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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Jun 26. 2023

스노우 필터를 내 삶에

속 얘기까지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 어떻게 사느냐 물으면 “잘 산다” 한다, “별일 없다” 한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여러 가지 일들고 굳이 말하지 않고 얼버무려 “괜찮다” 한다. 실은 실제로는 큰일이 아니니 그게 맞는 말이긴 하나 우리 인생이 어디 큰일만 일인가 실상은 얼마나 소소하게 괜찮지가 않은지. 육아와 살림에 큰 재능이 없는 나는 육아와 살림이 국영수인 엄마라는 역할만 하고 있는 현재 점수가 거의 마이너스이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과목을 하고 싶어 기웃거리느라 국영수는 더 점수가 낮아지는 듯하다.


아이들의 하나하나를 두고 보면 또 어떠한가. 남편과의 관계, 복잡한 형제들과의 관계, 신혼처럼 아직도 같은 문제로 싸우시고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부모님의 다툼, 항상 반복되고 쌓여있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너저분하게 있는 집안일.


요즘 인스타 사진을 보면 나만 흑백이고 다들 컬러에 사는 세상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진은 얼마나 예쁜지 사람얼굴도 배경도 너무 예쁘다. 예쁜 사람이고 예쁜 곳에서 찍어서도 있겠지만 필터의 힘도 클 것이다. 스노우로 찍으면 난 내가 아닌 사람이 된다. 뭔가 더 이뻐져서 기분은 좋지만 이건 내가 아닌걸 알기에 내가 아닌 사진을 찍기가 좀 민망해져 필터 쓰기가 망설여진다. 그걸 인스타에 올리는건 더더욱 오그라든다. 물론 필터나 편집의 기술의 차이일 수도, 훨 자연스럽게 티 안 나게 예뻐지게 수정할 수도..  


최근에 아이폰으로 폰을 바꿨다. 쓴 폰이 오래되기도 했지만 아이폰만이 가지고 고유의 ‘필터’가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폰으로 찍으면 혹시나 내 삶이 조금은 더 이뻐보일까 싶었던 속마음이 있다. 너무 좋은 화소로 내 삶을 적나라하게 찍어버리면, 안보여주고 싶은 부분까지 보여질까봐 적당히 가리고 뿌옇게 하고 예쁜 필터를 씌우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정작 아이폰 14는 삼성폰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평이 있어서 실패, 어쩐지 내 손이 똥손이기도 했지만 사진이 별로 안 이쁘다 했어)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바로 알게 됐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눈에는 필터적용이 안되니 하나하나 다 적나라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뇌에 필터를 적용해야하나.


‘나의 아저씨’에서 송새벽이 형에게 말한다.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 박아버리고 싶은게 가족”이라고. 사람마다 정도는 있겠지만 이게 무슨 느낌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너무 알겠어서 참 공감되는 말이다. 가족만 그러할까 가족으로 통칭되는 적나라한 내 삶 자체를 말하는게 아닐까. 과하지 않은 적당한 필터를 내 삶에 끼워 사람들에게 ‘나쁘지 않게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정작 내 삶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속 얘기까지 할 수 있는 친구가 전화해서 묻는다. 어떻게 사냐고. 난 대답한다. “비루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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