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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Oct 10. 2023

앙코르를 이끌어내신 아주머니 군단.

유난히도 바빴던 20X2년 2월 9일 2번째 모교일.


1. 점심시간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휴대폰을 켠다. 

 ‘원장이임~"

'식사하셨어요?’

...

‘오늘밤에 스케줄 있으세요??’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7시 30분에 하는 음악공연 티켓이 한 장 남아 있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일본 현악 연주가 ’ 어쿠스틱 카페‘ 공연이에요.’


갑자기 내 핸드폰에 일련의 메시지가 주르륵 뜬다. 

앗, 투란에게서 온 글이다.


간택된 고마움이야 태산 같지만 매월 두 번째 목요일엔 저녁 회합에 가야 한다. 

재빨리 참석 불가의 답장을 보낸다. 

‘오늘 저녁엔 딴 모임 때문에 못 가겠네요.’

진료 중엔 전화나 문자를 못 만나지만 쉬는 시간에 확인하면 곧바로 답신을 보내는 나는 차칸 남자다.


‘에이, 아쉽다. 담에 기회 되면 또 연락드릴게요.’

투란도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허지만 아무리 갑작스러운 땜빵이래도 아쉬운 쪽은 나인데...

... 어쩔.까.나?.. 그렇다! ‘삐빠따’를 실천하자. 

‘삐빠따’란 삐지지 말고, 빠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는 새 시대 나의 좌우명이다. 저러콤 부를 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달려 나가자!


‘잠깐! 기다려 봐요, 만약 우리 둘 만 간다면 다른 미팅 따윈 팽개치고..... 가.. 도록 할게’

돌연 장난기가 발동하여 엉뚱한 제안을 한다. 여럿이 가려다 하나가 급작스레 못 가게 되니 나를 부른 거겠지... 설마 단둘이 가려고 했겠어? 어쩔 도리 없는 노인의 자격지심이다. 


‘정말? 티켓은 두장뿐인데.. 같이 간다던 친구가 시름시름 앓고 있어서... 요’

아, 그렇게 되는구나. ‘장난의 운명’이란 것이 바로 요거구나! 


'고오-뢔?'

'그럼.... 오시는 거죠?' 

'저녁 식사는 함께 못해. 각자 해결해도 좋으면 갈게요. 내가 모임에 음식점을 소개해 줘서 꼭 가 봐야 돼.'

‘오케이. 그러면, 약속되었습니다. 예술의 전당 정문 앞에서 공연 시작 십 분 전에 만나요. 7시 20분입니다.’

‘아라쩌요.’



2. 그날 오후

‘어쿠스틱 카페?’

음악에 워낙 문외한이라 이 그룹은 잘 알지 못했어도 길거리에서 안내 현수막을 본 적은 있다. 아마도 클래식 기타를 곧잘 치는 자들이겠지... 라 짐작하며 검색해 본다. 자작곡 ‘라스트 카니발 Last Carnival’과 ‘내일의 희망 Hope for tomorrow’ 이 인터넷에 즉시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풍의 클래식 음악이다. 잽싸게 두 곡을 다운로드하여 계속해서 몇 번 듣는다. 이럼으로서 그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춘다.


인터넷 설명에 따르면 어쿠스틱 카페 Acoustic cafe’는 '일본의 뉴에이지 연주 그룹으로 세 명의 멤버가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를 각기 연주한다. 1991년 데뷔하여 총 6집의 음반을 냈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그룹'이란다.



3. 공연 직전

정말이지 참으로 오랜만에 간 '청주 예술의 전당' 본관이다. 근래에 부속 전시실까지 가기는 했어도 주연주장엔 기회가 없었다. 무척 혼잡하다. 현장에서 표를 사려는 건지 건물 내부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더 복잡하다. 앞쪽이지만 정중앙은 아닌 공간에 자리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빈자리가 보이지 않고 거의 만석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 줄만 가운데 쪽으로 십 여석이 텅 비어있다.


"겨우 오십만 청주 인구로 이토록 큰 공연장을 어떻게 꽉 메울 수 있지? 값도 꽤 비싸던데..." 하며 놀라움을 표현하자

"시민들이 문화에 갈증이 있나 봐요. 그리고 저처럼 소셜 커머스를 이용하면 표는 싸게 구입이 가능해요."라는 투란의 대답이다.


갈증! 소리를 들으니 불현듯 목이 마르다. 

‘나에겐 그런 고상한 갈망이 왜 안 생기는 걸까?’라 자학하며 갈등에 빠져 드려는 찰나 느닷없이 징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실내조명이 꺼진다. 그와 동시에 난데없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 군단이 나타나 우리 옆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한다. 서로를 ‘권사님’ ‘집사님’ 호칭하는 것으로 보아 교회에서 단체로 관람을 오신 듯하다. 잠시 소란스러웠으나 천만다행으로 연주자들이 무대에 서기 전에 자리를 다 잡으신다. 


