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오후 하루종일 줌으로 수업을 하고 나니 정신이 혼미하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서 손에 잡히는 대로 카디건을 걸치고 우산을 들고 비 오는 거리로 뛰쳐나갔다.
어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그냥 막 걸어 다니고 싶었다. 잠시 후 비는 그치고 해지는 저녁노을이 호수의 물결과 만나 아름다웠다. 내게 무슨 일이 있던 호수와 하늘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아름답기만 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많지 않은 숲길로 들어가서 벤치에 앉았다.
마스크를 벗고 폐 속까지 깊은숨을 쉬면서 눈을 감았다. 자꾸만 떠오르는 전남편과 상간녀의 불륜행각과 나를 대상으로 하는 비아냥과 조롱 섞인 대화가 밤새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눈을 감으면 그들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날 괴롭혔다.
내 일상을 살려고 집을 나와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데, 한 번씩 감당 안 되는 감정과 사건들은 나의 통제를 뛰어넘어 미칠 것만 같은 울분으로 힘들었다.
아들에게 온 영주권 관련 문자를 보니 더욱 화가 났다.
전남편은 본인만 해당되는 영주권을 신청하고는 아들들과 함께 영주권을 받아서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모두 거짓말인데, 여권을 내가 다 가지고 있고 두 아들은 성인이라서 전남편의 의사자격으로는 두 아들들과 함께 영주권을 받을 수 없는데 그걸 모르는 아들은 전남편의 말을 믿는 것 같다.
어쩜 이렇게 사기를 치고 아들들을 자연스럽게 버리고 혼자만 상간녀 옆으로 가기 위해 밑밥을 까는 것이다. 미국에 집을 사서 상간녀에게 주고 왔다 갔다 하면서 두 집 살림을 하고는 아들들에게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인양 살겠다는 것이다.
너무도 위선적인 의도에 치가 떨렸다. 모든 일이 빨리 진행되어야 전남편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일이 해결될 텐데, 변호사들의 일이 내 맘 같지 않다고 생각이 드니 초조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영주권을 받고 민우의 수능이 끝나면 미국으로 가겠다는 전남편의 계획에 나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3일 동안 전화 7번 하고는 바로 현관 비번을 바꾸고, 집의 CCTV와 카톡 대화방에서 나를 제외시켜 버린 것이 전남편이다.
‘너 잘 만났다. 내가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너 내쫓고 내가 경아랑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 살려고 한다. 이게 웬 떡이냐?’
뭐 이런 생각일까?
거리를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게 이리저리 돌다가 집에 돌아와 땀에 젖은 머리와 몸을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이런 상황에 계속 먹질 못하고 먹으면 토하고 설사를 하니 몸이 무겁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빠진다. 손이 떨리고 잠도 제대로 자질 못하니 정신이 명료하지 않다. 스트레스 상황에 나는 잘 먹질 못하는 편이다. 소화를 못 시키고 식욕이 떨어져 힘겨워하며 누워있으면, 전남편은 늘 히스테리라서 그렇다고 너무 예민하다며 핀잔을 주곤 했다.
지난주 의사에게 상담을 하고는 나는 다시 한번 확인을 했었다. 지금 저의 이런 몸 상태가 히스테리라고 생각하세요? 의사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
“지금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제대로 먹고 자고 할 사람이 있겠어요? 지극히 정상이니, 약을 먹으면서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셔야죠?”
4시부터 떠진 눈을 다시 감고 다시 감으며 5시 반에 도저히 누워있을 수 없어서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낮에도 버티컬을 모두 닫고 어두운 채로 은둔하고 싶다 보니, 아침에는 환기를 꼭 하려고 한다. 문을 열고 차를 한잔 마시다가 문득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도 견디려면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6시 반에 나와서 공원으로 향했다. 어림짐작으로도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라서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그냥 되는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옆에서 함께 걷던 40대 중년 여성이 나보다도 한참을 앞서서 걷는데 난 그렇게 갈 수가 없었다. 천천히 내 발 끝만 보면서 걸었다.
주변의 풍경은 지금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한발 한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힘겹고 무겁기 때문에, 오늘의 산책은 내 운동화 앞 끝에 맞춰져 있다. 그 사이 잘 먹지도 못하고 운동도 거의 못해서 가끔 비틀거리며 천천히 걷다 보니 옆에 70대 할머니와 같은 속도로 걷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나의 속도인 것이다.
1시간을 걷고 스타벅*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 청소하고 빨래를 돌리고 씻고 나니 희원이에게 문자가 왔다.
법원으로부터 또 문서가 송달되었다는 문자를 희원이에게 받고 가슴이 또 쿵하고 내려앉았다.
또 무슨 일을 벌여서 나에게 덮어 씌운 걸까?
전세금을 올려줄 때마다 모든 돈을 전남편에게 이체해 주었다. 대출금 원금을 갚고 이자를 내야 하니 바로 보내라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처럼 낸다고 하던 관리비를 미뤄서 나에게 독촉장이 오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믿은 사람이 바보인 세상이 원망스럽다.
토요일이라 회신이 없을 줄 알면서 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어떻게 해야 할지와 일정이 자꾸 미뤄지다 보니, 추석 전까지 소 제기가 가능한지를 알고 싶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끝없는 기다림은 내게 너무 큰 고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