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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Apr 11. 2021

오래된 연인을 위한 노트

그냥 좋은 게 충분히 좋은 거였어. 내게 충분한 너였어.

DAY1

외로워서 찾은 사랑은

결국 더 큰 외로움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검은 봉지를 뒤집어쓰면     

검게 변한 세상이

숨 막히게 조여 올뿐이었다.




DAY2 

그 남자한테 솔직히 물어야지     

네 머릿속만 들여다보면 뭐하니?

              

누군가의 마음은      

생각하는 게 아닌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잖아    




DAY3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랑이 지나가 버리는

이유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찬란했으면 된 것이다.     




DAY4

       그는 나를 사랑할 수는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고

사랑과 이해 사이에 생긴

빈 틈은 점점 커졌다

    



DAY5

사랑할 수 있는 날마다 찬란하다

살아있는 날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찬란하다.



  

DAY6 

"처음 봤을 때 어땠어?"

"글쎄. 기억 안 나.

지금 네 손 잡고 있어서 좋아."

"바보야. 내 마음도 몰라주고."   

     "처음보다 지금이 더 좋다고. 이 바보야."




DAY7

같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같이 걷고 싶은 곳을 걷고     

       같이 먹고 싶은 걸 먹고               

무얼 해도 좋은 너랑 사이     

사랑하는 사이  

   



DAY8

메리 크리스마스

일 년에 한 번 하는 말

    일 년마다 하는 말     

딱 백번만 더 할게




DAY9

사랑은 사람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그날의 그는 눈부셨다     

그날의 그는 나를 눈부시게 만들었다

   



DAY10

그냥 좋았어

마냥 좋았어

시간이 얄미운 걸까

네가 내가 얄미운 걸까

자꾸 투덜거려

              

내가 쏘아 올린 화살이     

내게로 돌아와 꽂힐 때     

   비로소 마음 매무새 다듬어  

             

그냥 좋은 게     

충분히 좋은 거였어  

  

내게 충분한 너였어

   



DAY11

   시간이 데려다 주기도 하고     

시간이 데리고 가기도 한다  

             

기억 속으로 걸어가면     

당신이 보여서     

사뿐사뿐 다가간다    

           

시간을 나누면 더해지는     

신비한 걸음이다   

            

당신을 추억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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