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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Oct 09. 2023

나라를 살릴래? 아니면 너를 살릴래?

존경할 만한 분이 그다지 많지 않은 세상이라 해도 나에게 '안중근'의사만큼은 존경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다. 그의 철학과 행동, 그리고 거사를 치른 후의 의연함 모두가 찬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민족사에 그 누구보다 애국 애족의 정신을 갖춘 훌륭한 분이시다.   

그러한 양반이 계신가 하면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 애국은커녕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지만 않았어도 다행이다. 만약 어느 무지막지한 자가 '나라를 살릴래? 아니면 너를 살릴래?'하고 묻는다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만치 줄행랑을 쳤을게다. 그런 나를 아이들이 닮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국적이 바뀌었으니 나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번 영국 출장길에 큰아들이 이사한다기에 도움을 주려고 자취방을 찾았다. 가보니 일백 년은 됨직한 주택 0층의 문간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치운다고 치웠겠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라 창틀이며 라디에이터에 때가 잔뜩 끼어 한눈에 보기에도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방 한편 구석에 접이식 책상이 덩그러니 놓였는데 그 위쪽 벽에 태극기가 보였다. 마치 북한의 가정집에 걸린 김일성 초상 마냥 정갈하게 걸려 있었다. 신기해서 물어보니 '십 년도 전 행사 때 사용했다가 계속 가지고 다니며 걸어 둔다.'라 말했다.  

기특했다.    



금번 가을에 입학한 작은 아들이 기숙사에서 쓸 이불을 마련하였다. 그는 새로이 장만한 '이불 겉감에 커다란 태극기를 그려 달라'라고 제 엄마에게 부탁했다. 태극의 빨강 파랑 강렬한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문구상을 돌아다니며 구한 물감으로 만들어 주었더니 크게 만족해했다.  

기특했다.    



영국의 웬만한 규모의 도시에 가면 TK-Max를 찾는다. 제법 좋은 물건을 값싸게 파는 상점으로 썩 유명하다. 물건의 수량이 한정되고 들쭉 날쭉해서 그렇지 심심할 때 구경 삼아서라도 가보게 된다.    

'한국'과 '조선' 표기가 특이했던 이탈리아제 지구본

하루는 위스키에 관한 책을 구하러 그곳에 들렸다. 문구용품 코너 구석에서 한가로이 진열대를 지키는 지구본 하나를 보았다. 조만간 여행할 스코틀랜드의 위도가 궁금하여 이리저리 돌리던 중 한반도가 눈에 들어왔다. 살폈더니 바다의 표기가 'East Sea (동해)'다. 거의 대부분 'Japan Sea (일본해)'로 쓰거나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게 현실이다. 한국산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조회사를 찾아보니 다행히도 이탈리아회사 제품이다. 덕분에 우리 집에 또 하나의 지구본이 생겼다. 

기특했다.    



Gulf of Corea


영국으로부터 독립 여부와 관계없이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 수도이다. 수도이니만치 국립 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박물관 중앙 현관에 들어서 가운데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한 사람의 초상화가 보인다. 이 나라의 유명한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했던 분이기도 하다. 그 그림 아래 한쪽 벽에 지구본을 바짝 붙여 전시해 놓았다. 자세히 보면 초상화 안에도 똑같은 것이 들어있다. 지구본 자체가 훌륭하거나 희귀하다기보다는 세계적인 모험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물품으로 더 가치가 있을게다. 이번에도 예의 한국 찾기를 했다. 당연히 스코틀랜드가 가장 잘 보이는 방향으로 진열해 두었기에 벽에 밀착된 반대편은 보이지가 않는다. 후에 애국자가 될지도 모를 아들 녀석이 어렵사리 스마트 폰 사진 촬영에 성공하였는데 놀랍게도 'Gulf of Corea (한국해)'였다. 

기특했다.



이런 내 글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뉴욕의 고지도 판매상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해로 표기된 옛날 지도 원본을 사시겠냐?'는 메일이었다. 값은 자못 비쌌지만 성의가 괘씸해서라도 보내달라 했다. 액자에 넣어 걸으면 어쭙잖은 그림보다 한결 빛나리라 생각했다. 

S. of Korea

보증서와 함께 보내온 지도는 1747년 영국인 지도제작가 엠마뉴엘 보웬이 만든 ' Double Hemisphere World Map (이중 반구 세계지도)'이었다. 한반도 모양은 비교적 올바로 표현했으되 일본의 형태는 현재와 크게 차이가 나서 더욱 이채로웠다. 물론 바다 이름은 ' S. of Korea (한국해)'다.

참으로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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