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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사 Jan 27. 2024

천박하게~

밤새 누군가가 나의 목을 조르는 꿈에 시달려서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무서워서 핸드폰으로 112를 눌러 신고를 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시 누워서 약기운에 잠깐 잠이 들지만, 몇 시간 지나면 또다시 쫓기는 꿈에 눈이 떠진다. 창문 밖은 아직도 어둠으로 너무도 짙고 무겁다.


7시가 넘어 눈이 떠졌지만 더 누워있지 못하고 마치 누군가가 깨운 듯이 벌떡 일어났다.


 전남편은 일요일에도 침대에 누워있는 걸 싫어했다. 잠이 많았던 나였지만, 28년을 살다 보니 일요일에도 눈이 번쩍 떠지고 벌떡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던 몸은 익숙하게 루틴을 따라 하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고 또 공원으로 나갔다. 어제 처음 걸었더니 1시간 넘게 걸리던 거리였으니 8시 정도까지는 걸어야 할 것이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했더니 성시경의 ‘넌 감동이었어’가 나온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인데 이젠 모두가 거짓말 같아서 꺼버리려고 하다가 ‘내가 왜 그래야 해?’ 오기가 나서 그대로 듣고 걷기 시작했다.


전남편과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고 첫인상은 동네 아저씨 같은 다소 촌스런 모습에 다시 만날 생각 없이 차 한잔 마시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집 앞에서 기다리며 구애를 해서 만나보기로 했던 것이다.  185cm의 키에 뚱뚱한 체형을 가지고 쌍꺼풀 있는 큰 눈을 가진 아저씨 스타일의 점퍼 입고 있던 그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는데 그의 구애는 끈질겼었다. 그랬었지...

28년 전에는 그러던 사람이 2011년 내 생일날 ‘왜 전화를 안 받느냐’ 화를 내며 친정아버지가 사보내신 나의 생일케이크를 현관에서 나를 향해 던져버리곤 나가버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 당황스러웠고, 갱년기 우울감과 산부인과 의사의 수술 권유에 심란한 내 이야기는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던 같았다.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부터 전남편과의 잠자리가 원만치 않았다는 생각에 이벤트를 준비했다.

인터넷으로 야한 속옷을 사고 역삼동에 있는 러브호텔을 예약하고 전남편에게 퇴근하면서 역삼역에서 만나서 저녁 먹자고 하고는 호텔로 향했다. 놀라면서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남편은 시큰둥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집에서는 애들이 있어서 힘드니까... 나도 자기랑 하고 싶어서..”

억지로 마치 방어전을 치르는 것처럼 의무를 다한 전남편은

“이제 됐지? 집에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내가 생각한 로맨틱한 야외 욕조와 와인 한잔은 다 건너뛰고 전남편은 옷을 입고 집에 갈 준비를 하며 쐐기를 박았다.


“다음엔 이런 짓 하지 마. 천박하게~”     


"아내를 너무 음탕하게 애무하다가는 쾌감 때문에 이성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으니, 아내와는 조심스레 엄숙하게 접촉해야 한다(아리스토텔레스)"

지가 뭐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니고..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내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한 전남편과의 이벤트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전남편에게 이런 내 모습이 천박하게 느껴졌다는 게 너무 창피하고 모멸감이 들었다. 그 후 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그가 김경아와는 그렇게 변태적인 성행위를 기차역, 진료실, 계단에서 하고 누드로 서로 페이스톡을 하고, 가족이 있는 집에서 새벽에  자신들이 찍은 동영상을 줌으로 함께 보고 매일매일 카톡과 보이스톡으로 야한 섹드립과 영상통화로 자신들의 은밀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변태적 행동이 해왔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위선적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아내와는 관계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잠자리도 거실로 옮기고 내가 주는 약이 무슨 돼지 발정제인양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큰 아들이 대학을 가고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전남편은 터치는 물론 손조차 잡으려 하지 않았고 가끔 내가 팔짱이라도 끼려고 하면 팔을 뿌리치며


"애들 보는 앞에서 왜 이래?,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냐!"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해? 나도 사랑받고 싶은데..." 용기를 내서 말하면

"난 탈모약 때문에 이제 서질 않아..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걸 바래?"라고 했었다.


그러던 그가 상간녀와 섹스를 하기 위해 종류별로 발기부전약을 20개도 넘게 가지고 뉴욕여행을 갔던 것이다. 남은 양이 그 정도였으니 여행 중에는 얼마나 많이 썼을까?


“천박한 짐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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