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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Oct 30. 2022

영어 공부 잘하는 법

“선생님 호주에는 소주 한 병 얼마예요? 클럽 있어요?” 택규가 원목 테이블에 올려진 쫀드기를 쫙쫙 씹으며 말했다. 

“이택규, 다시 쫓겨나고 싶니? 그리고 그 쫀드기 이따 먹어.” 

예은은 혼나는 택규를 보고 키득거렸다. 


예은과 택규가 같이 공부하기 시작한 건 막 2주가 됐다. 택규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꼬박 한 달을 유린에게 애원했다. 자기가 해병대 출신이라며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잘 한다고 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유린은 ‘이렇게 안 하면 엄카 끊기는구나?’라고 일침을 놓았고 그럴 때마다 택규는 아무 말도 못했다. 

예은은 한 달째 밖에서 저러고 있는 택규가 여간 신경이 쓰였다. 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씹는 꼬라지를 봐서는, 유린쌤이 끝까지 안 받아줬으면 좋겠다. 은근히 쌤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수업에만 열중할 뿐, 저 자식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같이 수업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예은을 택규가 불러 세웠다. 

“저기요!”

예은은 택규에 말을 처참하게 잘근잘근 씹었다. 지난번 자신의 말을 무시한 일에 대한 복수였다. 예은이 에어팟을 귀에 꽂으려는 그때, 택규가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 예은에게 뛰어갔다. 

“저기요. 내 말 안 들려요?” 

“들려요. 근데 그쪽도 내 말 들리는데 씹었잖아요. 저번에.” 

“그거야…뭐 영어가 짜릿하다니 그딴 개소…아니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랬죠. 근데 그쪽이 공부하는 거 한 달 내내 보다 보니까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나도 해보고 싶어서…나이도 나랑 비슷한 거 같고…여기 쌤하고도 친해 보이던데…좀 도와줘요. 같이 수업 들으면 수업료도 더 저렴하잖아요. 어때요?” 

예은은 택규가 괘씸하긴 했지만, 수업료를 조금 줄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안 그래도 유학비용에 학원비 생활비까지 아르바이트 두개를 하면서 공부까지 하는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학원 앞에서 맨날 어색하게 서성이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같이 공부를 하는 편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유린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예상치 못한 이 투샷은 무엇이란 말인가? 

원목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예은과 택규는 빨대 꽂은 피크닉 주스를 마시며 유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 너희 둘이 같이 수업을 듣고 싶다고?” 

입에 주스를 한 가득 물은 두 사람은 대답대신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예은아, 혹시 너 협박 당했니? 네가 굳이 수업 같이 들을 필요가 없잖아.” 

예은은 주스를 꿀꺽 삼키고 말했다. 

“협박 그런 건 아니고…그냥 그룹수업으로 하면 수업료 저렴 해지니까요.” 

예은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린은 단순히 돈 때문에 예은이 그런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분명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 보였지만 묻진 않았다. 유린은 고개를 돌려 택규를 보며 말했다. 

“너는 부모님이 용돈 안 주고 차 키 뺐을 까봐 여기서 한 달 내내 그러고 있는 거잖아.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맹목적인 수강생은 받지 않아.” 

“저도 이제 목표 생겼거든요?” 

“뭔데?” 

“얘가 그러는데 영어 공부가 짜릿하고 재밌대요.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그리고 인터넷 좀 찾아봤는데, 호주에 있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2위’인 그…그레이드 베리…” 

“The Great Barrier Reef (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유린이 택규 말에 덧붙였다. 

“네, 그거요.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 군락. 거기 가서 스쿠버 다이빙도 해보고 싶고, 시드니 오페라 앞에서 사진도 찍어보고 싶고… 그리고 호주가 그렇게 커피로 유명하대요. 대학은 경영학과로 가고 호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할 거예요. 그거 배워서 한국에 와서 카페 차리는 게 목표예요.” 

“그래?” 유린은 약간 놀랐다. 처음 상담 왔을 때 보다 호주에 대해서 검색도 많이 해보고 하고 싶은 목표도 생긴 듯 보였다.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수업은 진행한다고 해도 과연 예은이랑 같이 하는게 좋은 선택일까 싶었다. 괜히 예은이 공부까지 더디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좋아. 하지만 둘이 같이 수업하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 왜냐하면 예은인 이미 진도가 꽤 나갔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공부를 꾸준히 해왔어. 택규 너랑 시작점이 조금 달라. 아, 오해는 하지마. 너 기분 나쁘라고 하는 소리 아니야. 단지 영어에 할애한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말이야. 그건 너도 인정하지?”

택규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따라가기가 벅차고, 예은이는 진도가 느려질 거야. 둘 다 이점을 조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어때?”  

예은은 수업료만 생각했지 실력이나 진도 같은 수업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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