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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Jan 25. 2022

그 비싼 독일 택시로 국경을 넘어...

여행기

내가 그 비싼 독일 택시를 타게 된 연유는 이렇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동쪽으로 기차를 2시간 남짓 타고 가면 모젤강 상류 마을 코켐 Cochem에 닿는다. 가파른 산비탈에 세워진 포도밭이 강가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화이트 와인 산지이다. 리슬링 와인으로 유명한 이 동네에서 이틀을 묵고 프랑스 알자스 콜마르에 가야 했다. 말이 쉽지 5번 기차를 갈아타며 6시간 이상 걸리는 엄청 빡센 여정이었다.

모젤 강변의 포도밭

코켐-코블렌츠-마인츠-프랑크푸르트-스트라스부르-콜마르를 거치는 일정은 독일 도착 당일 공항기차역 직원과 함께 짠 시간표라 정밀하였다. 그런 만큼 너무 타이트하여 단 한대의 기차만 놓쳐도 목적지인 콜마르까지 가지 못하는 루트였다.

밤 9:30에 알자스의 주도 스트라스부르역에 도착해서 30분 후 콜마르행 마지막 완행열차로 갈아타기만 하면 계획이 끝났다.

원래 계획: 코켐- 프랑크푸르트-스트라스부르-콜마르 여정

그날 오후 3시에 코켐에서 출발한 첫 기차는 코블렌츠를 지나고 마인츠를 거치면서 수시로 연착되어 느지막이 프랑크푸르트역에 도착했다. 저녁 6시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겨우 세 시간에 불과한 거리를 한 시간이나 지체했다. 이미 스트라스부르행 열차는 놓쳐 버린 것이다. 그렇더라도 다음 열차는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할 즈음이면 콜마르행 밤 10시 막차는 벌써 떠나고 없을 터였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물론 스트라스부르는 큰 도시라 잠자리를 찾기도 쉽고 다음날 교통편도 구하기 어려울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내 잘못도 아닌 기차 회사의 과실로 하루 호텔비를 가외로 지불하고 게다가 앞으로의 일정까지 거듭 꼬여지기는 무엇보다도 싫었다.



프랑크푸르트역에 항의하였다. 역무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무심히 듣더니 '먼저 오후 7 30분발 스위스 바젤행 기차를 타시라'한다. '바젤로 가는 도중에 프라이부르크(독일) 역에서 내려 역전에 도열한 택시를 잡아타고 국경을 넘어 콜마르(프랑스) 호텔까지 가시라'라 한다. 그러면서 기차표와 기차회사에서 대납하는 ‘택시 운임 지불보증서 내게 쥐어 주었.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프라이부르크 역 앞에 대기한 택시 중 가장 크고 깨끗해 보이는 벤츠를 골라 잡았다. 

“조금만 더 가면 프랑스 국경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국경이라 해도 아무 검사가 없어요. 그렇게 된 지 어느새 30년이 가까워 옵니다.”

말을 걸어온 독일인 운전수는 예순은 됨직한 초로의 남자였다. 밤길임에도 느긋하게 왼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폼이 제법 익숙해 보였다. 장거리 영업이라 더 신이 났는지 얼굴에도 웃음기 가득했다.


“저기요, 기차로 11시에 도착할 거라고 숙소에 예약했거든요. 문 걸어 잠갔을까 봐 걱정이네요. 아주 조그만 호텔이거든요.” 자정이 가까워져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더구나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대라 그런가 인적도 드물었다. 게다가 사방이 기괴하리만치 고요하여 나는 좀처럼 안심이 되질 않았다. 

변경된 계획: 코켐-프랑크푸르트-프라이부르크(바젤)-콜마르

삼사십 분쯤 뒤 이 택시에서 내리면 알자스의 조그마한 마을 콜마르에서 오갈 데 없이 내버려질 거라 상상하니... 며칠 전에 코켐서 일어날 뻔했던 사고가 다시 떠 올랐기 때문이다. 작은 호텔에는 24시간 관리인이 없기에 도착 시간이 많이 늦어지면 못 들어갈 수가 있다. 


“걱정 마세요. 내가 틀림없이 호텔 안에 들어가게 해 줄 테니... 가만 여기 잠깐 내려주세요. 국경에 강이 있는데 뭐 좀 보여드리려고요.”


‘나는 너무 늦어 안달이 나서 죽겠는데 한밤중에 웬 관광 가이드를 한다고 난리야?’하며 내려 보니 별것도 아닌 수문 갑문이었다. 이틀 전 모젤 강에서 배를 타고 오르내릴 때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다른 데와 달리 이곳에는 근무하는 사람이 없어도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인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호텔방에 고이 들어가려면 “대단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줄 밖에... 

'오른손을 바싹 위로 쳐들고 하이 히틀러를 외쳐라'해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판인데...






“보세요. 아까 우리 독일하고 여기 프랑스하고는 사뭇 다르죠? 이 쪽 길이 더 좁고 터덜거리며 건물도 많이 빈약하지요.”

국경을 넘어서 프랑스로 들어서자 운전기사는 자신의 조국 독일이 한껏 자랑스러운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이곳 길가에 무성한 잡초 보여요? 얘네들은 관리를 못해요. 독일 아니면 지금 유럽 몇 나라는 쓰러지고 말 겁니다. 우리가 돈을 끔찍스레 퍼주고 있어요!”

운전수에게 만족과 의심, 우월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하였던 걸까? 오만가지 감정에 사로 잡힌 듯 얼굴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더불어 입가의 미소도 점점 사라져 갔다.


“한 가지 물어볼게요. 나는 한국 치과의사입니다. 내가 쓰는 독일제 수술도구는 미제, 일제 보다도 훨씬 정교하고 단단합니다. 한국인에게 독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확실', ‘정확’입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오늘 기차가 1시간 이상 연착을 했단 말입니다. 겨우 세 시간 거리인데요. 오늘뿐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제시간을 못 지키더라고요.” 잘난 체하는 운전수의 입도 잠재울 겸 못내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았다.


“아, 그건 ‘불루드’때문이에요. ‘불루두’.”

‘불 루두?’ 잘 알아듣지 못해 어깨만 들썩이자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손등의 핏줄을 가리켰다. 

‘아항, ’ 블러드, 피 Blood를 말하는구나!’


그는 내 것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자기 코를 잡아 늘이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자만심이지요. 우월감. 그게 독일인들의 문제입니다. 다들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기에 그런 현상이 생깁니다.”

그가 말하는 뜻을 더는 이해기 어려워 나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이런 게 자주 있나요? 열차의 도착 지연으로 인해 철도회사에서 택시 요금을 대납해 주는 경우가?”


"그럼요. 꽤 있지요.”

택시기사는 생각하면 할수록 흐뭇한 듯 입가에 미소가 다시 돌아와 점점 더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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