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룩끼룩
동쪽으로 쭉 뻗은 출근길을 가다보면 저 앞으로 그들이 줄지어 한강으로 간다. 아침 먹으러 가나보다. 일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서쪽 집으로 들어오다 보면 그들도 하루 잘 보냈는지 ‘끼룩끼룩’ 거리며 산으로 향한다. 이들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저 북쪽 시베리아에 잘 있다가 또 왔다고,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하다. 그러면 나도 우리도 잘 지냈었다고 별일 없었다고 손 흔들며 화답해준다.
그들을 볼 때마다 고은 시인의 ‘선제리 아낙네들’이 생각난다.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장에 갔다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말소리와 밤기러기 소리가 남이 아니라고 한다. 그 먼길을 오고 가는 고된 길을 혼자 하는게 아니라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의좋다고 한다.
그 춥고 먼 북쪽 땅을 향해 얼마나 많은 밤을 쉴 새 없이 날개를 저었을까. 아름다운 선을 이루는 도열을 유지하며 어떤 약속으로 어떤 신뢰로 서로를 의지하고 정답게 그 긴 시간을 함께하는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뒤처지는 친구 다독이며, 칭얼대는 친구 달래가며. 함께 가자고, 가야한다고 얼마나 많은 정다움이 그 시간들을 채웠을까.
혼자서는 다다를 수 없다. 혼자서는 행복하지도 않다. 설정이라도 한 듯 오차없이 도착한 그곳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 기쁨을 나눌 수 없다.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 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