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모른다. 심경에 변화가 있을 뿐이다. 독거노인으로 불리게 된 이후에 자연스레 보여지는 심약한 모습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사실이니까.
누가 고향을 물어 오면 대충 보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난 그곳에서 나지도 자라지도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초등학교까지 다닌 대전이 실제 고향이다. 그런데 내 나이 8살에 부모님이 양조장을 운영하러 보은으로 들어가셨기에 우리 형제들은 대전에 따로 떨어져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부모님 댁으로 가서 진탕망탕 뛰놀며 온전히 휴가를 즐겼으니 보은이 더 정이간다. 유년기의 시골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아 남보다 하나 더 가지게 되었다. 고향이 두 곳이면 안된다는 법은 세상 어느 법전에도 없으므로 그때그때 편한 대로 사용한다.
시골에 가게 되면서 점차 이웃 아이들과 동무하며 놀았으나 일차적인 놀이터는 집과 붙어있는 '술도가都家'였다. 술도가 끔 마시긴 했지만 갈증 나서 물 대신 먹었지 당시에는 맛을 알고 마신 건 절대 아니었다. 집에 항상 술이 물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운명'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 어릴적 놀이터인 양조장의 구조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사입실 내부 : 구글
고두밥
기억을 되살려 보면 냉각실에서 식히던 고두밥의 대부분은 사입실로 직접 들어가고 나머지는 누룩과 나란히 종국실로 보내져 나중에 함께 섞어 발효시킨다. 그 중 극히 일부는 냉각실의 조그만 환기통을 통해 외부로 빼돌려진다. 밖에서 쌀 고두밥을 먹고 싶어 애처롭게 쳐다보는 동네 아이들에게 몰래 넘겨주기 위한 나의 소행이다.
사입실 외부:구글
그중 한 분인 경수 아버지가 대답해 주었다. 지금 기억에 당시 그의 나이는 40대 초 언저리로 여겨진다. 술을 너무 좋아해 마음껏 마시려고 취직했다는 소문이 어린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아들인 경수도 커서 우리 집에서 술 배달을 했고 부인인 경수엄마도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오랫동안 우리 집 부엌일을 하셨던 거의 가족 같은 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