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아님 내가 할까’ 생각만 하고 제가 먼저 전화하지는 못하네요.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이 얼마나 잦은 떠올림의 반복 끝에 할 수 있는지, 얼마나 그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한지 알기에 그래서 선생님의 전화는 더욱 고맙고 반갑습니다. 마치 가을이 겨울로 넘어갈 때 잊지 않고 찾아오는 우리 마을의 기러기들처럼요.
나의 안부를 정중하게 묻는 선생님은 여전히 다정하고 정답습니다. 점심 먹고 산책하다 햇살이 좋아 저를 떠올리고 전화했다합니다. 다른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점심의 좋은 햇살 한 줌이 저를 떠올리게 했다는 그 말이 나를 더욱 기분 좋게 합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지만 이 통화는 짧은 통화일걸 알기에 최대한 내 삶을 솔직하게 그러나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대충 잘 지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세세한 삶을 하나도 모르는 당신에게 ‘비루하다’라고 나의 안부를 말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알 당신이기에 그렇게 안부를 전하는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일 년에 3-4번의 통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에 안심이고 삶의 내용이 어떠한지 알 수 없지만 마음만은 편하길 바라는 마음이 서로 전해집니다.
내 삶의 굵은 한 단락을 가까이에서 함께하고 누구보다 내 바닥과 진짜를 잘 아는 당신이기에 나를 포장할 이유도, 잘 보이고 싶은 이유도 없어 관계가 간결합니다. 서로 그러하겠지요. 그 당시에는 뒤죽박죽 정신없이 보냈지만 다 지나고 나서일까요. 그 시간이 그립고 그 시간에 함께한 사람들도 그립습니다. 그래서 아마 당신도 점심 산책길에 저를 떠올렸을 테지요. 가끔 햇살 좋은 날 함께 했던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휴식이었으니까요.
간혹 올라오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글에 선생님의 본인다움이 다 묻어있어 좋습니다. 반복되는 건조한 하루하루지만 잘 버텨내길, 퇴근 후 두 고양이와 마시는 맥주 한 캔에 밥벌이의 그 체증이 약간이라도 씻기길, 팍팍한 일상 속에서 그 말랑말랑함 변하지 않기를, 건강하기를. 어느 날 문득 볕 좋은 날 연락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