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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Oct 24. 2022

꼬부랑말

영원은 편의점에서 사온 빵과 우유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그가 와이프 은주에게 받는 용돈은   10만원. 식당에서 제대로  밥을 먹자면 기본   이상이기에, 일주일에 세네 번은 이렇게 허기만 달랜다. 마지막 남은   조각을 입에 밀어 넣을  그의 핸드폰이 문자가 왔음을 렸다.


“당신 오늘 영어학원 가는 날이야. 까먹지 말고 꼭 가. 이번에도 또 떨어져서 승진 못하면 그땐 진짜 알아서 해.”

입에 넣은 빵이 얹히는 느낌이다. 재빨리 우유로 밀어 넣어 보지만 쉬이 내려가지 않는다.

영원은 가슴을 세게 턱턱 두 번 치곤, 한 숨을 크게 쉬었다 내뱉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 식사를 하러 나간 텅 빈 사무실, 영원의 표정은 씁쓸함과 어쩔 수 없음이 공존해 보인다. 힘 없이 유린이 내준 숙제를 꺼낸다.

“그래…빨리 승진해야 내가 편해진다…하자, 해!”

영원은 바깥바람 한 번, 어깨 한 번 활짝 펴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교재에 코를 박고 영어 문장을 외우고 또 외웠다.


“박대리, 오픽 학원 다녀?” 석원이 영원 등 뒤에서 내려보며 말했다.

“어이쿠!” 영원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황급하게 교재를 팔로 가렸다.

“부장님, 식사하고 오셨어요?” 영원이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박대리는 또 빵으로 때웠어? 쯧쯧.” 석원이 영원 자리에 놓인 쓰레기통을 보며 말했다.

영원이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허허, 그렇죠 뭐…”

“근데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 박대리 IM1만 받으면 되잖아? 뭘 학원까지 다니고 그래 돈 아깝게.”  

“부장님은 학원 한 번도 안 다니시고 IM1, 2, IH까지 다 받으신 거예요?” 영원이 존경을 한 가득 담은 눈으로 보자 석원은 더욱 으쓱했다.

“그럼, 난 그냥 인터넷에 있는 기출문제 몇 개 쓱 보고 가니까 다 되던데?” 

“대단하시네요…” 영원은 그렇게 쓱 보고 갔다가 30번이나 떨어졌다는 소리를 차마 하지도 못하고 괜히 기가 팍 죽어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자신감과 자존감도 함께 곤두박질 쳤다.  

“근데 학원이 어디야? 교재에 학원이름이 없네?”

“아 그게…학원이긴 한데 이름이 학원이 아니라서요…”

“이름이 뭔데?”

“과…광명슈퍼라고…”

“뭐? 하하하. 사람 농담도 참. 괜히 학원이름 가르쳐 주기 싫어서 그런거지?”

“아유 그럴리가요. 진짜예요. 구연역 앞에 슈퍼를 개조한 곳인데 보기엔 그래도 선생님이 유명 오픽 학원 강사였대요.”

“그래? 광명슈퍼라… 아무튼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시험 전날 한 번 쭉 보고 가면 돼. 알았지?” 석원은 영원의 어깨를 두 번 톡톡 두들기고 자기자리로 가며 말했다.


지후는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백팩을 매고 헐레벌떡 구역역으로 뛰어가는 중이었다. 짜증날 정도로 습하고 더운 한 여름, 방과 후 친구들과 축구까지 했으니 온 몸이 땀 범벅이다. 멀리서 슈퍼가 보인다. 웬일인지 미닫이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지후는 한달음에 달려가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문을 밀어 올렸다. 월드콘이나 투게더처럼 비싼 아이스크림도 많았지만, 어린애가 어르신 입맛인지 매번 고르는 것은 잘 익은 팥이 송송 박힌 비비빅이였다. 가끔 비비빅이 없으면 역시 팥이 들어있는 붕어싸만코나 그마저도 없으면 찰떡모양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그때 유린이 기지개를 펴며 밖으로 나왔다. “아ㅡ 오늘 날씨 진짜 좋네!”