연주에 관한 논평은 하지 않겠다. 그럴 자격도 없거니와 나의 몫이 아니다. 그룹의 작곡자이자 연주자인 츠루 노리히로는 “이 음악을 들으면 영상이나 풍경, 이야기를 떠 올리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고 스스로도 이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바로 그러한 점이 인간의 마음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밝혔으니 대신 참고하시기 바란다.



4. 공연 -1부

첫 연주가 시작되고 정확히 6분 후.

옆자리의 아주머니 군단 중 반 이상이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교회사람들이니 연주회의 성공을 위하여 성경책을 꺼내 기도해 주려나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밝게 빛나는 물건을 들고 계신다. 스마트폰이다!

하나같이 휴대폰 문자판을 누르더니 이제는 동영상까지 찾아보신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에 내가 점차 신경이 쓰인다. 캄캄한 연주회장에서 옆댕이의 핸드폰 광선은 눈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끊임없이 어지럽힌다. 


음악만이 흐르는 고요한 연주회장이니 동행한 친구들과 떨어야 할 수다를 문자로 주고받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들 인생에 피치 못할 중요한 사건이 하필이면 지금 줄곧 생겨나고 있는 걸까? 아무튼 거개가 폰을 놓지 못한다. 간혹 손에 들지 않은 아주머니께서는 두런두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으니... 아아, 인내의 한계여. 그러나 누굴 탓하랴. 요놈의 소란한 떼루아 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구입한 싼 티켓 때문이지 않을까?


   

5. 연주회 중간 휴식 시간

1부 공연이 끝나자마자 옆 좌석의 손님에게 공손하게 말씀드린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화면의 밝기만 좀 낮추어' 달라고.

그러고는 끄집어낸 스마트 폰으로 의문점을 검색한다.

"이런 그룹을 일컬어 피아노 삼중주라고 하나? 중학교 음악 수업 때 배웠는데.. 도.. 확실히 모르겠네?’

‘바이올린, 첼로는 현악기인데 굳이 피아노 3중주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등등 자잘한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6. 공연- 2부 

전반부와 달리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곡을 적잖이 연주한다. 이럴 때의 느긋함이란...

게다가 오른쪽 아주머니는 문자 전송이 훨씬 중요하신지 중간 휴식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나가더니 들어오질 않는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대신 그녀의 메시지에 행운이 깃들기를 빌어 준다.


왼쪽의 투란이 수상하여 힐끗 쳐다보니 얼굴을 휴지에 대고 있다. 음악을 듣다가 눈에 물이 고였나 보다. 

요런 담뿍이 감수성이라니! 나로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하던 정경이다.


감상평 같지도 않은 감상평: 피아노 연주자가 입은 드럼통 모양의 치마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단상에 자리 잡은 세 아기(바이올린 피아노 첼로)의 삼각형 구도도 이채롭다. 날으는 바이올린, 뛰는 피아노보다 걷는 첼로가 한결 더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7. 공연이 끝난 직후

청중은 정중하게 박수를 보낸다.

이런 정도의 갈채에 연주자들이 성에 찰까?라는 생각이 얼핏 든다.

‘앙코르 송’을 청하려면 기립박수를 쳐야 모양새가 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우리는 꿈적 않고 손바닥만 마주친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외국의 공연을 TV에서 보면 바닥을 구르며 괴성과 동시에 다 함께 일어나서 재청하던데....

지난겨울, 런던에서 그 평범한 연극에도 관객들이 전부 일어나 박수로 축하해 주던 기억이 새삼 난다. 

한국 관객이라 그런가? 청주 문화가 그런 건가? 나란 인간이 그러한 건가!

 

무대를 빠져나간 연주자는 되돌아 올 의향이 없어 보인다. 커튼콜을 받을 기분이 영 아닌 것이다. 이러다 점점 박수도 잦아들고 결국 앙코르송은 영영 물 건너갈까 봐 맘이 편치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변이 일어난다! 

우리 옆좌석의 아주머니 군단이 한꺼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머니들이 일어나자 다른 관객들도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따라 일어선다. 

기립한 관중은 무대를 향해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고 일부는 고함소리에 휘파람까지 마구 내지른다. 

커튼 뒤에서 청중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던 연주자들이 그제야 반색을 하며 제 자리로 돌아온다.


일어섰던 청중은 다시금 자기 자리에 앉고 세 주자는 단상에서 악기를 튜닝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주머니들께서는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엉거주춤 서성거린다. 

'앙코르에 감동을 너무 많이 받으실 모양이군. 어쨌든 위대하신 아주머니들이 기적을 행하신 덕분이야!' 라며 속으로나마 감사를 표하던 차 본의 아니게 그중 한 분의 절규絶叫를 엿듣게 된다.



‘그러게 내 뭐랬어? 끝나자마자 일어나 즉시 나가자고 문자 날렸잖여!’




P.S.

그날의 앙코르곡은 이들의 대표곡 라스트 카니발이다.


어쿠스틱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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