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하지 않는 독서, 독서모임의 유익
인문학부로 입학한 나는 2학년 전공이 정해지기 전, 1학년 때는 인문학부에 속해있는 다양한 과의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나는 철학과 소속으로 배정받아 철학과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 수업은 4년의 대학 수업 중 가장 기억이 생생한 수업으로 기억한다. 교수님께서 첫 시간에 칠판에 地平(지평)이라는 한자를 담담하게 적으셨다. 철학의 목표는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고. 교수님께서 지평을 설명하는 그 장면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다 기억난다. 그 때 뭔가 스파크가 튀는 내 모습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실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이 글을 쓰면서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 말은 내 안에 일어나는, 말로 규정하기 힘든 내 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한 단어였나 보다고 추측할 뿐이다. 쉽게 말해서 굉장히 내 마음에 쏙 든 단어였다. 그 후로도 입사한 사장님의 블로그에 쓰인 '지평'이라는 단어를 보고 나와 인연이구나. 열심히 일해야겠다라고 느끼기도 했고, 신랑이 좋아하는 막걸리가 '지평'막걸리였을 때도 뭔가 반가웠다. '지평'이라는 단어는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계속 내 인생에 따라다녔다.
나는 박경리의 토지를 좋아하며, 박완서나 은희경과 같은 작가를 좋아했었다. 아무래도 여자작가가 쓴 글이 훨씬 더 잘 읽혔고 내면을 어떻게 이렇게 잘 글로 표현하나 감탄하며 읽곤 했다. 남자작가가 쓴 글도 당연히 읽었지만 읽어봤자 거의 다 소설류였으니 나는 편식이 심한 사람이었다. 그나마도 아이 낳고 나서는 육아서적을 제외하고서는 많이 읽지 못했다. 이렇게 책을 안 읽어도 되나 싶어 하나 꺼내 들면 현실의 혹독함과 전쟁 같은 육아덕에 그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내 코가 석자라 이렇게 한가롭게 책을 읽을 바에 애들이랑 눈 맞추고 놀아주거나 잠을 청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 책을 등한시하곤 했었다. 그래도 인연이 되어 읽게 된 책이라도 있을라치면 눈으로 활자만 읽는 수준이라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읽기 일쑤였다. 실은 육아태풍의 가장 핵에 있는 그 시기에는 영화나 드라마, 가요도 내겐 사치여서 다들 아는걸 그 시즌의 나는 미친듯이 바빴기에 다른 세계에 산 사람처럼 듬성듬성 구멍이 난 것처럼 모른다. 예를 들면 신혼 때는 챙겨보던 마블 시리즈라던가,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와 같은 드라마 이런거 1도 못봤다.
일도 그만두고, 아이 둘도 좀 크고 나니 처음으로 동네 친구, 아이친구 엄마랑 맘껏 놀았다. 수다 떨고 맛난 거 먹고 여중생처럼 재미나게 놀았다. 재밌더라. 근데 뭔가 허전하고 휑하고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쉽게 내가 잘 읽는 류의 소설을 읽었는데 답답하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독서모임을 찾았고 독서모임을 통해 평생 나라면 고르지 않을 책들을 숙제처럼 읽게 됐다. 내가 언제 니체를, 코스모스를, 총균쇠를.. 읽겠는가. 접해보지 못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과 매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모여 그 책을 두고 나누는 이야기들은 내 지평을 넓혀주기 충분했다. 내 지식의 창고가 있다면 그 카테고리들의 영역이 점점 아주 조금씩이라도 확장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오늘 하루 내가 조금은 더 똑똑이가 되었구나 하는 흐뭇함이 든다. 해당 카테고리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지면 이젠 그 이전의 눈으로 보기 힘들다. 굉장히 달라지진 않아도 이미 넓혀진 지평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참고로 나는 독서모임 이름을 정할 때 '지평'을 제안했고, 그 이름이 채택되어 '지평'이라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게 된다!)
뜬금없지만 고백을 하자면 독서모임을 통한 책 읽기는 나에게 또 다른 유익도 준다. 우선 책을 어려서부터 가까이하려고 한 편인 나는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허세가 있다.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그런 거 없는 사람을 많이 못 봤다. 하긴 어떤 경지에 이를 정도로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제외다. 새 책 사길 즐겨한다. 새 책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너와 나의 인연이 될 때 그때 만나자' 하고는 잊고 산다. 그러다 진짜 꽂히는 어느 날 인연이 되면 난 그 책을 만난다. 다른 사람집을 방문할 때 내가 가장 유심히 보는 것은 그 집의 책장이다. 그 책장이 크든 작든 거기에 꽂힌 책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책들을 읽었구나.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와 같은 책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 허세를 장착하고 있는 나에게 독서모임에서 읽는,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의 책들과 명문대생들이 즐겨 읽는다는 두꺼운 책들, 많이들 들어온 유명한 학자들의 책들은 내 허세를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흡족했다. 인스타에 올리기도 좋고, 신랑과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도 굉장히 좋다. 비록 일찍 찾아온 노안으로 내 눈과 두꺼운 그 책들과 바꾼 느낌이지만. (실제 범인은 스마트폰일 거라고 확신한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모임이 있다. 미리 두꺼운 이 책들을 읽어내느라 짬이 나면 독서대에 책을 두고 읽기 바쁘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매달 나에게 찾아올, 내가 고르지 않은 책들은 기분 좋은 설렘을 갖게 한다. 이번엔 어떤 책을 만날까. 어떤 영역의 책일까. 내 지평은 얼마나 더 넓어질까. 그리고 이런 독서생활을 꾸준히 한 10년 후의, 20년 후의 내가 기대된다.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있기를, 지금보다는 더 넓고 깊게 사고하기를, 지금의 나보다는 더 똑똑해져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