지후는 유린을 보자마자 부정확하면서도 굴릴 건 다 굴리는 발음으로 인사했다.

“하이! 티쳘~캔 아이 해브 아이스끄림~?”

유린은 귀엽다는 표정으로 지후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고 멋드러진 발음으로 대답했다.

“Hi 지후! Go ahead(그렇게 해)”  

지후는 유린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자 비비빅 하나를 들고 평상으로 달려가 야무지게 자리를 잡았다. 이제 좀 살겠다는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지후를 보자 유린은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세 달 전, 유린은 학원 인테리어 공사에 한참이었다. 낡은 슈퍼를 모두 무너뜨리고 삐까뻔쩍한 학원을 올리는 건 유린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유린은 최대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흔적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남기고 싶었다. 여러 업체와 상담을 해봤지만 다들 어떻게 하면 시공비를 더 늘릴까 하며 이것도, 저것도, 모두 새것으로 바꾸자는 말만 해대며 유린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안 했다. 그러다 마지막이다 싶어 들어간 좁고 낡은 인테리어 가게에 정소장님. 상담내내 유린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받아 적는 모습에 신뢰가 갔고, 슈퍼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부분만 시공해주겠다는 말에 유린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건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 정소장은 슈퍼 내부 이곳저곳에 은은한 간접조명을 설치하고, 일대일 수업을 할 수 있는 유리테이블과 그룹 수업을 할 수 있는 6인용 원목 테이블을 배치해줬다. 바닥도 전부 다 뜯어내지 않고 낡은 것에서 새것으로 시간이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부분 시공했다. 그 덕에 학원은 드라마에서 자주 쓰는 영상기법인 화면분할처럼 왼쪽은 50년전 광명슈퍼 그대로였고, 오른쪽은 현실에서 흔하게 볼 법한 세련된 영어학원 그 자체였다.


“선생님, 밖에 아이스크림 냉장고랑, 뽑기기계, 커피 자판기는 어떡하실래요?” 정소장이 평상에 앉아 인부아저씨들을 먼저 챙긴 뒤, 뒤늦게야 본인 짜장면을 비비며 말했다.

유린은 종이컵에 시원한 물을 따라 나눠주며 대답했다. “저거요? 버리긴 좀 그렇고 그냥 디피용으로 둘까봐요. 요즘 뉴트로가 대세이기도 하고요...”

“사용 안 할 거면 치우는 편이 나아요. 안 쓰는 기계가 밖에 잔뜩 나와 있으면 가게가 살아 있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죽은 느낌, 그니까 폐업한 느낌이 생겨요.”


유린은 잠시 가게 밖을 둘러봤다. 정소장의 말대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오래된 가전들은 슈퍼를 서늘하고 음침하게 보이게 했다. 그렇다고 싹 다 가져다 버리기엔 마음이 허락치 않았다. 유린은 엄마아빠찬스를 사용하여 주말 이틀동안 케케묵은 먼지와 오래 누적된 떼를 청소해 나갔다.

“으이구, 그러니까 왜 일을 벌려서 나이 먹은 엄마까지 고생시켜!”

“아빠 이런 거 안 해봤는데… 이렇게 하는게 맞아 딸?”

유린의 엄마아빠는 툴툴거리면서도 슈퍼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유린이 기특한 지 내심 흐뭇해 보였다.


월요일이 되자 아침 일찍 아이스크림 납품 트럭이 광명슈퍼 앞에 멈췄다. 깨끗하게 청소된 냉장고에 각양각색 아이스크림들이 한 가득 채워졌다. 뽑기 기계에도 알록달록한 구슬들이 한 가득 채워지고 자판기 사장님은 사용법과 청소관리법을 꼼꼼하게 일러주고 떠났다. 슈퍼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보니 유린의 마음까지 풍성하게 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서야 슈퍼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유린의 허리춤 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 땀으로 흠뻑 젖은 옷,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팔로 훔치는 초딩이 물었다.

