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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Jun 26. 2023

전업주부, 이런 느낌일 줄 몰랐다.

결혼 11년 차, 전업주부 3개월 차.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일하기 시작한 지 16년, 워킹맘 10년 차.

지방(기차로만 3시간, 도어 투 도어로 5시간, 매주 일요일 밤에 올라오셨고 매주 금요일 밤에 내려가셨다)에 사시는 친정엄마 찬스 4년, 둘째 봐주시는 이모님으로 또 3년, 버티고 버티다가 참다 참다가 일을 그만뒀다.


일 그만 두기만 해봐라 싶던 마음도 막상 그만두고 나니 뭔가 어색한 마음이 크고, 하루아침에 그 많던 메일과 전화들, 요청들이 사라지니 속 시원하면서도 아쉽고, 나를 엄마나 와이프가 아닌 다른 정체성으로 불러주던 이름이 없어지니 내 다른 자아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아 허전하다.


"오늘은 뭐 했어?" 다정하게 묻는 신랑의 말에 뭔가 변명하듯 오늘 한 일에 대해 얘기하고 퇴근하고 들어오는 신랑에게 좀 더 밝게 대하고 깨끗한 집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긴 하다. 그동안 회사일 마치고 헐레벌떡 쫓기듯 뛰어와서 (출퇴근 편도만 1시간 40분) 애들 케어하고 재우기 바빴던 거 생각하면 회사일 없이 집에 전업으로 있으니 신랑에게 설거지나 재활용 쓰레기나 이런 집안일 1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 한다. 또 그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히 주말에 애들이랑 아빠로서 놀아주고 하는 건 필요하고 애들이 아주 어리다면 아빠도 육아나 집안일에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름 일 좀 한다고 생각했고 퇴사 후에도 집에서 이런저런 제안을 해서 애 학원비라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오만은 3개월쯤 되니 내려놓게 된다. 난 그냥 회사라는 테두리, 시스템 안에서 일을 한 거지 독창적으로 나 혼자만의 힘으로 돈 버는 일은 택도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래서 전문직 전문직 하나보다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퇴근하고 온 신랑에게 선포했다. "나 이제 일 안 해. 아예 시도도 안 할 거야. 그냥 놀 거야.(솔직히 애들 케어와 끝없고 티 안나는 집안일을 논다고 하는 건 완전 말도 안 되지만) 그리 알아. 난 충분히 고생했고 이제 좀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한 날부터 보름 동안 신경성 소화장애가 15년 만에 도져 위에 뭔가 묵직하니 얹혀있다.


이제 일을 안 한다고는 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리기는 한다. 나 스스로에게 '그냥 재미로'라고는 했지만 '혹시나'라는 마음이 더 큰 듯하다. 그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였는지 동네 행사(핼러윈, 키즈 플리마켓)도 자처해서 추진했다. 이전에 했던 일과 비슷한 느낌이라 뭔가 나에게 만족이 되었다. 자..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솔직히 직장을 통해서 인정받는 욕구를 충족했던 나는 직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무엇으로 인정받을지 모르겠다. 집안일은 워킹맘이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원래 못하는 거였고, 아니 싫어하는 거였고(워킹맘 때와 집의 청결 정도는 비슷함) 육아도 잼병이라 애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며칠 전 꿈을 꿨다. 원래 꿈이란 게 무의식의 파편들이 뒤섞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는 하지만 괴상한 꿈이었다. 10년 다닌 직장 사람들끼리 유럽여행을 갔나 보다. 나는 가지 않았고 여행가 있는 직원들의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며 (믿기진 않지만) 그리워서 통곡했다. 통곡이라 부를 만큼 엉엉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꿈에서의 울음이 현실의 울음으로 바뀌고 곧바로 잠이 깼고 당황스러웠다. 뭐 통곡할 정도로 그립나.. 사람이 그립나. 일이 그립나. 내 무의식을 들킨 것 같아 좀 민망스럽기도 했다.


과도기인듯하다. 몇 달 더 있음 적응도 되겠지. 전업주부로 천명하고 받아들이고 잘 살자. 아님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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