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를 놓치지 말고 뭉글거리길 기다리자.
몽글몽글 내 안에 저 밑에서 어떤 말들이 피어오른다. 바쁜 하루 중 어느 찰나에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무시하고 나의 삶을 살아가지만, 건넨 그 말이 영 찜찜하다. 며칠이 지나 또 같은 말을 건넨다. 그게 대화로 이어지는 법은 없다. 화두만 던져질 뿐 내가 뭐라고 대답하거나 정리하지 않는다. 몽글몽글 피어나던 그 말은 뭉글뭉글로 바뀌고 내 안을 가득 채워 배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이 된다. 그러면 키보드든 종이에든 왈칵 쏟아내게 되고 이 글들은 잘 쓰려는 조금의 의지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의식조차도 없이, 생리현상 같이 자연스럽게, 본래의 것,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된다. 나는 그 건넨 말의 결론을 그때는 알지 못하지만 키보드에 손을 얹는 순간 처음과 끝을 다 알았다는 듯 써 내려간다. 뭘 말하고자 하는지, 어떤 의도인지, 정형화된 형체가 없이 다가왔던 것이 쓰면서 만들어지고 깨달아진다. 내가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배출하고 나서는 엄청난 시원함을 느낀다.
이러한 글쓰기가 나에게 가장 즐거운 글쓰기다. 나에겐 글쓰기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다. 이렇게 쓴 글이 쓰고 나서 읽었을 때 가장 만족스럽다. 작정하고 주제를 가지고 쓸 때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쓰는 글은 뭔가 나스럽지 않고, 부끄럽고, 진짜 같지 않아 결국 읽는 사람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덜 주는 것 같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내 안의 누군가가 건네는 메시지, 영글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쓸데없이 무분별한 배출을 줄이는 것 그리고 마지막 외로움 한 스푼. 메시지라는 것이 주제가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매우 뜬금없고 주제도 다양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영그는 시간을 거치면서 어떤 것은 사장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더 뭉글뭉글 피어나기도 해서 모든 메시지가 글로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내 글감 메시지 통에는 배출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다. 영원히 안 나올 수도, 늦게사 나올 수도.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어떤 여러 가지 작용들이 결국 배출할 메시지와 시기를 결정한다.
가장 중요한 건 무분별한 배출을 줄이는 것.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하나마나한 실없는 얘기를 과하게 나누면 그 시기의 그 무엇은 맛나게 영글지도 못하고, 영글 시간도 부족하고, 영글 영양분을 뺏겨 부실해져 비실거린다. 적당한 햇살과 따뜻한 온도와 알맞은 습도가 더해져야 영글어지는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많은 배출은 그걸 다 맞추지 못하게 만든다. 뭉글거려서 토해내고 싶은 욕구를 입으로 떠벌떠벌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뭔가 저렴하고 품위 없게 배출한다는 느낌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람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내 안의 그 말이 막걸리 누룩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터지게 기다려줘야 한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 외로운 느낌적인 느낌이 한 방울 섞이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토해내지고 만들어지고 완성된다. 그렇다고 모든 글이 외로움에 대한 글은 당연히 아니며, 우울하거나 진지하기만 한건 아니다. 다만 내 안의 사는 그 누군가가 용기 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그 외로움적인 무드를 만들어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 그러면 그제야 가장 편안하고 진짜 소리를 낸다.
내 안에 메시지들이 너무 많이 산재해 있고 배출하지 못하면 뭔가 찝찝하고 답답함을 느낀다. 그땐 달리는 속도를 잠시 낮추고, 내 안의 화학작용에 조금 더 집중하고 귀 기울인다. 약간만 정성을 들이면 그 이유를 알게 되고 적당한 시간에 배출이 되면 나는 한결 가볍고 시원한 기분으로 돌아선다. 오늘 나는 이 글을 통해 약간 더 시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