“아줌마, 아이스크림 얼마예요?”

“어?” 유린은 구색 갖추려 들여놓은 아이스크림을 얼마에 팔아야 하나 머리가 멍 해졌다.

지후는 냉장고를 활짝 열고 비비빅을 들어 올리며 다시 물었다.

“이거요! 이거 얼마예요?”

“얼마?... 근데 그거 파는 거 아닌데?”

“왜요?” 지후는 아이들의 유일한 무기인 물음표 살인마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그니까 안 채우고 비워 놓으면 썰렁하니까…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애한테… 아무튼 어…얼만지는 나도 몰라.”

“왜요? 아줌마가 여기 사장 아니에요?”  

“사장? 그…그래 뭐 내가 사장 맞긴 한데…”

“옛날에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칠백원 냈어요.”

“너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는구나…” 유린이 멍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줌마. 얼마냐고요!” 지후는 있는 힘껏 목청을 높혔다.

유린은 고민했다. 이 꼬맹이 말고도 앞으로 이사람 저 사람이 다 와서 얼마냐고 물어보겠지. 그런데 내가 수업이라도 하고 있으면 돈 받고 팔 수도 없는데 말이지. 처음부터 돈 벌려고 채워 놓은 것도 아니고…어쩌지… 번쩍! 유린은 좋은 생각이 났다.

“글쎄…얼만지는 모르겠고, 영어로 말해봐 그럼 줄게. 영어 알지?”

“아~ 꼬부랑말?” 지후는 손을 벙어리 장갑 모양으로 만들어 케스터네츠 치듯 까딱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꼬부랑말. 아이스크림 주세요~ 영어로 해봐.” 

지후는 10년 인생 중 가장 큰 난제를 만났다.

“엄… 아이스꾸림…엄…. 뭐지? 뭐지? 아! 쁠리~즈!!”  

“긋~(Good)!!! 너무 잘했어!!” 유린은 놀랐다. 꼬맹이가 한 번에 맞출 거라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지후는 방긋 웃어 보이며 한 번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아이스끄림 쁠리~즈!!”


그날 이후로 지후는 거의 매일매일 광명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받아갔다. 처음엔 ‘아이스크림 플리즈’ 라고만 얘기했지만 유린이 ‘Can I have ice cream? (캔 아이 해브 아이스크림)이란 표현을 알려준 날부터 주구장창 저 문장을 읊고 다녔다. 유린이 수업을 하고 있을 때는 미닫이 문에 찰싹 붙어서 유린이 쳐다 볼때까지 기다렸다가 입모양을 최대한 크게 뻐끔거렸고, 어떤 날은 종이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자신의 이름과 저 문장을 적어 냉장고에 올려 두고 가기도 했다. 유린은 노란 종이에 안내문을 만들어 냉장고에 붙였다.


‘판매용이 아닙니다. 영어로 말하시는 분께 무료로 드립니다.

예시) Ice cream, please (아이스크림 플리즈)

        Can I have ice cream? (캔 아이 해브 아이스크림)


수강생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소문이 퍼지면서 아이스크림에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예전보다 자주 채워야 해서 돈이 나갔지만, 광명슈퍼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 된다는 사실에 유린은 맘이 채워졌다.


유린도 비비빅 하나를 들고 지후 옆 평상에 자리를 잡으며 물었다.

“맛있어?”

“네. 근대요. 다른 말은 또 없어요?”

“다른 말?”

“캔 아이 해브 그거 말고요. 다른 거 또 알려주세요.”

“오오. 열심인데? 조금 어려워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자 그럼 따라해봐. 아이드라잌 투해브 아이스크림”

“아이드라잌 아… 다시요, 한 번만 다시 알려주세요.”

