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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Oct 10. 2023

이거 그대로 한잔 쭉 들이켜 봐.

“안토니오, 이거 그대로 한잔 쭉 들이켜 봐. 보모어보다 훨씬 순하네!

위스키 성지라 불리는 '아일라 Islay'를 나흘간의 여정으로 탐방하던 중 이번엔 시음차 아드벡 증류소에 왔다. 아일라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보모어를 비롯한 예닐곱 위스키의 고향이다. 



섬 가득히 널려있는 피트는 온갖 물에 스며드므로 아일라 위스키는 자연스럽게 피트향을 머금는다. 이곳 대부분의 증류소가 어느 정도 거칠고 스모키 한 위스키를 생산해 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트향이 강렬하고 개성적인 위스키 중의 하나인 아드벡은 이 섬에서도 가히 독보적이다. -피트(Peat 이탄)는 탄화 정도가 제일 낮은 석탄의 일종으로 토탄이라고도 한다. 주로 습지에 쌓인 식물이 불완전하게 분해된 퇴적물이다. 과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가정은 연료로도 사용했다.- 

노천에 산재한 피트 Peat

포트와인처럼 생긴 특이한 녹색 유리병과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자의 단순한 라벨마저도 아드벡에 강인한 인상을 준다. 첫 글자 'A'에 덧붙인 물소 뿔 모양의 장식도 강건한 느낌을 한층 더 보탠다. 게다가 브랜드 표기도 'Ardbeg이 아닌  'ARdbEg'이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 쓴 알파벳 표기 'ARdbEg'은 우스꽝스럽기보다 차라리 섬뜩하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런 정도로 헷갈리게 되리라는 경고로까지 여겨진다. 숙성 기간을 나타내는 숫자도 타 위스키처럼 '10년 (10 years)'이라 쓰지 않는다. 그냥 대문자 'TEN'이다. 또 다른 감각이다. 


아드벡 10년의 백라벨 back label에 씌어 있는 설명 문구를 그대로 옮겨 본다.

'아일라 위스키 중에서 가장 깊은 맛, 최고로 균형 잡힌 위스키. 그리하여 감정가조차 추앙을 하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특별함이 즉 아드벡이다. 대부분 위스키가 냉각여과 chill filtering 후 물로 희석시켜 알코올 도수를 40%로 낮춘다. 이에 반해 아드벡 텐은 고유의 향을 최대한 품게 하고 보디감과 깊이를 갖추게끔 냉각여과하지 않고 46%로 맞춘다. 그러므로 위스키에 물을 첨가하면 조금 뿌옇게 변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우려할 일이 절대 아니다.' 

분명 자화자찬이지만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다. 


"아일라의 모든 위스키 가운데 아드벡이다.(Of all Islay's whiskies, it is, ARDBEG)"로 이 문장은 시작한다. '아일라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엄청 피티 peaty 한 감이 드는데 그중에서도 바로 '아드벡'이라고 분명하게 강조한다. -위스키 제조에서 몰트를 건조하는 과정이 있다. 이때 피트를 많이 때면 이향이 원료에 깊게 스며들어 술도 피티 해진다.-

ARddEg TEN

단연코 복합적인 맛과 향 때문이다. 복합적이긴 해도 향이 풍부하기보다는 섬세한 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그 덕에 이 싱글 몰트는 확고한 컬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아드벡의 강하지만 꼼꼼한 피트향과 맛을 즐기려는 마니아 층이 확고하게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도발적이며 애호가가 향하는 최종 목적지의 하나로 희자된다. 



“그럴 리가 있나요? 보모어보다 순 하다니!.

그는 나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내가 가득 부어놓은 잔을 들여다보며 지껄였다.

난 아무 말 없이 '당연하다'는 몸짓으로 어깨만 들썩거렸다.


대중교통 이용이 마땅치 않은 요 작은 섬에서는 현지인의 차를 얻어 타는 히치하이킹(hitchhiking)이 일정 부분 가능하다. 나는 이 섬에서 제일 큰 항구인 포트엘렌 Port Ellen에서 아드벡 증류소를 향해 걷던 도중에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Antonio를 우연히 만났다. 마침 행선지가 같아 둘이 함께 히치하이킹하여 막 도착한 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가 한국에 진 것은 심판의 편파 판정 때문'이라며 대한민국 축구에  불만을 토했다. '뭐가 어쩌고 저쩌고' 나도 잘 모르는 선수 이름까지 들먹이며 민망하게 차 안에서까지 이기죽댔다. 때는 2002년 가을, 월드컵이 끝난 지 삼 개월이 지났는데도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는지 오는 내내 애꿎은 분풀이를 내게 해댔다.


입때껏 부아가 덜 풀렸는지 아니면 이곳저곳 다니며 공짜술을 너무 마셨댔는지 안토니오는 시음장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화장실 간 틈을 타 회사 측에서 우리 둘에게 시음하라고 내놓은 '아드벡 6년' 위스키 향을 그보다 앞서 맡아보았다. 독했다. 아주 독했다. 내 시음할 몫을 안토니오 잔에 딸아 부어 두배로 채워 놓았다. 그러고 나서 볼일 보고 나온 그에게 '이거 그대로 한잔 쭉 들이켜 봐'라고 권했던 것이다. 참고로 '6년' 짜리는 아직 숙성 중에 있기에 지나치게 거칠어 판매는 않고 시음장에서만 맛 보여 주는 위스키다. 


"아까 우리를 여기까지 태워다 준 그 신사분도 말했잖아요. ‘아일라 섬 어디에서든지 피트 peat냄새나는 곳을 따라가면 아드벡 양조장에 닿을 거라고’.” 

그는 다시금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어대다가 순간 웬 생각이 꽂혔는지 술잔을 목구멍으로 힘껏 던졌다.



“으악, 켁켁케..... 거어..”

아드벡 6년이 목울대에 도달하기도 전에 안토니오는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담뿍이 보태서 한 오 분 동안이나 계속 기침을 해대며 나뒹굴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한참이나 휘두르며 버둥거렸다.


'그러게, 왜 한국 축구팀 흉을 봤어! 그 대가를 치르는 거니 조금만 더 참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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