 그녀는 전남편의 바지를 벗기고 한껏 달아오른 그들은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의 불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전남편과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며  

“경아는 지금까지 쭉 상훈 씨만을 사랑했어요. 당신 어머니가 우리를 방해하고 헤어졌어도 잊을 수 없었고, 우리가 당직실이나 의국, 당신의 자취방에서 나눈 사랑이 언제나 그리웠어요. 상훈 씨가 먼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경아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해버린 거예요. 그래도 당신을 잊을 수 없었어요. 경아는 늘 당신이 연락해 오길 기다린 것 같아요. 상훈 씨도 그랬나요?”

“나도 늘 경아에게 미안하고 그리운 마음뿐이었어. 우리가 헤어지고 지금의 아내를 소개로 만났는데 너무 착하고 밝고 긍정적인 여자였어. 게다가 우리 엄마 알잖아.. 그 지랄 맞은 학대에도 아무 불평 없이 견뎌주는 거야. 나도 우리 엄마, 아버지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지금의 아내를 선택한 거야. 아마 지수가 날 보호해 줄 거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 도망가지 않고 잘 견뎌주는 지수를 방패막이 삼아 난 부모로부터 벗어날 용기를 낼 수 있었어. 경아를 잃은 슬픔을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요.. 상훈 씨는 아무 잘못 없어요. 우리가 서로 그렇게 사랑했는데 너무 어려서 버틸 수 없었던 거죠. 경아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상훈 씨가 경아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사랑해요~”     


그들의 사랑은 태평양을 넘어서 미국에 사는 상간녀와 애절하게 이어졌고, 나는 서서히 버려지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만나 불륜을 시작한 2011년 전남편과 작은 말싸움이 있었다. 마침 작은 아이의 과외 선생님이 와서 나는 집을 나와서 장을 보러 갔다. 갑자기 전남편의 카톡이 왔다.      


히스테리 심하고 독선적인 마누라랑 사느라고 부모한테 효도 한 번 못하고 살았어.

네 눈치 보느라 난 내가 원하는 것도 못하고 살았고 숨이 막힐 지경이야.

널 만난 게 나한테는 불행의 시작이었어.     


느닷없고 갑작스러운 전남편의 카톡내용에 난 놀라서 한참을 슈퍼 한가운데에 핸드폰을 보고 서있었다. 우리가 싸운 말싸움은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내용인데, 전혀 상관없는 이런 내용의 글을 보내온 전남편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해서 싸울 수도 없어서 카톡을 했다.     


나 지금 장 보러 나왔으니까, 집에 가서 이야기해     


집에 돌아와 보니, 전남편은 집에 없었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왜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 묻고 싶었다. 본인 스스로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과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와 수시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며 도망 다니게 만든 엄마를 미워하며 자신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한 게 내 탓 이라니... 내가 얼마나 순종하며 눈치 보며 살았는데, 내 히스테리와 독선적인 태도에 숨이 막힌다니... 이 카톡의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저녁까지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들어온 전남편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 버렸다.


그날 밤 전남편은 어디 있었을까? 이제야 생각해 보니, 알 것 같다.

그때가 2011년 벚꽃이 지고 여름이 시작되던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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