“자 종이에 적어 줄게. 여기 봐봐. I’d like to have ice cream”

유린은 종이에 적은 단어를 펜으로 하나씩 가리키며 읽어줬다.

“아이드 라잌 투 해브 아이스 크림, 오케이?”

지후는 유린에게 종이를 받아 들고 오른손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연습했다.

“아이….드…. 라이크…. 투…”

“너 시방 여기서 뭐~허냐.” 그 시절엔 흔하지 않았을 매우 큰 키, 무쌍에 쪽 찢어진 날카로운 눈매, 우렁찬 목소리에 할머니가 지후에게 다가오며 호통을 쳤다.

“하…할머니” 지후가 유린 뒤로 숨었다.

옥분은 지후에 손에 들려 있던 종이를 빼앗아 들며 말했다.

“내가 이런 꼬부랑말 하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어? 꼬부랑말 쓰면 죽는다고 했지? 죽고 잡허? 너는 이제 집에 가서 혼났응게. 얼른 빠딱 안 일어나냥?”

“저기 할머니, 왜 화가 나셨어요. 저한테 얘기하세요. 지후는 잘못 없어요.” 유린이 지후를 감싸며 말했다.

“그짝이구만? 아이스크림으로 살살 꼬셔서 꼬부랑말 하게 만든. 야한테 꼬부랑말 가르치지 말어잉. 한 번만 더 걸리믕 가만 안둘랑께!!! 정지후! 빨리 인나! 어?”

옥분은 한 손에 지후 가방, 다른 한손으론 지후 팔을 잡아당기며 윽박질렀다. 유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왜 할머니가 저렇게까지 역정을 내시는 지도 모르겠고, 집에 가서 혼날 지후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아프고, 그렇다고 가족이 데리고 가는데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애를 못 데리고 가게 하나 싶다. 멀어져가는 지후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고 있는 유린. 엄마로 보이는 여자와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유린 앞에 선다.

“채유린 선생님?”


원목 테이블 위에는 야쿠르트와 과자가 놓여 있다.

“아. 박영원님 사모님 이시라고요? 성함이?”

“심은주라고 해요. 여기는 저희 딸이예요. 찬별아, 아빠 영어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셔. 인사해야지.”

찬별이는 귀에 에어팟을 꼽고 유튜브를 보다가 엄마 성화에 못 이겨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유린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같이 목례를 하고 다시 은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오늘은 어떻게 오셨어요?”

“남편한테 선생님 이야기 너무 많이 들었어요. 너무 잘 가르쳐 주신다고요.”

유린은 은주의 말이 묘하게 진심 없는 립서비스같이 느껴졌다.

“아…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희 찬별이도 좀 맡아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은주가 사랑스럽다는 듯 찬별이에 머리를 쓰다듬었고, 찬별이는 귀찮은 듯 엄마의 손을 밀쳤다.

“아….죄송하지만 저희는 성인만 수업해서요…또 제가 입시영어는 전문이 아니라서, 찬별이 같은 중학생은 전문 입시학원을 가는게ㅡ”

“찬별이 캐나다로 고등학교 갈꺼라서요. 찬별아 네가 직접 원하는 거 말씀드려봐.”

찬별이는 보고 있던 유튜브를 유린에게 보여줬다. 캐나다 유학생 브이로그, 스터디 위드 미, 유학생의 모닝 루틴 같은 종류의 제목들이 한 가득했다.

“저도 캐나다가서 이런 유튜브 찍고 싶거든요. 그래서 아이엘츠 7.0이 필요해요.”

“평소에 영어는 좋아하니? 아니면 캐나다에서 가고 싶은 학교가 있어?”

“아니요 영어 극혐이에요. 학교는 아무데나 상관없어요. 어차피 브이로그에서는 가는길 조금 나오고 거의 장 봐서 음식 해먹는 영상만 찍으면 되거든요.”

“그니까 유학을 가고 싶은 이유가 유튜브 때문이야?”

“네. 왜요?”

