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용 시뭔SiMone Feb 08. 2022

토니 블레어가 아니고 그냥 토니예요.

"잠시 조사가 있겠습니다."

갑자기 경찰차가 우리 집 대문 앞에 서더니 남녀 경찰관 두 명이 성큼 정원으로 들어선다. 여자는 갓 스무 살이 넘었을까 말까 한 앳된 소녀티의 경찰이고 남자는 몸집이 거대한 40대의 아저씨다.

감색 제복에 은색 계급장을 번뜩이며 사뭇 위압적으로 다가왔으나 첫인상은 둘 다 순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요청도 없는 경찰 출동은 처음 당해봐 순간 바짝 긴장이 느껴진다. 이곳 영국에서는 고사하고 한국에서도 접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살던 런던 근교 스테인스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경찰차의 사이렌은 커녕 고함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하는 고요하고 잔잔한 동네이다. 

집안에서 바라보면 템즈강엔 하루 종일 형형 색색의 보트와 무리를 지은 백조가 떠 다니고 여름이면 크고 작은 조정 경기가 심심찮게 열리는 템스강 중류 마을이다. 

스테인스


집 울타리와 강 사이에 난 오솔길은 인근에서 즐겨 찾는 산책 코스이다. 아침저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강변을 따라 개와 함께 걷기도 혼자서 뛰기도 한다. 휴일이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와 산보를 하는 말하자면 둘레길인 셈이다. 

전통 영국 주택답게 앞뒤로 널찍한 정원이 야트막한 나무 담장으로 둘러쳐있다. 마당이 훤히 들여다 보여 지나다니는 산보객과 인사를 나누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네들은 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개에 대해서는 이름이며 나이며 많이들 알고 있다. 



"우리는 '#$%&*'입니다. 토니를 키우고 계시지요? 그녀가 있던 곳으로 안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대하다 보니 무엇보다 어디 소속이라는 소리도 일단 알아듣지 못했다. 

게다가 무엇 때문에 두 명씩이나 느닷없이 찾아왔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영국의 전 수상 토니 블레어를 따서 지어 낸 우리 집 개 이름은 또한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스러웠다. 호기심도 일고 걱정도 되어 다시금 찬찬히 그들의 제복을 뜯어 살피니 경찰은 아닌듯해 우선 안심이 들었다. 

원하는 대로 두 평 남짓의 앞 뒷정원 사이를 연결하는 통행로로 데려갔다. 시내에 볼일이 있을 때 토니를 놓아두는 장소로 통로 양쪽으로 문이 달린 숨은 공간이다.

"누구라고 밝혀드릴 수는 없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그들은 나무로 만든 쪽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땅바닥을 만져도 보면서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토니를 가둬두고 외출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실 물도 충분히 주어야 하고요." 

그러고는 크게 문제가 될 사항이 없었는지 조그만 책을 주고는 가버렸다. 개 사육에 관한 정보를 담은 책자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RSPCA( 왕립 동물 학대 방지협회 The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소속으로 동물에 관한 한 경찰 같은 막강한 임무를 가진 기관원이었다. 아마 동네 주민중 누군가가 눈 여겨보다 고칠 점을 발견하고 신고한 모양이었다.               



토니는 래브라도 레트리버종으로 근육질의 넓은 앞가슴과 가늘게 휘어진 꼬리를 가졌다. 누런색의 짧고 조밀한 털이 기름기가 자르르 흘러 귀티가 났다. 작고 단단한 발과 뿌리가 굵은 다리가 가져다주는 균형감은 또 다른 매력이다. 그렇지마는 외화내빈이라고 잘생긴 반면에 머리는 나쁜 편이다. 아니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였는지 강아지 때부터 잘도 길을 잃었다. 한 번은 집을 나가 찾지 못해 포기했었는데 사흘 만에 런던 교외의 동물 구호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이삼일 먹여주고 재워 준 대가로 호텔비와 맞먹는 돈을 지불한 후에야 다시 데려왔다. 하루는 스테인스로 이사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방향을 까먹었는지 얘가 들어오질 않았다. 동네로 찾으러 나갔더니 신기하게도 '아까 어디로 갔으니 어디 어디에 있을 거다'라고 주민들이 알려 주기도 했다. 

주위의 관심 걱정과는 달리 이런저런 연유로 우리로서는 목에 끈을 매 주거나 방에 가두는 도리밖에 없었다.



언제는 시내에 다녀와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못 보던 물그릇과 생수통이 놓여 있었다. 바깥에 놓아두지 말라기에 이번에는 긴 줄로 묶어 거실 안에 두고 다녀왔던 터였다.

토니가 밖에 나오고 싶어 온 하루를 거실에서 낑낑거리니 누군가 현관문에 달린 쪽문 (cat door, 개나 고양이가 다니게 제작한 문구멍)으로 밀어 놓고 간 모양이었다. 필시 '어떤 코리안이 이사 와서 개 한 마리 말려 죽인다'라 생각한 이웃 소행이 분명하였다. 관심이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토니의 안위安危를 우리 가족보다 주위에서 더 걱정했나 보다고 위안 삼았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어느 날 막내아들과 함께 런던 시내로 토니를 데리고 나간 적이 있다. 아이가 10살쯤의 일이다. 옥스퍼드 서커스 부근의 포틀랜드가는 럭셔리한 영국식 개인 병원이 밀집한 깔끔하고 부유한 거리이다. 내가 먼저 신호등을 지나 길 건너편을 걷고 있는데 막내가 토니와 따라오다 그대로 멈춰 섰다. 개를 끌어안고 주저앉아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뭔가 이상해서 달려가 살펴보니 아이 눈에는 이미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자기에게 뭐라 했단다. 듣자마자 분한 마음에 쫓아가 따지려 했지만 그러던 사이에 여인은 벌써 사라져 버렸다.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동안 마음 상했는데 애는 얼마나 충격받았을까 걱정되었다.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황당한 영국 백인 여자다.


"너 이 개 언제 잡아먹을 거니?"





이전 13화 아저씨들 시방 머 하는 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