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글씨 쓰기에 빠져 꽤 오랜 시간을 글씨와 함께 성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변화시키고 삶의 강한 의지와 생기를 불어 넣어준 것은 글씨였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웠던 시절도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시기에 글씨를 만났다.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일단 책 속의 긍정적인 문장을 써 내려갔다. 마음이 불안하고 해답을 찾고 싶을 때는 논어와 맹자등 고전을 복사하며 인생을 배워나갔다. 한치 미래를 알 수 없던 수술대 오르기 전까지는
류시화 시인의 <마음 챙김의 시>를 필사했다.
글씨만 썼을 뿐인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글씨는 나게에 명상이자 종교였다.
종교가 없는 나는 붓잡고 붙잡으며 기도했다.
그저 나 혼자 좋아서 쓰던 글씨를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부터 틈틈히 캘리그라피 강의를 해오고 있다. 글씨에 대해 내가 가르쳐드려야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강의에서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다. 가끔은 정말로 내 글씨가 꼴도 보기 싫고 아무것도 쓰기 싫은 캘태기(캘리그라피+권태기)가 감기처럼 찾아온다. 그럴 때 마다 이제 막 캘리그라피를 시작해서 열정과 의지가 대단한 수강생분들의 태도를 보며 다시 정신을 차린다.
글씨를 쓰며 자존감이 생겼다는 분들, 아이들에게 캘리로 편지를 써줄 수 있어 기쁘다는 분들, 나만의 몰입하는 시간이 생겼다는분들, 그저 즐겁다는 분들. 이분들을 통해 순수했던 초심이 되살아난다. 누군가에게 글씨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한건 나의 오만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글씨를 쓰는 동행자이고 나는 조금 먼저 길을 나섰던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