유린은 기가차서 말도 안나왔다. 영원님이 너무 불쌍하고 측은했다. 이 어린 노답 새끼를 유학 보내기 위해서 한 달에 10만원 가지고 겨우 겨우 버티면서 승진하겠다고 영어공부까지 하시는 모습이 아른댔다.

“우리 찬별이가 머리는 좋거든요. 근데 단어가 좀 부족하고 문법을 잘 몰라요. 학교에서 내신은 8등급이고 하여튼 완전 기초예요. 왕기초라고 보시면 돼요.”

“아…하하” 유린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근데 진짜 저희 급하거든요. 다른 사람들보다 진짜 저희가 제일 급해요. 무조건 두 달 안에 7.0 받아서 내야 연말에는 갈 수 있거든요. 그 때 오로라가 그렇게 예쁘다네요. 우리 찬별이 단기간에 할 수 있겠죠. 네? 네?”

얼씨구. 이 아줌마는 애 공부 핑계로 남편한테 빨대 꽂아서 캐나다에서 편하게 살려고 하네? 엄마라는 인간부터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티가 났다. 공부를 어느 정도 했더라면 내신 8등급 맞는 아이가 두 달 만에 수능보다도 몇배는 어려운 아이엘츠를 거의 만점에 가깝게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일임을 인지할 테니 말이다. 그저 자신은 못하지만 자기 자식은 해낼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 공부머리는 유전이라고 했다. 부모한테 없는 공부머리가 자식한테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거기에 오로라라니. 남편은 그러고 있는데 노답이 자식 데리고 오로라… 유린은 오랜만에 팩트로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아줌마는 돌려 까는 것조차 이해 못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미성년자는 수업 받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의지대로 직접 수업을 결정한 성인 분들과 수업을 해와서 이렇게 어머니 상담 따로, 아이교육 따로 해야 하는 미성년자 수업을 해본적이 없어서 너무 미숙하네요. 전문가를 찾아가시죠.”

“아이 좀 선생님이 융통성이 없으시다. 어차피 애 아빠도 여기서 하는데 좀 같이 해주세요. 여기가 가까워서 차 안타도 되거든요. 네? 그리고 두 명 등록하면 할인해 주실 거죠?”

“죄송하지만 어렵겠네요. 좋은 선생님 구하시길 바랍니다.” 유린은 상담용 노트를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동네에서 이렇게 장사하시면 안 돼요. 입소문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맘카페에 올라가면 장사고 뭐고 끝이에요.”

“어차피 중.딩(유린은 이때 찬별을 보고 있었다)을 포함한 모든 미성년자 수업은 안 하니까 그 맘카페에 맘 들하고 만날 일이 없어 서요.”

“오…오전에 그 아줌마들 영어회화인가 그것도 하잖아요. 그거 다 이 동네 엄마들인데 수강등록 끊기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 그 어머님들 모두 제가 선별해서 무료로 수업하시는 분들이니까 이제 제 걱정 그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만 가주세요.”

“어머머,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이런 식이면 우리 애 아빠도 여기 안 보낼 거예요!!”

“영원님은 다른 어떤 분들보다 열심히 하시고 항상 숙제도 빼놓지 않고 하세요. 점점 실력도 늘고 있고요. 그런데도 두 분 상의하셔서 영원님도 그만 다니겠다고 하신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환불해 드릴테니 오세요, 그때.”

“참, 이 여자 배가 불렀네 배가 불렀어. 찬별아 가자. 으휴 정말 짜증나!”

“그니까 내가 강남에 있는 학원 가자고 했잖아 엄마. 이게 뭐야. 구질구질하게 슈퍼에서.”

찬별과 은주의 뒷모습을 보는 유린의 마음은 씁쓸했다. 왠지 영원님께 미안해졌다. 하아ㅡ.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영원님 오시면 뭐라고 하지… 테이블에 남겨진 야쿠르트 냄새가 코를 찌르듯 시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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